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이라고 할 때 문득 폭포 아래서 세찬 물소리를 뚫고 목청껏 내지르고 피를 토하며 결국 소리를 얻어내는 고행이 떠오르지 않을까?

폭포 아래서 7년 간 혹독한 단련을 통해 폭포 목청을 얻은 배일동 명창. [사진=본인 제공]
폭포 아래서 7년 간 혹독한 단련을 통해 폭포 목청을 얻은 배일동 명창. [사진=본인 제공]

지금은 많은 예술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에 국악과가 있어 현대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만, 과거 전통적으로는 명창을 찾아 스승으로 모시고 ‘판’에서 직접 사람들과 호흡하며 배웠다. 재기발랄한 젊은 국악인 3인 인터뷰에 이어 지난해 12월 27일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판소리의 맥을 잇는 배일동 명창(57)을 만나 그의 삶과 국악에 담긴 원리와 철학을 들어보았다.

“며칠 전 호주 시드니 음대 학생들과 화상수업이 있었죠. 우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 글자 속 원방각(◌□△)원리가 국악에 담겨있다는 것을 세세히 설명하니 외국 학생들이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고 표현하며 감동하더군요.”

국악 속 드라마 '오징어 게임' 글자 속 원방각 원리에 시드니 음대 학생들 감동

배일동 명창은 현재 국악 인재를 양성하며 우리 소리 국악으로 전 세계 젊은 음악인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최근 우리 소리와 힙합, 서양 클래식과의 콜라보, ‘풍류대장’ 등 국악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에 대해 그는 “새로운 시도와 조화는 언제나 신나는 일”이라며 “저 역시 그러한 시도를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지구가 끊임없이 돌고 돌 듯 변화하는 우주 운동 본연의 임무라고 봅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연구실에서 만난 배일동 명창은 그의 삶과 국악 속에 존재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리, 우주의 원리, 철학을 전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연구실에서 만난 배일동 명창은 그의 삶과 국악 속에 존재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원리, 우주의 원리, 철학을 전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풍성한 성량으로 인해 ‘폭포 목청’이라는 별칭을 가진 배일동 명창은 호주 출신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와 트럼펫 연주자 스콧 팅클러와 프로젝트 그룹 ‘CHIRI’를 결성해 판소리와 재즈를 접목한 공연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또한 2010년에는 사이먼 바커와 사물놀이 명인 김동원과 함께 한국의 예술정신과 문화 우수성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출발은 어떠했을까? 전라남도 순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의 일상생활은 남도민요 ‘육자백이’와 늘 함께했다.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길쌈을 할 때, 물레 돌릴 때, 모 심고 밭일할 때, 부엌에서 밥 지을 때, 도랑에 모여 빨래할 때 말하듯이 민요를 흥얼거렸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판소리와 육자백이를 들으며 뛰었죠. 자진모리나 휘모리장단이 나오면 좋은데, 진양조 타령이 나오면 달리다 힘이 빠졌죠. (하하) 초등학교 2학년 가을 소풍 때 예쁜 여선생님이 장기자랑 시간에 부른 새타령을 기억하려 애썼어요. 그리고 노란 고무줄 한쪽을 입에 물고 한 손으로 늘이며 다른 한 손으로 퉁기며 가야금 소리 흉내를 내면서 놀았죠.”

그가 국악과 운명적인 만남을 한 때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장날 방과 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가려고 시장에 들렀다. “어머니와 동네 분들이 함께 시장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 배추 파는 모습을 보고 어린 내 맘이 왠지 한없이 서럽고 아려왔어요. 그러다 우연히 국악원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를 접한 순간, 애수 어린 음색과 예술정서가 마치 시골 사람들의 아픔과 한처럼 들렸죠. 그 소리가 너무나 좋아 흘러나올 때마다 귀 담아 듣고 흥얼거렸어요. 그러면서 판소리 2대목을 배웠죠.”

그는 26세 때 첫 스승 염금향 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국악의 세계에 입문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는 26세 때 첫 스승 염금향 선생을 만나 본격적으로 국악의 세계에 입문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그는 해양대학에 진학해 졸업하고 기관사로 4년간 돈을 벌었다. 그런 중에도 판소리를 녹음해 들으며 독학을 했다. “26살이 되었을 때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게 있으니까 뒤에서 제 머리를 잡아채는 것 같았죠. ‘내 길을 가야겠다’ 큰맘 먹고 첫 스승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순천에서 스승 염금향 선생을 만나 배웠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와 신촌에 있던 유명한 전통 찻집 ‘가온누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숙식을 해결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춘향가’와 ‘심청가’를 사사받았다. 다시 전북 남원으로 가 임방울 명창과 함께 활동했던 판소리 보유자 강도근 선생으로부터 ‘흥보가’와 ‘수궁가’를 사사받았다.

“염금향 스승과 성우향 스승의 소리는 서편제와 동편제를 아울러 일명 보성소리로 불리는 강산제이고, 강도근 스승은 동편제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 30대 초반 그의 판소리 인생에 큰 격변이 일어났다. “1900년대 초 활동했던 다섯 명창 중 송만갑, 이동백 명창의 소리를 축음기로 듣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나 담백하게 실제 말하듯이 부르더군요. 마치 심청가, 춘향가 속 그 현장에 들어온 듯 이제껏 들은 소리와 확연하게 달랐어요. 그동안 배운 소리는 기교를 많이 포함해 현대화된 소리였더군요. 게다가 이동백 명창이 살아생전이던 1920년대 신문사와 했던 대담에서 음양오행과 소리의 연관성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한 걸 보고 놀랐습니다. 도저히 그대로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는 1900년대 초 활동하던 다섯 명창의 담백하면서도 실제 말하듯 노래하는 판소리를 축음기로 듣고 홀로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는 1900년대 초 활동하던 다섯 명창의 담백하면서도 실제 말하듯 노래하는 판소리를 축음기로 듣고 홀로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가 지리산 선암사로 홀로 공부를 위해 떠난 때가 서른두 살 때였다. 산으로 들어가 폭포 아래서 7년 세월을 혹독하게 단련했다. “옛 어른들이 독공 할 때, 기운이 약한 초심자는 토굴에서 시작해서 밖으로 나와 힘을 기르고, 생동하는 기운이 넘치는 폭포에서 내공을 쌓아 탁 트인 산 정상, 바닷가에서 허공에 대고 소리를 뽑는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폭포 옆 바위에 의석대倚石臺라고 이름 붙이고 소리를 하다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바위에 기대어 답이 나올 때까지 물었습니다.”

우리 선조들 엄청난 우주적 질서를 율려에 담아 놓았다

한편, 어릴 때 학교 공부와 담을 쌓은 그에게 아버지가 국어사전을 달달 외우며 단어의 개념과 한자를 정확하게 깨치도록 교육시켰다. 덕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 ‘말과 침묵’뿐 아니라 동양 고전인 장자와 노자 등 철학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학생 때는 그냥 읽었는데 산에서 공부하며 수행을 하니 체험적으로 깊이 깨우치게 되더군요. 우리 선조들이 엄청난 우주적 질서를 율려律呂에 담아 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장단도 호흡도 발성도 모두 우주 질서에 따라 율려를 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말의 발성을 연구하느라 훈민정음 해례본을 공부했고, 박자와 장단을 위해 고대 그리스 수리 철학 등 수리학을 비롯해 한민족 최고最古의 경전 ‘천부경’까지 연구했다. “고대의 수리 체계가 농악이나, 전통민요, 판소리에 뚜렷하게 반영되어있어요. 태양력의 24절기가 24박의 진양조에 반영되었고, 12박의 중모리와 중중모리는 12달을 본떠 만들어졌죠. 자진모리와 휘몰이장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본떴습니다. 장단의 기본수는 3인데 세마치를 기본으로 모든 장단에 유용되고 있어요. 3박은 해와 달, 지구의 운동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는 천지인, 원방각 원리 등 삼원사상과도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는 ‘아리랑’ 가락 한 마디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이 담겨있다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생장수장生長收藏이라 하는데 나고 번성하게 자라고, 수확하며 다시 내년을 기약하여 숨기는 것이죠. 새봄처럼 소리를 시작해 웅장해지고 다시 거둬들이는 겁니다.”

배일동 명창은 산에서 독공을 하면서 국악 속 원리와 철학을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배일동 명창은 산에서 독공을 하면서 국악 속 원리와 철학을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우리 소리에는 우주 자연의 철학과 천부경을 비롯한 수리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국악에 수리학을 접목한 이론도 이야기했다. “고대 그리스 수리학에서 ‘1’을 서로 다른 양극을 품는 ‘엄마의 자궁 수’라고 하는데, 우리 국악의 박자도 하나에서 셋으로 갈라지면서 삼박으로 가며 하나가 셋을 품고 있어요. 그리고 국악에는 천부경의 원리도 들어있어요. 국악에서 ‘고리를 단다’라고 하여 이쪽 소리와 저쪽 소리를 연결하는 것이 있어요. 일시무시 일종무종(一始無始 一終無終) 시작도 끝도 없이 돌고 돌아 우리 노래는 밤새도록 부를 수 있어요. 서양음악에는 없는 개념이죠.”

국악에는 우리 민족의 수리철학과 천문세계관 반영…세계에서 유일

또한, 배일동 명창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된 우리말과 한 음절로 된 일본어, 성모와 운모로 구성된 중국어와의 차이와 한계를 설명하면서 “흔히 음악의 음계와 장단의 원리가 중국음악철학에서 비롯됐다고 알고있지만, 이는 본래 우리 민족의 수리철학과 천문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현존하는 중국음악에서는 우리음악의 장단원리 같은 수리철학이 아니다. 지구가 자전 공전하면서 변화하는 일력과 달력의 수리가 음악의 장단과 박자원리에 도입된 것은 우리 국악이 세계에서 유일하다”라고 강조했다.

국악인으로서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배일동 명창은 “예술인을 택할 때는 배고픈 걸 각오했으니까 그건 괜찮아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는 노래하는 소리꾼이나 배우 등이 8가지 천한 직업 중 하나였어요. 그런 인식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요. 우리 국악에 담긴 철학과 원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전파하려 노력하는데 지식층에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중국, 일본만 해도 기술로 일가를 이룬 ‘쟁이’들을 경시하지 않고 전문가로서 존중해 그들이 이론과 원리를 쓴 저서나 연구들이 남아 있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소리에 담긴 원리와 철학을 외국 교수와 학생들에게 전하면 그 깊이에 감탄하는데 오히려 국내에서 그런 걸 인정받기 힘이 듭니다”라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배일동 명창이 국악에 내재된 우주 철학과 원리를 설명하는 모습. 그는 시드니 음대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젊은 음악인들에게 확상강의로 소통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배일동 명창이 국악에 내재된 우주 철학과 원리를 설명하는 모습. 그는 시드니 음대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젊은 음악인들에게 확상강의로 소통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악 연구에 정진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지금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고, 국악도 크게 주목받고 있죠. 방탄소년단(BTS), 영화와 드라마, 손홍민 선수, 싸이, 그리고 ‘범 내려온다’를 부른 이날치 밴드 등 많은 ‘쟁이’들이 정말 놀랄만한 인기를 얻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계속 한류를 유지할 순 없습니다. 그런 문화 예술에 담겨 있는 철학과 미학의 정수를 뽑아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라고 일갈했다.

또한, 배일동 명창은 “현재 국악을 하는 재원들이 많아졌고,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교육체계가 갖춰졌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20대 후반에서 30대인데 그때까지 남이 가르쳐주는 형식적인 공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가가 되려면 자기 스스로 수행하며 깨달을 수 있는 독공獨工을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대자유의 큰 바다에서 노닐고자한다면 자신의 물길을 끊임없이 주시하면서 정진해야

그는 오랫동안 경험을 통해 젊은 국악인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우선 대기만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큰 그릇은 늦게 채워지는 법이죠. 대자유의 경지인 바다까지 가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젊어 한 때 창작의 대열에 끼어 신나게 노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물길을 잊어서는 안 되죠. 큰 강을 넘어 걸림 없는 대해大海에서 노닐고자한다면 자신의 물길을 끊임없이 주시하면서 정진했으면 합니다. 예술가는 당대에 내가 최고라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태어나서 어떠한 존재적 가치를 발현할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대가가 되려면 수천 년 내려온 선배 명창들, 그리고 자연에 비견해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배일동 명창은 젊은 국악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배일동 명창은 젊은 국악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물길을 잊어서는 안 된다. 큰 바다에서 노닐고자 한다면 자신의 물길을 끊임없이 주시하면서 정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진=본인 제공]

인터뷰를 마치며 배일동 명창은 자신이 추구하는 국악의 세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악은 그냥 음악입니다. 음악을 좋아해서 입문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즐길 겁니다. 국악은 나의 애틋한 삶이죠. 조상들이 바라보았던 세상에서의 언어와 음악을 통해 일상의 감성과 자연들의 정경을 노래했던 살뜰한 심정으로 그저 노래할 뿐입니다. 국악의 장점은 결국 살아가는 모습을 선율로 펴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사람 살아가는 모습, 자연의 본모습을 들여다보며 음악으로 표현해내는 게 제 음악 세계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