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소리에 실어 전 세계에 전하는 20대 젊은 국악 예인 5명으로 구성된 국악그룹 ‘비단’. “한국의 보물을 노래한다”라는 명확한 콘셉트로 활약한 ‘비단’은 판소리 전공 보컬 김수민, 타악 김지원, 가야금 손예, 대금 김가윤, 해금 서재원으로 최소 10년 이상 국악을 전공한 실력파 멤버로 구성되어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소리로 전 세계에 전하는 국악그룹 '비단'. [사진=케이 앤 아츠 제공]
한국의 문화유산을 우리 소리로 전 세계에 전하는 국악그룹 '비단'. [사진='비단' 제공]

지난 9년간 훈민정음과 한복, 역사 인물을 비롯해 30여 종 문화유산을 주제로 노래와 연주를 하고, 그 주제에 얽힌 우리 역사를 함축한 다큐와 뮤직비디오(M/V)를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9개 언어로 제작해 발표했다. 국내외 수많은 공연과 함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청와대 행사에서 초청공연을 했고, 사회적경제활성화 유공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넷플릭스와 ‘전통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음원사용 계약을 체결하며 전 세계 190여 개국의 TV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들의 1집 활동 때부터 팬이 되어 우리 소리와 문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이집트 소녀는 지금 한국예술문화원(한예종)의 아랍인 1호 학생이 되었다.

국악그룹 ‘비단’의 다섯 멤버들은 동작구 장승배기역 인근 소극장에서 만나 지구촌 시민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우리 소리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동작구 장승백이역 인근 소극장에서 만난 '비단'. [사진=김경아 기자]
서울 동작구 한 소극장에서 만난 '비단'. [사진=김경아 기자]

-국악그룹 ‘비단’의 각 멤버들이 국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수민(보컬) 9살 때 TV에서 ‘국악 한마당’을 보고 판소리하는 모습이 마냥 멋있어서 ‘나도 판소리 하고 싶어’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곧장 소리학원을 데려가 주셨어요. 그 일을 계기로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계속 판소리 중 강산제(보성소리)를 배우게 되었죠. 돌아보면 아무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따름이죠.

서재원(해금)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단소를 배웠는데, 담당 선생님께서 해금을 배워볼 사람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해금을 전공하신 분이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으셨데요. 저 혼자 손을 들어 1대1로 배웠어요. 소리가 정말 좋았고, 손으로 눌러 소리를 만들어내는 매력에 푹 빠져서 부모님을 설득해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김가윤(대금) 집안 대대로 국악을 해서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었어요. 제 증조할아버지가 김광식 대금명인(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악장)이셨고, 집안 어르신들 중 판소리, 한국무용, 관악기 계통을 하셨죠. 조부모님도 국악을 전공하셨는데 힘든 길이라고 아버지를 만류하셨데요.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해금을 했으면 하셨죠. 저는 대금을 부는 모습이 멋있어서 그걸 선택했어요. (하하) 산조 중 자진모리를 좋아하는데 저는 호흡을 좀 거칠게 쓰는 편이라 빠르고 강한 곡을 연주할 때 제 매력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습니다.

김지원(타악) 전 우연이 겹친 편이에요. 원래 대중 가수가 꿈이어서 고교 진학때 실용음악고교를 가려고 했어요. 부모님께서 멀리 가는 건 안 된다고 하셔서 가까운 예술중점학교를 지원했어요. 뮤지컬과 농악, 연극 등 전공이 있는데, 심사위원께서 ‘동양적 외모를 가졌으니 국악반에 가는 게 좋다’고 해서 얼떨결에 전공이 정해졌죠. 전 고등학교 때 공연을 잊지 못합니다. 관객들 반응이 “시끄럽다”, “지루하다”였어요. ‘우리 음악을 우리조차 배척하는 구나’ 라는 생각에 어떻게 인식을 바꿀 수 없을까 고민했었죠. 공연자와 관객이 서로 어우러져 신명나게 놀 수 있는 매력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손예(가야금) 어릴 때 플롯이나, 피아노, 바이올린 등 서양악기를 주로 배웠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음악 전공을 결심하고 어느 악기로 할지 고민이었죠. 마침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가야금과 대금을 취미로 배우며 집에 여러 악기를 두셨죠. 가야금을 선물받고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선생님의 자진모리 연주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지금은 동생 2명까지 세 자매가 모두 가야금을 전공합니다.

증조부 때부터 국악 명인 집안, 가야금을 전공하는 세 자매 등 국악과 인연 다양

국악그룹 '비단'의 멤버들. (왼쪽부터) 판소리 전공 보컬 김수민, 타악  김지원, 가야금 손예, 대금 김가윤, 해금 서재원. [사진=케이 앤 아츠 제공]
국악그룹 '비단'의 멤버들. (왼쪽부터) 판소리 전공 보컬 김수민, 타악 김지원, 가야금 손예, 대금 김가윤, 해금 서재원. [사진='비단' 제공]

 

- 팀명을 ‘비단’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지.

김수민(보컬) 팀명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비단결 같은 옷의 그 비단이 맞습니다. 예전에 비단은 임금님께 바치거나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에게 하사하는 귀한 옷감이었죠. 우리도 ‘비단결’ 같은 마음으로 문화예술을 활용해서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어요.

- 우리 문화유산을 노래한다는 콘셉트가 독특하다.

김수민(보컬) 문화유산은 유일무이하고 오랜 세월 존재하잖아요. 복제되거나 대체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비단’의 음악도 잠깐의 즐거움을 넘어서 보다 긴 생명력을 갖길 원합니다. 국악과 대중음악의 조화를 이룬 퓨전음악으로써 많은 이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한국의 무형·유형 문화유산에 담긴 이야기를 전할 겁니다.

- 그룹‘ 비단’이 그동안 다양한 우리 문화유산을 9개 언어로 다큐와 M/V를 제작했다. 해외에서 많은 호응이 있다고.

손예(가야금) 해외주제 한국대사관과 재외한국문화원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 상황에서도 현지인과 우리 교민에게 우리 역사를 알리고 소개하기 위해 온라인을 통해 비단의 M/V를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고, 한국의 문화유산 실제 모습을 음악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보니 관심이 많아요. 코로나19가 끝나면 우리나라를 찾아 영상에서 봤던 곳을 찾지 않을까 합니다.

- 남다른 사명감이 느껴진다. 팬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김지원(타악) 제가 홍보를 맡고 있어 유튜브 댓글로 팬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데 우리 청소년들이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잘 몰랐던 역사를 음악으로 알게 되었다”고 반응합니다. 외국인 팬들은 어렵게 찾아서 서툰 한글로 바꾸어서 댓글을 달아주세요. “너희 나라 전통악기는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인상 깊은 음악이다”라고 달린 댓글을 보면서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느낍니다.

- ‘비단’의 해외팬 중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한예종)에 입학해 판소리와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분이 있다고.

김지원(타악) 예. 이집트 출신 누르 엘데메르다시 씨인데 지금은 김샛별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활동 중이에요. 비단의 첫 앨범 활동 때부터 팬이었고, 우리 소리에 반해서 판소리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한국외국어대학 어학당에서 공부했어요. 이제는 한예종에 입학해 ‘아랍인 1호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받았죠. 모든 게 ‘비단 덕분’이라고 해주니 저희도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샛별 씨는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의 저항의식을 그린 노래 ‘영웅의 제국’ M/V에도 출연해 주었죠.

(왼쪽) 비단의 해외팬으로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판소리와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이집트 출신 누르 엘데메르다시(한국명 김샛별) 씨.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의 저항의식을 노래한 '영웅의 제국' M/V 촬영에 참여했다. [사진= '영웅의 제국' M/V 갈무리]
(왼쪽) 비단의 해외팬으로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판소리와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이집트 출신 누르 엘데메르다시(한국명 김샛별) 씨.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독립운동가의 저항의식을 노래한 '영웅의 제국' M/V 촬영에 참여했다. [사진= '영웅의 제국' M/V 갈무리]

- 그동안 국내‧외에서 많은 공연을 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무대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김수민(보컬) 관객들의 호응이 남달랐던 공연이 인상 깊죠. 전에 부산공연을 갔을 때 초등학교 3개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참여했는데 공연 중 계속 집중하고 환호성을 보냈고, 무대를 지날 때마다 한복을 입은 우릴 보고 ‘예쁘다’라며 어쩔 줄 몰라했어요. 노래의 클라이막스에 판소리 창법을 구사하는데 목소리가 공기를 뚫고 짱짱하게 나갈 때에 객석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호응에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재밌던 추억은 부여 정림사지에서 잠시 음향상 문제로 공연이 중단된 때가 있었어요. 제가 순발력을 발휘해 관객과 소통하며 준비시간을 확보하던 중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신호를 받고는 속사포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처음인 것처럼 다시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라고 했어요. 급한 마음에 전한 말이 거의 랩 같았죠. 그 이후 저보고 ‘랩하는 소리꾼’이란 별명이 붙었어요.

- 최근 국악이 ‘힙한 음악’으로 부각되며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김수민(보컬) 현재 젊은 층은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흐름으로 바뀌고 변화되고 있어요. 음악 뿐만 아니라 패션, One day Class 등의 여가생활, 음식 등 개인의 기호를 찾는 시도로 ‘나’를 알아가는 흐름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죠. 유행, 트랜드 일색의 획일화된 문화환경에 대한 피로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피로감에서 벗어날 하나의 탈출구와 새로움이 필요했던 대중에게 실용음악과 국악의 독특한 매력이 어우러진 음악들이 신선하게 다가간 것이죠.

김지원(타악) 그동안 국악은 대중이 쉽게 배울 수 없는 전문가들의 음악 즉, ‘특별한 음악’이라고 여겨져 왔는데 그 이면에는 경험의 부재가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마트에 가서 음식을 구매할 때조차 시식코너에서 시식을 해보는데 국악은 이미 어렵다고 느끼는 상태이기 때문에 맛 볼 생각도 들지 않았던 음악이었어요. 막상 맛을 보면 내가 생각하던 맛과 다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풍류대장, 조선판스타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소리꾼들의 등장 등 다양한 요소를 결합해서 국악을 자주 노출시켜 대중이 국악의 맛을 직접 느끼게 해주었어요. ‘취향 존중’이라는 문화 속에 사는 MZ세대에게 국악의 벽이 많이 허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2편 ‘세계 최초로 해인사 전경을 뮤직비디오에 담아 세계에 전한다’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