편집자 주 경계없는 삶이란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요? 세계의 전통 문화 속에 내려오는 풍습을 통해 서로를 위하며 더불어 함께하는 미래문화의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1977년 무인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한국어 ‘안녕하세요’를 비롯해 55개 언어로 된 세계 각국의 인사말과 민속음악, 그리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 혹등고래의 노래, 사진 등 지구의 정보를 담은 금박 LP레코드판 ‘골든레코드’가 실렸다. 이 탐사선은 2012년과 2018년 각각 태양계와 다른 항성계 사이 공간인 성간우주에 돌입했다.

이 골든레코드는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언젠가 우주에서 외계 지성체를 접촉했을 때 그들과 우호적인 교류를 하고 싶다고 전하는 지구인의 메시지이다. 이처럼 인사는 일상에서 마주 대하거나 헤어질 때 예를 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처음 만나는 낯선 이에게 자신을 알리고 함께 어울리고 싶다고 호의를 나타내는 첫 동작이기도 하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 인사법 '홍이'. [사진 flickr 이미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전통 인사법 '홍이'. [사진 flickr 이미지]

그중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인사법 ‘홍이(Hongi)’는 매우 독특하다. 먼저 서로 이마와 코를 맞댄다. 그리고 숨을 같이 쉰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홍이를 나눌 때는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악수를 함께 하면서 ‘안녕’이라는 뜻의 ‘키아 오라(Kia ora!)’라고 외치기도 하고, 때로 손을 잡는 대신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한다.

생명의 숨결을 공유하는 홍이는 그들에게 신체적 행위일 뿐 아니라 영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이 홍이 인사법의 기원은 마오리족의 민담 속에 등장하는 인류 탄생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하늘의 신 랑이누이(Ranginui)와 땅의 신 파파투아누쿠(Papatuanuku)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신 타네 마후타(Tāne Mahuta)는 태초에 서로 붙어 있던 아버지 하늘과 어머니 땅을 갈라놓아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를 빛으로 채워 생명을 번창하게 했다. 온통 어둠만 가득했던 세상에 비로소 수많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온 세상 생명을 탄생시킨 조물주인 타네(Tāne)는 쿠로와카(Kurawaka) 해변에서 진흙으로 첫 인간을 만들었다. 바로 히네아후오네(Hineahuone)이다. 타네는 히네아후오네를 껴안고 그녀의 콧구멍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녀는 재채기를 하면서 살아났다.

홍이 인사법의 기원은 마오리족의 민담 속에 등장하는 인류 탄생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조물주 타네가 진흙으로 만든 첫 여성 히네아후오네에게 숨을 불어넣는 모습. 1976년 Naguhi 예술가 Pauline Kahurangi Yearbury의 삽화. [사진 뉴질랜드 백과사전 TEARA ]
홍이 인사법의 기원은 마오리족의 민담 속에 등장하는 인류 탄생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조물주 타네가 진흙으로 만든 첫 여성 히네아후오네에게 숨을 불어넣는 모습. 1976년 Naguhi 예술가 Pauline Kahurangi Yearbury의 삽화. [사진 뉴질랜드 백과사전 TEARA ]

히네아후오네가 바로 인류 최초의 여성이고 마오리족의 조상이다. 그녀는 타네의 아내가 되었으며, 밤과 낮, 어둠과 빛 사이의 문턱을 지키는 수호자 히네누이테포( Hine-nui-te-pō)를 낳았다.

마오리족에게 홍이의 전통은 신들로부터 직접 온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로의 단결을 상징하는 상당히 중요한 제스처이다.

낯선 이방인이어도 마오리족과 홍이를 나누면 그 사람은 더이상 ‘마누히리(manuhiri, 방문객)’가 아니라 ‘탕가타 훼누아(tangata whenua, 땅의 사람들)’가 된다. 탕가타는 ‘인간’을, 훼누아는 ‘땅, 태반’을 의미한다. 마오리의 세계관에서 땅은 사람들의 어머니이다. 즉, 탕가타 훼누아가 된다는 것은 같은 땅의 어머니에게서 나온 동족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또한, 홍이를 나누면 섬의 생태계에 대한 책임감도 그 개인에게 부여된다. 예전 같으면, 새로 임명된 탕가타로서 동족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농작물을 돌보는 일을 했겠지만, 오늘날 새로 임명된 탕가타는 섬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책임을 분담한다.

마오리족의 홍이가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인간은 하늘과 땅, 자연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연과 인간, 인간 상호 간은 숨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서로 피부빛이 달라도 종교와 이념이 달라도 호흡을 통해 연결된 ‘당신과 내가 별개가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