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국악이 외국인은 물론 우리나라 젊은 층까지 사로잡으며 대중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2018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선보인 국악의 매력. [사진=방탄TV 영상 갈무리]
방탄소년단(BTS)이 '2018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선보인 국악의 매력. [사진=방탄TV 영상 갈무리]

과거에도 한국 국악의 가락과 춤, 흥이 해외에서 뜨거운 환호를 받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2년 창단되어 세계에 한국 전통문화를 알린 리틀엔젤스예술단, 김덕수 사물놀이패, 그리고 세계 유수의 군악제에서 단연 독보적인 퍼포먼스로 주목받는 대한민국 국악대 등 사례는 다양하다. 88서울올림픽,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등 전 세계를 향해 한국을 알릴 국제 행사에서 주목받았다. 반면, 국내에서 국악은 대중에게, 특히 젊은 층에게 사랑받는 음악이기보다 박물관의 문화재처럼 박제된 이미지가 강했다.

최근 글로벌 스타인 방탄소년단(BTS)이 국악의 매력을 뽐냈다. 2018년 12월 1일 ‘2018 멜론뮤직어워드’에서 제이홉이 삼고무를, 지민이 부채춤을, 정국이 봉산탈춤과 북청사자놀음으로 전통문화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계를 열광케 했다. BTS 멤버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는 2020년 5월 발표된 이후 올해 12월 20일 기준으로 유튜브 조회 수 3억2,500만 뷰를 넘어섰다.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발표한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지난해 5월 발표되어 올해 12월 20일까지 유튜브 조회 3억2,500만 뷰를 넘어섰다. [사진='대취타' 뮤직비디오 영상 갈무리]
방탄소년단(BTS) 슈가가 발표한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지난해 5월 발표되어 올해 12월 20일까지 유튜브 조회 3억2,500만 뷰를 넘어섰다. [사진='대취타' 뮤직비디오 영상 갈무리]

또한, 지난해 국악그룹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 수궁가를 들어보지 못한 청소년도 몸이 절로 들썩이고, 따라서 춤추게 했다. 최근 아이돌 가수, 힙합 레이블, 트로트 등에서 진행되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국악계를 향했다. 지난 21일 최종 우승자를 가르고 대단원의 막을 내린 jtbc ‘풍류대장’과 MBN ‘조선판스타’를 통해 우리는 국악의 새로운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 시기에 과거 우리의 대중음악이던 국악을 계승한 현재의 젊은 국악인들이 내일의 국악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3명의 청년 국악인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풍류대장’에서 정가正歌의 청아한 매력을 알린 국악그룹 ‘해음’의 보컬 멤버 구민지(25) 씨,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국악창작곡 개발-21c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올해 대상을 국악그룹 ‘창작 아티스트 오늘’의 작곡가 멤버 김성은(27) 씨, 전라남도와 광주를 중심으로 10년 넘게 활동해온 ‘프로젝트 앙상블 련’의 작곡가 멤버 유세윤(35) 씨이다. (인터뷰는 세 명에게 공통 질문과 개별질문으로 각각 진행했다.)

(왼쪽부터) 국악그룹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김성은 씨, '프로젝트 앙상블 련'의 유세윤 씨, '해음'의 구민지 씨. [사진=본인 제공]
(왼쪽부터) 국악그룹 '창작아티스트 오늘'의 김성은 씨, '프로젝트 앙상블 련'의 유세윤 씨, '해음'의 구민지 씨. [사진=본인 제공]

- 청년 국악인 세 분이 소속된 국악그룹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성은(창작아티스트 오늘) ‘창작 아티스트 오늘(ONEUL)'은 한국예술종합대학(이하 한예종)의 선후배 판소리, 민요 소리꾼이 모여 2019년에 결성되었어요. 팀명처럼 현시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오늘‘을 보내는데 그 ’오늘‘을 공유하며 음악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음악적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해요.

유세윤(프로젝트 앙상블 련) 전남대 국악과 학부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어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든 우리 연주로 잇닿게 하다’라는 뜻으로 프로젝트(주제) 앙상블(연주) 連(잇닿을 련)으로 활동 중입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야사를 모티브로 한 창작 작업에 집중하고 있죠. ‘조선 가물란-코길이(코끼리)를 위한 헌정곡’, ‘조선5인조-세종, 세조, 박연, 정인지, 성종’ 등이 결과물이죠.

구민지(해음) 저는 ‘구이임 프로젝트’ 등 여러 그룹과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가야금과 거문고 듀오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룹 ‘달음’의 하수연, 황혜영 언니가 이번에 ‘풍류대장’에 출연하면서 정가正歌를 선보이고자 저를 보컬로 영입했어요. 해와 달, 그래서 이번에 팀명을 ‘해음’이라고 했습니다. 저희 멤버 3명은 현재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청소년국악단 단원이죠. 20~29세까지 활동합니다.

- 국악을 어떤 계기로 전공하게 되었는지

김성은 저는 예술고나 국악고를 다니지 않았어요. 그게 오히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음악 분야를 굉장히 넓혀 주었죠.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부모님은 취미로만 배우라고 하셨어요.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죠.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 때 진학할 학과, 학교를 정하는데 저는 분야가 음악이어야겠다고 선택했어요. 전통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었죠. 뭔가 정체성이 확실하겠다는 생각에 국악작곡을 선택했는데 친구들도 “국악을 어떻게 작곡해?”라며 신기해했어요. 한예종에 진학해 대학에서는 한국음악 작곡, 대학원에서는 지휘를 전공했어요. 남들보다 시작이 늦었죠. 대학에 가서야 국악을 전공했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합주하고 작곡하는 게 너무나 재미있어요.

유세윤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는데 왼손에 약점이 있어서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죠. 예술고등학교 2학년 때 아쟁으로 전공을 바꾸었어요. 국악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접했는데 부모님이 “국악을 전공해보면 좋겠다”고 권하셨죠. 그때는 미성년자니까 부모님 영향이 컸습니다. 대학에서 아쟁을 전공했고 작곡을 독학했습니다. 공연에서 가끔 피아노도 칩니다.

구민지 저도 부모님 영향이 커요. 어머니는 고등학교 때 정가를 배우고서 전공하고자 했는데 외조부모님이 반대하셨다고 해요. 아버지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는데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부딪혀 방송국 PD가 되셨고요. 하지만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을 소개하는 TV방송 프로그램을 연출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공연을 볼 기회가 많았죠. 제가 춤과 노래를 좋아해서 국악 중‧고등학교를 가려고 준비했는데 어머니가 종종 불러주는 정가가 너무나 예뻐서 정가를 전공했죠.

jtbc '풍류대장'에서 우리 국악 중 정가正歌를 알린 '해음'의 공연 무대. [사진=구민지 씨 제공]
jtbc '풍류대장'에서 우리 국악 중 정가正歌를 알린 '해음'의 공연 무대. 노래하는 구민지 씨. [사진=본인 제공]

- 국악 크로스오버 오디션 jtbc ‘풍류대장’이 거둔 큰 성과로 국악 중 ‘정가正歌’라는 장르를 대중에 알린 것을 손꼽는다. 정가는 어떤 노래이고, 진정한 매력은 무엇인지

구민지 정가는 ‘바른 노래’라는 뜻을 가졌어요. 판소리, 민요가 서민의 음악이라면 정가는 지식층 선비의 음악이죠. 사랑방에서 시조를 주고받으면서 생겨나서 문학과 음악이 결합한 형태예요. 판소리나 민요는 흥겹고 희로애락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정가를 부를 때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서 무표정하게 한 곳만 응시하며 노래하죠. 매우 느리고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그런데 느리고 표정 없이 입으로만 부르니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운 점이 있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이번에 대중가요와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면서 특징적인 창법이나 시김새 이런 것들만 활용하고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판소리나 민요는 거친 소리가 많아서 대중가요와 어울릴 때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오히려 정가 발성이 대중가요랑 이질감 없이 더 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듯합니다.

- 프로젝트 앙상블 련은 지난 12월 23일 국악방송 연말 특별 송년 공연에서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을 접목한 가믈란을 선보였다. 다른 나라 전통음악과의 콜라보를 시도하는 중인지

유세윤 우리 국악기로 가믈란(Gamelan)의 질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조선 태종 때 일본 사신이 코끼리를 조선에 바친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모티브로 했어요. 제 고향을 떠나 힘든 여정에 시달리고 타국에서 외로운 삶을 보낸 코끼리(당시 명칭 ‘코길이’)를 위한 헌정곡이어서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을 접목한 것이죠. 제가 계속 공부하면서 시도 중인데 중국음악과 국악의 조화는 잘 이루지 못했어요. 지금은 태국 전통음악과의 접목을 염두해 창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 국악은 대중의 삶 속에서 태어나 대중과 호흡하던 음악이었는데 그동안 대중과 멀어졌던 이유를 무엇이라 보는지

김성은 사실 주변의 젊은 국악인들도 평소 국악을 안 듣는다고 해요. 대중과 멀어진 건 일제강점기 ‘문화통치’라는 미명아래 우리 음악을 하지 못한 게 큰 영향이라고 봅니다. 국악이 일본화되고 서양음악화 되고 많이 훼손, 유실되지 않았나 합니다. 게다가 해방 후에는 서양문화가 더 각광을 받았죠. 예를 들어 가야금 또는 바이올린 중 선택하자면 바이올린이 더 상류층이 즐기는 예술이라고 여겼죠. 또, 국악에서 대중과 가까워지려는 시도가 전통을 지키려는 분들에게 눈엣가시였던 듯 합니다. 국악을 훼손한다는 인식이죠. 그러다 보니 대중의 요구에 맞추지 못했던 점이 있어요. 그리고 대중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아요. 한동안 서양음악을 국악기로 연주하는 시도가 있었는데 대중은 그걸 원한 게 아니었어요. 완전히 전통을 훼손한 상태를 원하는 건 아니고, 전통은 살리면서 서양음악, 대중음악과의 조화로움에 주목하는 걸 느낍니다.

유세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엔카演歌가 넘어와서 우리나라 트로트가 되었고, 대중의 관심이 쏠렸어요. 옛날 트로트는 국악적 요소와 일본 엔카가 혼합되어 있죠. 광복 이후 미군 부대를 통해 재즈가 유행하고, 60~7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퀸 등 로큰롤 열풍이 불었고, 90년대에는 힙합 문화가 들어오면서 국악이 설 자리가 줄어든 겁니다. 국악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너무나 많아져 경쟁에서 밀린 거죠.

아울러 국악 발전에서 굉장히 중요한 뿌리 역할을 하는 사랑방 문화가 일제강점기 때 없어진 것도 원인이라고 봅니다. ‘판’을 벌일 장소와 기회를 30여 년 그렇게 빼앗긴 건 아픈 역사죠. 그리고 광복 이후 남북이 갈라지면서 북한에서는 판소리가 없어졌어요. 판소리 자체가 민중의 설움, 아픔들을 담는 음악인데 북한의 사상과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전공한 아쟁이란 악기도 북한에는 없죠. 또 하나는 판소리 사설은 절반 이상이 한문입니다. 저는 한문을 배웠지만 지금 세대에게 한문은 선택과목이죠. 좋은 소리꾼이 판소리를 들려주어도 10대~20대 청소년, 청년들에게는 낯설기만 합니다. 적벽가만 해도 왜 유비의 이름이 5~6개가 되는지 혼란이 오죠. 그러니 듣기 편한 서양 문화가 더 쉽게 다가오는 점도 있어요.

국악의 새로운 창작에 “환영” VS. “전통을 안하고 이상한 걸 한다” 의견 갈려

국악과 동아시아 음악의 콜라보를 시도한 '프로젝트 앙상블 련'. [사진=국악방송]
국악과 동아시아 음악의 콜라보를 시도한 '프로젝트 앙상블 련'. [사진=국악방송]

 

- 대중음악, 서양 클래식과의 콜라보 등 새로운 창작 열기가 뜨겁다. 이런 현상을 국악인들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국악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지

유세윤 그동안 국악을 알리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역할이 무척 컸다고 봅니다. 글로벌 영향력으로 인해 우리나라 문화를 해외에 정말 빠르게 알린 거죠. 외국인들이 “한국의 힙합, 한국에 이런 멋진 문화가 있었네”라고 발견했고요. 그 후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유튜브를 통해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많은 방송매체에 소개되고, 관심이 쏠리면서 오디션 프로그램도 시류를 타고 등장했습니다.

구민지 ‘풍류대장’에 출연을 결심했을 때 아주 조용히 나갔어요. 좋지 않은 시선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좀 겁이 났거든요. 그런데 뭐든 도전을 해봐야 직성이 풀려서 일단 나갔어요. 선배나 교수님들이 질타하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좋아해 주셨어요. 카톡으로 ‘잘 보고 있다’고 연락해주시고. 많은 분이 이렇게 국악인들이 대중 앞에 서는 것을 기대하고 좋아해 주신다는 걸 알았죠. 앞으로 활동하는데 더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성은 저는 국악의 대중화를 견제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좀 보수적인 국악 선생님들은 “전통을 안 하고 이상한 것을 한다”라고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죠. 하지만 전통을 계승하는 것과 새로운 시도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전통만을 고지식하게 고집하다 보면 더 대중과 멀어질 것 같습니다.

[국악이 힙해졌다] 2편(2) 국악 돌풍 속 젊은 국악인들의 목소리는?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