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편에 이어)

국악을 계승해 오늘과 내일의 국악을 창작해가는 3인의 청년 국악인들. (왼쪽부터)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김성은 씨, '프로젝트 앙상블 련'의 유세윤 씨, '해음'의 구민지 씨. [사진=본인 제공]
국악을 계승해 오늘과 내일의 국악을 창작해가는 3인의 청년 국악인들. (왼쪽부터)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김성은 씨, '프로젝트 앙상블 련'의 유세윤 씨, '해음'의 구민지 씨. [사진=본인 제공]

- 국악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지지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어떤 변화와 정책이 필요한가

구민지 일제강점기 이후 우리 문화가 변질되고 많이 잊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K-팝이 뜨고 국악이 다시 조명받는 걸 보면서 우리의 DNA 속에 국악의 흥이 살아난 게 아닌가 합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 국악이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더 독보적인 문화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분야가 뜨고 그 분야에 더 열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 국악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이런 게 있구나’하고 관심을 갖는 층이 생겼고, 그분들이 남아서 저희를 계속 응원해주실 겁니다. 각자가 원하는 음악을 묵묵히 해내면 되지 않을까요?

유세윤 예술인들에 대한 처우는 옛날보다 확실히 좋아졌어요. 전통 국악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 모두 국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재입니다. 그런데 “나는 전통만 하는 사람이니까 새로운 건 안 할 거야”라든지 “새로운 걸 하니까 전통적인 건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저는 전 세계인이 사랑한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음악감독 정재일 씨를 주목합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아 대단히 자유롭고, 생각의 폭에서 제한이 없어요. 틀을 가지면 그 틀 안에 갇히게 돼버리거든요. 우리나라에 정재일 작곡가 같은 분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국악도 여러 방면으로 열어놓고 심혈을 기울여야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성은 올해 국악이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나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어요. 제가 일반 초등학교에 국악 수업을 나가는데 학교 음악책에 있는 국악곡이 진짜 국악곡은 아니에요.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민요가 아니라 창작 국악 동요들이죠. 전통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도 학교 커리큘럼에서 시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악기도 낯설어합니다. 아쟁, 거문고, 가야금의 줄이 몇 개인지 모르고, 이름도 헷갈려합니다.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죠. 우리나라 교육정책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우리 국악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 코로나로 인해 공연예술계가 큰 타격을 받았는데 젊은 국악인들은 어떤지

김성은 코로나 이전에 우리가 설 무대가 많지 않았는데 오히려 온라인 공연 등 새로운 기회와 지원프로그램이 생겼어요. 예를 들어 국립국악원에서는 ‘국악인 프로젝트’라고 선발해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고퀄리티 음원으로 녹음을 해주었죠. 서울문화재단에서 온라인 창작지원을 해주었고, ‘청춘 마이크’라고 온라인 비대면으로라도 영상을 계속 만들어 무대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유세윤 저희는 1만 시간을 연습해서 1시간의 공연을 보여주는 무대예술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무대가 많아졌을 때 처음에는 대안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국악연주자들의 실력이 아니라 최고의 엔지니어 음향감독과 조명감독을 만나느냐 아니냐에 의해 좌우되는 점이 있어요.

또, 국악은 관객과 호흡이 섞이고 함께 어우러지는 부분이 강합니다. 관객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추며 공연의 일부가 됨으로써 무대가 완성되는 것이죠. 외국인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부분입니다. 젊잖게 관람만 하는 게 아니라 떼창을 하고 춤추는 게 우리 문화인데,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공연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구민지 코로나 초기에 잠깐 슬럼프가 왔어요. 모든 게 다 정지되어서요. 그 이후 청년 예술인을 위한 국가 지원사업이 잘 되어서 올해는 ‘풍류대장’ 출연 전에도 주말에 하루도 쉰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저를 찾아주는 공연들만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서 팀을 따로 결성해서 자작곡을 만들고 기획서도 써보며 제가 직접 공연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세 친구가 각자의 성을 붙여 ‘구이임 프로젝트’라는 팀을 결성했죠. 사실 제가 작곡을 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친구들이 “네가 노래할 것을 네가 만들어라”고 권했어요. 항상 작곡가들이 줬던 것만 하다 제 노래를 만드니 제 강점을 더 부각시킬수 있고 표현할 거리가 풍부해졌어요. 덕분에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었고, 공연을 기획하는 재미도 느꼈죠. 이번에 ‘풍류대장’에서 선보인 ‘마왕’과 ‘대한이 살았다’ 노래도 구이임 멤버인 이채현 군이 편곡해주었습니다. ‘구이임 프로젝트’로도 활동을 열심히 할 계획이고, 방송 출연 후 ‘해음’팀에 대한 섭외와 행사요청이 쇄도해서 ‘해음’으로도 많은 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 어려움 속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국악인들 있어”

국악그룹 '창작아티스트 오늘'. [사진=본인 제공]
국악그룹 '창작아티스트 오늘'. [사진=김성은 씨 제공]

- ‘풍류대장’에서도 국악 예술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젊은 국악인들이 재능을 펼칠 여건이 되는지 

구민지 일단 국악의 소비가 많지 않으니까 어려움이 있어요. 대회나 공연으로 계속 돈을 벌지만, ‘풍류대장’에 나가기 전까지 저도 계속 카페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교 선배들과 다양한 국악 협업을 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복수전공을 해서 다른 길로 나가는 선배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같이 할 사람이 없겠구나’하고 절망스럽기도 했죠.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작업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전향할 생각이 없었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고 정가를 계속할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대학에서 음악을 집중적으로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교수님들이 음악만 열심히 하는 저를 알아보시고 공연 무대에 많이 세워주셨어요. 아무래도 안정된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보니 떠나는 사람이 많지만, 어려움을 참고 꾸준히 활동 하는 분들도 계세요. 제 생각에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인 것 같아요.

김성은 젊은 계승자들이 예술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공감합니다. 무대가 많이 없는데 이를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더 해야 하죠.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특히 전통음악에만 몰두하는 국악인들에게는 설 무대가 없어서 더 힘이 듭니다. 그나마 국악 밴드나 대중음악과의 콜라보를 하는 경우는 음원 녹음이나 콘서트도 있고, 해외 무대도 있는데 그건 극소수죠. 지금 제 주변의 국악인 중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휴대폰을 판매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유세윤 지방에서 상주하면서 국악 활동을 하는 팀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jtbc ‘풍류대장’의 기획 단계에서 미팅한 적이 있는데 출연을 위해 서울에서 한두 달 정도 합숙을 해야 한다더군요. 각자 직장과 가정이 있는데 그게 어려워서 출전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지방에서 경제 불균형이 있어요. 그런데 문화 불균형이 생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광주와 전남을 지역 기반으로 해서 계속 뭔가를 시도하려는 마음이 더 생깁니다.

“계속 듣고 싶은 음악이 좋은 음악, 계속 듣고 싶은 국악 만들 것”

국악그룹 '프로젝트 앙상블 련'. [사진=유세윤 씨 제공]
국악그룹 '프로젝트 앙상블 련'. [사진=유세윤 씨 제공]

 

- 구민지 씨가 이번 jtbc ‘풍류대장’ 출연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출연을 통해 얻는 게 있다면 

구민지 방송에 출연하면서 이렇게 국악하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모르는 분들도 많았어요. 저희 팀은 2라운드까지만 하고 잘 떨어지는 게 목표였죠. 저희가 하고 싶은 음악과 방송국 측의 요구 사이에서 접점을 잡는 게 쉽진 않았죠. 모든 출연자가 느꼈을 텐데 실력이 아니라 약간의 운과 콘셉트가 더 중요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하려던 것을 다 하고 왔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번에 해음과 최예림 언니가 협업 무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합이 잘 맞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마왕’ 작품을 할 때 이미지로만 봐서는 제가 비련의 여주인공, 예림 언니가 마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언니가 ‘반전을 줘야 한다’라며 제게 마왕 역할을 맡겼죠. 결과에 흡족했습니다. 방송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언니가 배고프고 힘들게 살던 시절이 있었어요. 함께 협업하면서 매일 밥 먹이고 챙겨주셨어요. 제 지금 모습과도 동질감이 느껴졌는데 예림 언니와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게 기쁩니다.

- 앞으로 젊은 국악인으로서 활동계획은?

구민지 국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중화라는 단어에 엄청난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걸 꼭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정가가 모든 사람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고는 생각지 않거든요. 묵묵히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지 정가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겠다는 사명감은 없습니다. 정가가 조금 독특한 음악이기 때문에 이번에 돋보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가를 좋아하니까 이런저런 음악도 할 수 있었죠. 앞으로도 정가의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겠습니다.

김성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오늘의 음악, 미래의 음악을 위해 계속 모험하고 도전을 해야 새로운 게 나올 것입니다. 전통을 기반으로 살려놓고 새롭게 창작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게 저희 팀(창작 아티스트 오늘) 음악의 방향성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거 하자”고 했죠. 왜냐하면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더라도 우리 안에 전통음악으로 가득 차 있기에 그건 어디 안 갈 거라 확신하거든요. 새로운 시도를 해도 완전히 탈피할 수는 없죠.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을 지키면서 사람들이 오랜 시간 계속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일회용 음악을 선호하진 않거든요. 저는 계속 듣고 싶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세윤 저는 원래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든 감정들, 기쁨, 슬픔, 좌절감, 허탈감 등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싶었죠. 하지만 해가 바뀌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서 변화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공부해나가며 뿌리가 깊은 티베트, 라오스, 위구르, 몽골 등 동아시아 전통음악, 그리고 고려 때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교류를 해온 중동 음악과의 어우러짐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우리 음악 고유의 질감으로 다른 음악과의 융화, 그리고 우리 음악, 우리 악기로 좀 더 다양한 표현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악기만이 줄 수 있는 질감이 있는데 그걸 잘 표현하고 다른 동아시아권 음악과 합쳐지면 재미있는 요소와 콘텐츠가 새롭게 생겨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