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스피릿을 넘어 국학의 스피릿으로
개인의 스피릿을 넘어 국학의 스피릿으로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1.03.04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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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시련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겪는다고 한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도 시련을 겪었고 그 시련의 크기만큼 큰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던 고 정주영 회장의 20주기(3.21.)가 곧 다가 온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액션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경제가 도약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국가경제의 회복이 필요한 지금, 그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의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헤쳐 나가는 태도를 통해서 삶을 유연하게 또는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는 남다른 스피릿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스피릿은 알고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스피릿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가치를 알고 철저하게 실천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의 크기가 비범함을 뛰어 넘는 그의 스피릿을 국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스피릿의 근원은 이 땅의 자연이 길러낸 하늘마음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태어난 정주영, 그의 호가 아산이라는 점에서 고향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가 있다. 어쩌면 정주영 스피릿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정신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이 땅의 자연에서 나고 자연이 길러 주었으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그의 삶을 통해 하늘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늘마음은 때로는 홍익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광명이라는 이름으로 발현되었으며, 국가경제를 주도하고 국민경제를 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가 갖고 있었던 스피릿의 근원은 이 땅의 자연이 길러낸 하늘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공하려면 인간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신뢰가 있어야 된다

우선 인간 정주영은 부모, 형제, 자식 등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고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도 컸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도 컸다. 그것이 오늘날 현대라는 거대한 경제공동체를 만들었고, 대한민국의 경제와 산업을 이끌었다. 어려웠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과제였다. 그는 사람에 대한 배려나 자상함, 그리고 인간존중의 정신을 일깨워 준 인물이었다. 몸에 밴 근검절약, 무엇보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과 소박함 그리고 유머를 좋아 했으며 시문학을 즐기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인문학의 토대 위에 정립되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좌우명에서 알 수 있듯이 궁핍과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사람과 신용을 중시했으며, 성실과 책임을 다하여 모든 일에 임했다. 또한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대기업의 회장이었지만 자기 자신을 기꺼이 부유한 노동자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가 조선소 건설 중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일이 있었다. 1973년도 11월 어느 날, 그가 혼자 지프를 몰아 현장을 시찰하다가 바다에 빠진 적이 있었다. 어렵게 차문을 열고 헤엄쳐 나왔지만 비바람과 거센 파도 때문에 힘들었던 상황에서 멀리보이는 초소를 향해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를 듣고 경비원이 초소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철근 하나 붙잡고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는 그에게 “나가 누구요?” 라고 해서 울화를 치밀게 했던 경비를 나중에 불러 경비회사를 차리게 해서 회사의 경비 용역을 맡겼다고 한다. 비록 아둔해서 그로 하여금 고함을 지르게 하였지만 그 경비원이 아니었다면 그 이후에 했던 많은 일이 아예 있지도 않았던 일이 될 수도 있었음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처럼 죽을 고비를 넘기고 대통령과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부정적인 가운데 출발했던 조선소는 세계 제1위의 조선소가 되었고, 이러한 성공이 우리나라 중공업 발전을 이끌게 되었다. 제3자가 볼 때는 웃기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절박하고도 답답했던 상황이었다. 다른 회장이었다면 당장 그 경비를 해고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주영은 인간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신뢰가 있었다.

공생의 길 vs. 공멸의 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 블루 등으로 불리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다. 정주영 그는 우리 민족이 위기에 강하다고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요즈음처럼 어려웠던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에 대창궐의 의미인 ‘팬데믹’을 선언했다. 어쩌면 ‘팬데믹’ 상황이 역설적으로는 지구촌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시사한다. 한 지역만 봉쇄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러한 위기적 상황에서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고, 또 다른 부류는 큰 의식을 갖고 공생이 아니면 공멸이라는 인식하에 광명의식으로 더불어 살기 위한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는 나라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도 결코 일본에게 지지 않으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유년시절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가치를 알았고 한국인으로서 자긍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의식이 분명했고, 우리 민족처럼 우수한 민족은 없다고 하였다. 역사학은 미래학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오늘을 진단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희망찬 미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리더의 자질 중 가장 큰 덕목이 역사의식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주영의 역사의식은 분명하였고 명쾌하였다. 위기 때마다 회자되는 홍익정신, 이것은 한국인들의 뿌리 정신이 되어 주었고 공멸이 아니라 공생을 선택할 수 있는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현대’의 저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흔히들 정주영이 창업한 기업 ‘현대’는 누구도 못 말리는 저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현대건설’이 해외시장을 개척할 때, 그 나라의 기후도 풍속도 세제도 법률도 모르는 채 무작정 덤벼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더위와 알래스카의 추위도 모르는 채 덤벼들었고, 인도양의 파도와 태풍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는 채 석유개발에 덤벼들었다.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그 무모함이 부른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극복했을 때 우리는 살아있는 공부를 해가며 더 강인해진다.

세계 조선사에 기록을 남기면서 그렇게 빠른 기간 안에 조선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반만 년 문화민족인 우리의 잠재력과 저력의 총화가 만든 결과이고, 또 우리 한국인은 작심만 하면 뛰어난 정신력으로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이며, 무슨 일이라도 훌륭하게 성공시킬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과 저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국 그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의 정신력에 좌우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참노동의 가치와 살아있는 스피릿

그가 서울에서 울산으로 갈 때는 항상 새벽 4시에 출발하였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남대문 근처를 지날 때면 어느 부부가 그날 팔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남편이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며 열심히, 진지한 표정으로 길을 건너거나 지나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신도 모르게 내부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왔다. 얼마 안 되는 하루벌이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계를 꾸려 갈 수가 있었고, 자식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엄숙한 현실이고 삶이었다. 그들에 대한 유대감과 존경심을 갖고 있었던 정주영은 다 같이 노력해서 하루 빨리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것이 바로 참노동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정주영의 살아있는 스피릿이었다. 현대인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현대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단순히 이익창출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국가경제를 주도하고 국민기업으로 인식하고 그 책임과 역할을 다 하려고 했다.

빈대와 사람의 머리싸움

그리고 정주영 회장은 뇌를 잘 쓴 인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빈대와 사람들이 머리싸움을 한 이야기다. 정주영 회장이 인천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던 어린 시절, 노동자 합숙소는 빈대가 너무 많아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빈대를 피하기 위하여 밥상 위로 올라가 잠을 잤는데, 빈대는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사람들을 물었다. 사람들은 머리를 써서 밥상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 고여 놓고 잤다. 그런데 편안한 잠은 이틀이 지나기 전에 다시 빈대들이 물어뜯는 통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상다리를 타고 오르다가 몽땅 양재기 물에 빠져서 죽었어야 했을 빈대들이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사람들을 물어뜯나 싶어 불을 켜고 살펴보다 모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로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게 불가능해진 빈대들이 벽을 타고 까맣게 천장으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천장에서 사람 몸을 향해 툭 툭 떨어져 내려와 물어뜯은 것이다.

정주영 회장은 이때 본 소름 끼치던 놀라움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물며 빈대도 목적을 위해서는 저토록 머리를 쓰고 저토록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서 성공하는데, 인간도 무슨 일이든 절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한 노력만 쏟아 붓는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라는 것을 크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이 빈대만도 못한 놈”이란 호통을 많이 쳤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이때 빈대들이 가르쳐 준 교훈을 늘 가슴에 지니고 다녔다. 빈대에게서 배운 끈기와 집념으로 마침내 세계적인 기업인이 되었다.

현대그룹을 경영하면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빈대정신을 생각했고, 빈대들도 저렇게 살기 위해서 저토록 노력하는데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면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불가능한 꿈을 가능한 꿈으로

서해 간척지 사업에서 마지막 물길을 잡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은 폐 유조선으로 물길을 막고 바다를 메꿀 수 있었다. 일명 정주영 공법이라고도 하고 유조선 공법이라고도 한다. 그가 전문지식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면 결코 생각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관념이나 틀 속에서 찾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하고 결국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안 된다는 주변의 염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보았느냐고 반문하며 결국 이루어 내었다. 해 보기도 전에 먼저 걱정하고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다. 뇌는 우리가 믿는 대로 실현한다. 이것이 바로 뇌의 원리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기 뇌를 믿고 의지 100%로 결국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을 이루어 낸 것이다.

남다른 정주영의 스피릿은 알고 보면 남다른 것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한국인의 스피릿이다. 다른 점은 그 스피릿을 말로 그친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했다는 점이다. 정주영의 스피릿이자 현대 일가의 스피릿이 되어 버린 기업을 넘어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공동체적 마인드는 국조 단군의 스피릿과 맞닿아 있고 오늘의 한국인들이 잊지 말아야 될 정신이다. 이것이 바로 정주영을 비롯한 현대 일가가 성공한 힘의 원천이었다. 기업인으로서 정주영은 뇌를 잘 쓴 인물이다. 그는 기업경영을 할 때 지식으로 하지 않았다. 즉 지식경영이 아니고 뇌 경영이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이루어낸 결과이다. 뇌를 잘 쓰고 잘 활용하였던 인물이었고, 이것은 모두 인간이 빈대보다 못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비롯되었다. 뇌를 어떻게 쓰는 것이 잘 쓰는 것인지를 그의 삶을 통해서 보여 주었다. 이제 개인의 스피릿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집단지성의 힘, 바로 국학의 스피릿으로 모든 시련과 역경을 극복해 나가야 될 때이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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