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소설 《하얼빈》(문학동네, 2022)이 8월 3일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안중근에게 드리워져 있던 영웅의 그늘을 걷어내고 난세를 헤쳐가야 하는 운명을 마주한 미약한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 소설에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교보문고의 경우 온오프라인과 e북을 합산한 종합 주간 베스트에서 4주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YES24에서도 8월 둘째 주부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영풍문고에서도 8월 2주차에 종합베스트셀러 2위를 기록한 후 3주차부터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다.

소설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추어 안중근에게 드리워져 있던 영웅의 그늘을 걷어내고 험난한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청년들의 망설임과 고뇌, 투신을 그려낸다.

김훈 '하얼빈' 입체 표지. [사진 문학동네]
김훈 '하얼빈' 입체 표지. [사진 문학동네]

김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추어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간다. 이로써 《하얼빈》에는 안중근의 삶에서 가장 강렬했을 며칠간의 일들이 극적 긴장감을 지닌 채 선명하게 재구성된다.

소설은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明治)가 도쿄의 황궁에서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데려온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을 접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이 죽고, 3월 29일 관동도독부가 안중근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 사형집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애쓴 관리들에게 상여금을 주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안중근의 마지막 여정 2년여 기간 동안 그의 삶과 고뇌, 선택을 그린 것이다. 그동안 발간된 안중근 전기와 다른 점이다. 안중근을 다룬 기존의 도서들이 위인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

이토는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의 대리인이었다. 안중근은 그러한 이토를 저지하려고 한다. 《하얼빈》은 먼저 거침없는 이토의 행보를 보여주고 이어 이토의 세상을 살아가는 안중근을 교차하여 묘사하며 하얼핀으로 향한다. 이로 인해 두 개의 기차가 마주 보고 달리는 듯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그러는 가운데 ‘살인’을 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 고뇌가 깊어진다. “이 세상에서 이토를 지우고 이토의 작동을 멈춰서 세상을 이토로부터 풀어놓으려면 이토를 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안중근은 고민한다. 이토를 살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은 1909년 10월이었다. 신문에 고려 왕궁 만월대의 폐허를 순행하는 순종과 이토의 사진을 본 순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내내 분명하지 않았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자각 증세가 없는 오래된 암처럼 마음속에 웅어리져 있었는데, 만월대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암의 응어리가 폭발해서 빛을 뿜어내는 것같았다. 안중근은 몸을 떨었다.”

안중근은 곧바로 의병 활동을 함께했던 동지 우덕순을 찾아가고, 안중근을 맞은 우덕순 역시 안중근의 의중을 간파하고 두말없이 동행을 결정한다. 훗날 공판에서 재판장의 질문에 답한 우덕순의 답변을 보면 그가 어떤 마음으로 동행했는지 알 수 있다.

거사 후 신문과 재판과정 또한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한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정치적 동기를 무시하고 ‘포수’ ‘무직’ ‘담배팔이’의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몽매의 소산으로 몰아가려는 일제와 이에 안중근과 우덕순이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김훈은 신문과 공판 기록을 통해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작가의 말〉에서 이런 내용을 적었다.

“안중근 사건의 신문과 공판 기록은 소설적 재구성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긴장되어 있다. 그 짧은 문답 속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고, 그 시대 전체에 맞서는 에너지가 장전되어 있다. 이런 대목들은 기록의 원형을 살려 나갔다.”

《하얼빈》에서 또한 눈길을 끄는 것은 종교적 갈등이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는 연해주로 가려는 안중근을 말린다.

“너는 조선에서 교육 사업에 힘쓰라. 그것이 나의 뜻이다. 선량한 신도와 착실한 국민을 길러내야 한다. 영혼을 구해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 너는 기어이 우라지로 가려느냐?”

조선 대교구장 뮈텔 주교는 조선에 대학교를 세워달라는 안중근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선에 대학교는 가당치 않다. 조선인은 우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조선인이 학문을 배우면 신심을 해치게 된다. 좋지 않다. 다시는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빌렘 신부와 뮈텔 주교 사이에 갈등은 복잡하다. 일본 형법에 근거한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이 죽음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하고자 한다. 이에 빌렘은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고자 하나 뮈텔은 불허한다. 백 년이 넘는 박해의 세월을 견디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순교의 피 위에 세속의 거점을 겨우 확보한 조선 교회가 또다시 세속 권력과 충돌한다면 교회의 틀이 위태로워질 것을 뮈텔은 걱정했다. 이 걱정은 신부와는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뮈텔의 불허에도 빌렘은 안중근을 만나러 여순 감옥으로 가서 성직자의 책무를 다한다.

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빌렘 신부와 교회의 안위를 위해 세속과 결탁한 뮈텔 주교. 소설은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라는 갈등을 더하며 안중근으로 인한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김훈 소설 《하얼빈》에서는 남편·아버지로서 가족을 생각하는 안중근과 독립운동을 위해 가족을 떠나는 남편·아버지를 둔 가족, 특히 아내 김아려를 보면 그들이 겪었을 고통에 마음이 아파진다. 김훈은 소설에 따로 <후기>를 두어 “안중근의 거사 이후 그의 직계가족과 문중의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와 시련과 굴욕, 유랑과 이산과 사별에 관한 내용을 적었다.”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말했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김훈은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