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바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늴리리아”, “풍년이네 풍년, 금수강산에 풍년. 지화자 좋다 얼씨구”

힙합 가수 원슈타인이 부르는 ‘태평가’가 울리면, 스타일리시한 한복차림의 외국인들이 널뛰기를 하고 거리를 누비며 마음껏 전주를 체험한다. 새벽녘 수산시장 경매사의 독특한 외침에 바다가 삶 자체인 이들은 배우가 흉내 낼 수 없는 극적인 표정을 보인다. 그리고 힙합 가수 마미손의 ‘풍년가’가 울려 신명나게 퍼진다.

올해 선보인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즌2 '전주'편(위)과 '목포'편. [사진=한국관광공사]
올해 선보인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즌2 '전주'편(위)과 '목포'편. [사진=한국관광공사]

지난달 4일 한국관광공사가 내놓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시즌2 중 9번째 ‘전주’ 편과 10번째 ‘목포’ 편 영상이다. 지난해 국악그룹 이날치와 댄스그룹 앰비규어스 컴퍼니가 ‘범 내려온다’의 중독성있는 흥 속으로 전 세계인을 빠뜨려 버린 신화의 두 번째 버전 중 일부이다.

한국관광공사(이하 공사)는 지난해 판소리 ‘수궁가’를 재해석한 ‘범 내려온다’를 필두로, 총 6편의 시리즈 영상을 제작해, '범 내려온다'는 매일 한번은 해당 영상과 노래를 들어야만 한다는 ‘1일 1범’ 유행을 만들어냈다.

올해는 우리 민요로 분야를 확장해 ‘서산 머드맥스’를 비롯해 총 10편을 제작했다. 꼬막으로 만든 해골을 머리에 얹은 선두 경운기를 따라 서산 오지리 주민들이 30여 대에 나눠 타고 해미읍성을 지나 갯벌로 향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 ‘매드맥스’와 같은 장엄함과 비장미로 표현되어 ‘1일 1경’의 또 다른 유행을 주도했다.

젊은 세대가 국악을 친숙하게 접하는데 장애가 되는 ‘허들’이 제거되었다

현재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홍보 영상 시리즈는 공사의 유튜브 공식계정에서만 조회 수 2억9천 뷰를 넘었고, 페이스북 등 다른 계정까지 통합하면 6억 뷰가 넘는다. 해당 영상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싸늘하게 식은 관광분야에서 “이 위기만 끝나면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희망찬 기대를 심어준 콘텐츠이다.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홍보영상 중 '서산' 편. 지난해 '범 내려온다'가 매일 한번은 봐야 한다는 '1일1범'의 신화를 썼다면 올해는 서산 편이 '1일 1경'의 신화를 썼다. [사진=한국관광공사]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홍보영상 중 '서산' 편. 지난해 '범 내려온다'가 매일 한번은 봐야 한다는 '1일1범'의 신화를 썼다면 올해는 서산 편이 '1일 1경'의 신화를 썼다. [사진=한국관광공사]

해당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점은 우리 판소리와 민요가 세대와 나라, 문화의 벽을 넘어 통하는 막강한 소프트 파워를 지녔음을 확인시켜주었다는 것이다. 국악이 낯선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국악은 좀 지루하다’는 편견도 깼다.

홍보영상 제작과정에 공사 측 실무진으로 참여한 브랜드마케팅팀 함창호 차장은 “요즘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도 해당 홍보영상 샘플로 수업을 한다고 들었다”라며 “국악을 친숙하게 접하는데 허들, 즉 진입장벽 같은 게 존재했는데 그 허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합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 현상에 관해 최광식 고려대 명예교수(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는 “이날치의 영상을 보고 감격했다. 이젠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한 방탄소년단(BTS)이 숭례문과 경복궁을 배경으로 공연하며 영상을 찍는 것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라고 했다.

그는 장관 시절인 2012년, 한국 관광사업의 도약을 위한 방안으로 우리나라 궁궐을 배경으로 한류 스타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자는 아이디어를 낸 바 있다. 이를 각 연예기획사마다 전해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모든 기획사가 거절했다. “궁궐을 배경으로 하는 건 아주 촌스럽고, 글로벌하지 않다”라는 답변이었다.

아리랑, 도라지가 옛 선조들이 즐긴 민요라면 트롯은 21세기 현대의 민요

최 교수는 “그 제안이 연예계에 퍼졌는데 가수 싸이가 선뜻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항상 고맙게 기억한다.”라고 밝혔다. 싸이는 2012년 5월 현대적인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런던올림픽 응원가를 불렀고, 그해 8월 열린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역대 최고 성적인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최 교수는 “같은 해 7월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발표해 ‘엇박’의 말춤으로 세계를 매료시켰다. 우리 소리, 우리 가락은 세계인을 매혹시킬만한 보편성과 잠재성이 있는 콘텐츠”라고 소견을 밝혔다. 아울러 “방송 ‘미스트롯’ 1대 진 송가인뿐 아니라 2대 진 양지은, 선 홍지윤, 미 김다현, 4위 김태연 모두가 국악인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국악을 통해 훈련된 것”이라며 “아리랑, 도라지 등이 옛 선조들이 즐긴 당시의 민요라면, 트롯은 21세기 민요일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도시마다 서로 다른 콘셉트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영상을 제작했다. 슬로라이프 도시 '순천' 편. [사진=한국관광공사]
올해는 도시마다 서로 다른 콘셉트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영상을 제작했다. 슬로라이프 도시 '순천' 편. [사진=한국관광공사]

서울 동묘시장 상인과 파고다공원 어르신 담은 영상 세대 간 격차, 갈등 해소의 희망 전해

한편, 공사 함창호 차장은 올해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시즌2의 변화에 대해 “작년과 비슷한 콘셉트라면 올해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게 프로젝트 참여자 모두의 판단”이었다고 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관광지로 덜 알려진 도시의 경우, 그만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가 필요했다.”며 도시마다 다른 콘셉트로 ‘로컬 브랜딩’을 시도한 이유를 밝혔다.

그 결과, 평범한 시민의 삶이 조명 받았다. 순천은 자연 속에서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 그리움을 심어주는 슬로라이프 도시로서, 목포는 새벽 수산시장에서 펄떡이는 생선만큼이나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로서 매력이 부각되었다. 서산 오지리 주민들이 참여한 서산 머드맥스 영상이 발표된 이후, 귀촌 문의가 쇄도하는 활기찬 마을이 된 효과도 거두었다.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즌2 '서울'편. [사진=한국관광공사]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즌2 '서울'편. [사진=한국관광공사]

함창호 차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영상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총 15편 중 시즌 2에서 파고다 공원 어르신들과 동묘시장 상인들이 직접 출연한 ‘서울’ 영상”이라고 손꼽았다. 해당 영상에서는 청년보다 더 뛰어난 패션센스를 선보이는 어르신들, 옛 정취가 가득한 가게 앞에서 믹스커피 한 잔을 나누는 상인들의 순박하고 주름진 얼굴에 활짝 피어난 미소는 자신의 삶과 일을 사랑하는 긍지가 엿보인다.

함 차장은 “영상시청 후 ‘K-할머니, K-할아버지 멋지다’, ‘나도 닮고 싶다.’ ‘저분들을 존경한다.’, ‘이분들이 있어서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세대 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실감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는 젠더갈등(남녀 대립) 못지않게 세대 간 가치관과 성향 차이로 인한 대화 단절과 혐오가 심각하다. 우리 민요 ‘아리랑’과 힙합이 어우러진 흥겨운 1분 30초 홍보 영상이 불러온 나비효과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