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어떻게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을까-역사공부를 재미있게 하는 법
콜럼버스가 어떻게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을까-역사공부를 재미있게 하는 법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1.04.0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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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 가마가 우리 역사와 관련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면 역사 공부가 재미있고 흥미가 생길 것이다.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 쌍둥이도 있고, 도플갱어도 존재한다고 하지만 속과 겉이 똑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라면서 더 많은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그런데도 다름에 그리 관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말로는 관대하다고 하지만 정작 나에게 닥친 다름 앞에서는 우리는 말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름을 이해하는 좋은 소재가 역사다

이러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바로 역사이다. 역사 중에서도 인물 이야기를 통해 서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위인전이라고 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만 그 소재로 삼았다. 요즈음은 선악 구분과 관계없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인물 이야기로 다룬다. 인물들의 다른 삶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삶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그러면 다른 점만 알고 이해하면 될까? 아니다. 다름을 이해하는 목적이 중요하다. 간혹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 다르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는 진정한 목적은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과 함께 공존하기 위함이다. 또한 다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자기 자신과는 뭐가 다른지를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 삶이 단조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다 보면 우리 인생에서 정답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인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 역사에는 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살아 왔던 삶과 앞으로 살아갈 삶이 존재한다. 그것을 바라보고 우리의 삶과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찾아 같은 점을 통해 공감을, 다른 점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배우게 된다.

콜럼버스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역사적 진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들 한다.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들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신대륙이라고 일컫는 땅에도 이미 사람들이 존재했고 나름의 문명을 갖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저 낯선 이방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네 땅을 침범한 것이다. 그럼 무엇이 진실일까? 한 쪽은 발견이고, 다른 한 쪽은 침범이라고 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역사적 진실은 당시 콜럼버스와 그 일행이 낯선 땅에 도착을 한 것이다. 도착을 해 보니 자기네들과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역사 기록은 승리한 콜럼버스 일행들의 말을 그대로 기록하여 ‘신대륙의 발견’ 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다른 관점에서는 잔혹하고 이기적인 침입자였다. 그가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마야문명, 잉카문명 등 찬란한 고대 문명을 창조했던 원주민들은 학살되었고, 그들의 땅을 빼앗기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바스쿠 다 가마와 임진왜란의 관

대항해 시대를 열 수 있게 해 준 또 다른 탐험가가 있다. 바로 바스쿠 다 가마이다. 바스쿠 다 가마는 포르투갈 출신 탐험가로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신항로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 덕분에 일본에 총이 전달되었으며, 당시 일본에 전달된 총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해서 조총(鳥銃)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조총을 입수한 일본은 이를 대량 생산하면서 대규모 조총부대를 갖추게 되었고, 그렇게 전쟁준비를 마친 후 1592년 임진년에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명분을 내걸고 조선을 침략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임진년(1592년)에 발생한 왜의 난리”라는 의미인데, 왜는 일본을 비하하기 위한 표현이며 그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표현한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동아시아 국가였던 조선과 일본이 전면전을 수행한 국가 간의 전쟁이었다. 그렇게 보면 조일전쟁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임진왜란은 그 전쟁의 참상으로만 봐도 참혹하지만 전쟁 이후의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 당시 자기반성이 없었던 위정자들의 시대착오적 선택으로 국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백성들의 삶은 더 참혹해졌다.

반면 일본은 전쟁 후 끌려갔던 조선의 많은 학자, 도공, 예술가, 기술자에 의해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렇듯 임진왜란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말해 주지 않았던 또 다른 역사가 있다. 콜럼버스와 바스쿠 다 가마로부터 비롯된 대항해시대의 영향과 청동제의 무거운 대포가 철제의 가벼운 총으로 대체되면서 휴대가 가능해 지고 무기 양산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으며, 조총과 함께 수입된 천주교를 통해 동아시아인들의 생활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명나라 군대가 참여해 국제전 양상도 보여 주었다. 그런가 하면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이순신 장군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의 평가

콜럼버스가 탐험을 시작한 것은 당대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사명인 기독교의 전파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이 아닌 각종 향신료의 수입과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금과 보물을 통한 부의 축적이 목적이었다. 콜럼버스는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였는데, 아메리카에 상륙한 것은 그 가운데 제1차 항해 때의 일이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을 인도라고 믿었는데, 그래서 그 지역을 서인도제도라고 불린다. 그의 서회 항로 개척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은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홀로코스트(집단학살)'이라고 명명되는 정책을 폈다. 원주민은 조직적으로 노예화되고 살해되었다. 수백 명이 유럽으로 팔려갔고 다수는 그 과정에서 죽어갔다. 나머지 인디언들은 금을 가져오게 하여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수족을 잘랐다. 실제로 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많은 원주민은 도망갔고, 스페인 군인들은 이들을 사냥의 방식으로 죽였다. 원주민들은 이에 저항하였으나 스페인의 무기가 훨씬 우수했기 때문에 스페인 군인들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고, 유럽에서 옮아온 전염병은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 절망 속에서 원주민들은 자식들과 동반 집단 자살하였다.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았다. 노예화되고 사망률이 높은 대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세계사에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콜럼버스는 잔혹한 정복자로서의 모습 또한 갖고 있었던 것이다.

미대륙을 신대륙으로 인식하고 아메리카로 명명된 역사의 비극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알려진 아메리카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합친 대륙의 이름이다. 아메리카는 개척 민족의 비율에 따라 북부 아메리카는 앵글로아메리카, 남부 아메리카는 라틴아메리카라고 불린다. 신항로 개척 때의 유럽계 개척자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현재 토착 원주민들은 거의 멸족이 된 상태이다. 아메리카가 처음으로 대륙의 이름으로 쓰인 것은 독일인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이탈리아인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지도를 만들면서 아메리카란 이름이 붙었다. 이는 아메리고가 했던 거짓 주장을 발트제뮐러가 믿었기 때문으로, 발트제뮐러는 그 이후에 선택을 후회하고 아메리고의 이름을 본인 저작물에서는 삭제했지만 이미 명칭이 통용되고 말았던 것이다.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하면서 대륙의 이름은 콜럼버스 일행들을 따라 다니며 갑판장의 심부름이나 하던 아메리고의 이름을 붙인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아메리고의 책 ‘신세계’가 출간되어 그의 책을 읽은 발트제뮐러는 그의 주장을 믿고,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신대륙의 이름으로 하자는 주장을 하였으며, 그의 주장이 결국 유럽인들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아니었기에 대륙의 이름을 새로 지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인디언이라는 원주민의 이름 또한 인도라고 착각하고 인도사람의 의미로 쓰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1519년 코르테스가 멕시코 상륙을 앞두고 섬 주민 몇 명을 자기 배로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자신이 곧 약탈하려는 장소 이름을 그들에게 물었는데, 한 남자가 "마 쿠바 단"이라고 대답했다. 정확히 450년이 흐른 뒤 마야어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마 쿠바 단”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는 뜻이라는 걸 밝혀냈다고 한다. 결국 “모르겠다고” 한 말이 한 나라의 국호된 것이다. 이것은 낯선 동물을 보고 원주민에게 물었는데 역시 모르겠다고 한 말이 지금의 캥거루가 된 것과 같은 경우이다. 알고 보면 역사에는 이렇게 어이가 없는 경우가 우리 인생처럼 자주 발생한다.

어릴 때 ‘명화극장’과 같은 TV 프로에서 명화라고 자주 보여 주었던 영화가 미국의 서부 개척을 소재로 한 서부영화였다. 서부영화의 주인공은 그저 총잡이였지만 ‘정의의 사도’처럼 영웅으로 그려진 반면 원주민들인 인디언들은 사납고 무식하며 멍청해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사람들을 죽이거나 약탈하는 악인으로 묘사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미국의 기병대와 서부의 사나이가 나타나 수많은 인디언들을 무찔렀다. 역사의 진실은 서부의 사나이들로 일컫는 그들은 원주민의 땅에 허락 없이 들어와 땅을 빼앗고 원주민을 학살하였으며, 반면 원주민들에게는 순식간에 낯선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터전을 빼앗기고 가족을 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고 한다면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되는 지 깨닫게 된다.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과 함께 공존하는 가치를 배우는 것이 역사공부의 목적이다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사 주는 이유가 세계를 지배하고 지구를 파괴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세계와 지구를 한 눈에 보면서 사고의 확장이 가능해 진다. 세상이 본인의 생각만큼 좁지도 넓지도 않으며, 세상 속에 한 명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가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것이다. 관념과 틀을 깨고 사고를 유연하게 확장시키는 것, 역사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이며, 그래야 다름을 이해하고 그 다름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가치를 배우는 역사 공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 공부할 때, 특히 옛 역사를 공부할 때는 지도가 꼭 필요하며, 종과 횡으로 다 살펴봐야 역사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것이 살아있는 역사 공부이고, 그 속에서 살아있는 스피릿을 체험하게 된다. 콜럼버스를 통해 역사큐브로 들어가 보길 권한다. 역사큐브는 정육면체로서 겉과 속이 있기 때문에 모두 12 방면이 존재한다. 역사 속 한 인물이 있고, 한 사건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12 방면으로 살펴보면 역사를 입체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되고, 관련이 없어 보였던 콜럼버스와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사큐브를 통해 역사 공부의 참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역사는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한다.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를 창조하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변화해야 되는 것이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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