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들려주는 국학 이야기
가을이 들려주는 국학 이야기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0.11.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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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오늘따라 유난히 찬바람이 분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을의 끝자락을 지나 겨울이 고개를 내미는 순간이다. 깊어가는 가을의 한 정점에서 우리는 가을의 심상을 느끼곤 한다. 가을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가을이 주는 의미를 국학의 관점에서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한다.

가을의 정취는 ‘단풍’과 ‘낙엽으로부터 비롯되고 완성된다

가을하면 대표적인 키워드가 '단풍’과 ‘낙엽’이다. 주말마다 가을 산의 단풍맞이 등산객들이 절정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답답했던 일상에 벗어나고자 찾은 산행일 것이다. '단풍(丹楓)'은 늦가을 식물의 잎이 적색, 황색,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하고, '낙엽(落葉)'은 이미 떨어진 잎을 뜻하는 말이다. 사실은 ‘낙엽’은 생명의 조화로움에 있다. 겨울 내 나무의 부족한 수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낙엽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의 정취는 ‘단풍’으로 시작해서 ‘낙엽’으로 완성된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가을의 정겨움과 쓸쓸함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젊은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이나 자주 불렀던 노래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시절 그 추억에 젖어들게 한다.

"낙엽지던 그 숲 속에 파란 바닷가에 떨리는 손 잡아주던 너"

‘너’라는 옛 가요가 애잔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가을 손님이 왔긴 왔나 보다. 낙엽하면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더 있다. ‘부모’ 라는 옛 가요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뭉클하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님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부모’는 원래 소월의 시다. 소월은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한다고 알려진 시인이다. 그의 시는 ‘진달래꽃’ 이나 ‘산유화’처럼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와 운율을 따르고 있다.
‘부모’라는 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음에 나오는 싯구처럼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만 겨우 들리는 어느 겨울의 밤이슬과 함께 차디찬 바깥 공기가 으스스하게 느껴질 때 따스한 아랫목에서 어머님께서 들려주던 옛 이야기, 그 이야기는 분명 한 아이가 성장하는데 그 밑거름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이렇듯 가을의 정겨움과 쓸쓸함을 느끼고 자란 아이는 낭만적인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자구다복(自求多福),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단풍의 끝은 낙엽이다. 즉 단풍의 운명은 낙엽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풍을 보면서 낙엽을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낙엽을 보면서 단풍을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의 순환 속 한 단계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연속선상에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정보의 단절이고 시각의 왜곡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이러한 자연현상을 자연의 이치로, 하늘의 섭리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삶 속에서 발견하는 개천이고 광명이다. 자기 안의 하늘을 만나는 것은 자기 자신도 자연의 이치로, 또는 하늘의 섭리로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말이 있다. 많은 복은 하늘이 주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구해서 얻어지는 것, 바로 ‘자구다복’이라는 뜻이다.

단풍과 낙엽으로 변화하는 나무로부터 배운다

위태로이 매달려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마침내 떨어지고 마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이지만 더 큰 가치를 위하여 몸 색깔을 바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단풍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사라지는 단풍들의 짧고도 강렬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최고로 아름다울 때, 즉 절정의 순간에 추락하는 낙엽이 되고서야 깨닫게 된다. 가을은 풍성하고 튼실한 열매를 수확하는 기쁨, 온 천지를 물들이는 울긋불긋 찬란한 풍경들로 마음이 설레게 되지만 정작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은 풍요가 아닌 사라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숙연함이 다.

가장 건실하고 알찬 꿈을 만들어 주고 말없이 돌아가는 가을은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의 뒷모습 같아 애잔하다.

가을은 기쁨과 슬픔, 결실과 허무, 풍요 속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이율배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느끼는 모순처럼 아이러니한 계절인 가을은 삶의 깊은 철학을 함축하고 있다. 가을이 주는 선물인 낙엽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푸르게 피어날 미래의 나무를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고귀함 때문일 것이다. 알고 보면 모든 자연현상들이 홍익이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결코 가치가 없어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단풍과 낙엽을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된다.

생명의 영원함은 생명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명의 영원함을 의미한다. 생명의 영원함이란 단순히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지만 그 생명이 갖고 있는 본질은 영원하다. 우리의 몸은 육체, 에너지체, 정보체로 구분된다. 에너지체와 정보체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에너지와 정보는 한 사람의 의식을 결정한다. 그 의식은 사람됨의 지표가 된다. 인간이 가치로운 것은 의식의 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성장하게 되면 자연의 이치, 하늘의 섭리대로 조화로움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좋은 뇌가 갖는 특성이다. 반면 나쁜 뇌는 이치와 섭리에 따르지 않고 조화로움 보다는 분별하고 단절하고자 한다. 가을의 길목에서 따스한 아랫목이나 화롯가에서 들려주는 국학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유구함과 우리 문화의 찬란함을 알려 준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고독은 자기성찰로 이어지고,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번져간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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