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넘어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넘어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1.01.06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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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2021 새해 첫 날에 꿈을 꾸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으로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어디서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은 모르겠지만 역사 강의를 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만큼 무서운 말도 없습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역사에서는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가? 부모 된 자의 도리, 선배 된 자의 도리, 앞서 산 자의 도리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역사함이고, 역사함은 존재함이며, 존재함은 다시 역사함입니다. 항상 그래왔듯이 그냥은 역사하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역사는 존재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현재까지 이어 왔고 그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역사 속에서 배우고 역사 속에서 존재합니다. 우리는 역사에게 묻습니다. 역사는 발전하고 있느냐고, 역사는 답합니다. 그렇다고 말입니다. 이젠 역사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역사는 어떠하냐고. 우리는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기억이 났다. 꿈을 통해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어떻게 넘어야 될지 생각해 보았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 누군가는 그 파고를 넘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그 파고를 넘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선택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명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역사 속 인물들이 그리하였듯이 간절한 마음과 죽을 각오로 임하여야 된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넘으려면 심신의 감각을 살려야 된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작은 변화도 감지할 수 없고,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하려면 심신의 감각을 살려야 된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어느 바닷가 해변에 펠리칸이 수백 마리나 떼를 지어 살고 있었다. 이 새들은 관광객이 던져 주는 먹이만을 먹으며 편안히 살아갔으나 시 당국에서는 이 먹이로 인해 바닷물이 오염되기 때문에 펠리칸에게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날마다 던져 주는 먹이만을 먹고 편안하게 살아가던 펠리칸은 점차 굶어죽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바다로 점프해 돌진하면서 고기를 잡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고기를 잡아먹지 못하고 굶어죽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던 시 당국에서는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야생의 펠리칸을 잡아다가 그들과 함께 섞어 놓자는 것이었다. 그 후로부터 던져주는 먹이만을 받아먹던 펠리칸은 야생의 펠리칸과 같이 스스로 물속의 고기를 잡아먹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알 수 있는 점은 한번 길들여지면 심신의 감각이 퇴화되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파고를 넘는 자는 역사의 파고도 넘는다.”

코로나는 인생의 파고이고 역사의 파고이다. 역사는 2021년을 기록할 것이다. 인류가 어떻게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 우린 오늘도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면서 또 그렇게 산다. 그 말 자체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말인지 모르는 채 말이다.

“2021년은 우리 역사를 되찾는 원년이다.”

2021년은 우리 역사를 되찾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역사를 되찾고자 하는 노력들은 그 동안에도 있었고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다시 원년이라고 한 것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우리 역사의 현주소를 의미한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서울 시내에는 관광명소가 된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도 알려져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 있다. 예전에 덕수궁 돌담길을 혼자 거닐면서 역사의 광복을 간절히 염원한 적이 있었다.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덕수는 일제가 고종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면서 궁호로 부여한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2011년 4월 한 시민에 의해 "덕수궁의 본래 이름인 경운궁 명칭을 회복해야 한다."라는 민원이 제기된 바 있었고, 학계 일부에서도 덕수궁이 일제 침략의 잔재이므로 경운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주최한 공청회 등에서 "일제 잔재라는 근거가 없다."라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하여 그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인화문(仁化門)은 본래 덕수궁의 정문이었는데 덕수궁 궁역이 남쪽으로 확장되고 중화전과 중화문을 건립하는 자리에 인화문이 자리하고 있어 1902년경 철거되었다. 인화문의 자리 근처에는 현재 중화문이 자리하고 있다. 인화문의 현판은 이왕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11년 12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회의에서 덕수궁 명칭 변경 문제를 심의한 결과 경운궁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은 만큼 명칭 변경 안건 심의 자체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대신에 문화재위원회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덕수궁에 대한 광범위한 학술 연구 등을 거쳐 추후에 명칭 변경 재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역사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뿌리의식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고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민족이나 나라의 구성원이 하나가 되고자 할 때 역사의식이 큰 몫을 한다. 따라서 궁호도 경운궁으로 되찾고 정문도 지금의 대한문이 아니라 인화문으로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경운궁(덕수궁)의 정문을 인화문으로 되찾아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조선의 궁궐에는 정문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화(化)가 들어가 있다.

“ 궁궐 정문의 이름에는 조선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경복궁은 광화문(光化門), 창덕궁은 돈화문(敦化門), 창경궁은 홍화문(弘化門), 경희궁은 흥화문(興化門), 덕수궁(경운궁)은 대한문(大漢門)이 아니라 인화문(仁化門)이 되어야 그 체계가 맞아 떨어진다. 궁궐 정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화(化)자는 조선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화(化)는 첫 번째 뜻으로는 “된다”, “변화한다”, 즉 “그렇게 만들거나 됨”이라는 뜻을 가진 접미사이고, 두 번째 뜻으로는 “가르치다”, 즉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교화는 가르치고 이끌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궁궐 정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주로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궁궐 정문의 문턱을 넘나드는 자들은 왕과 대신들을 비롯한 백성을 교화할 수 있는 사회지도 계층이었다. 그런가 하면 백성을 교화하려면 스스로 교화해야 된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었다. 즉 유교이념이 통치이념이었던 조선은 궁궐의 정문 이름마저도 그 이념이 녹아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회지도 계층에게 높은 도덕관념을 요구하는 것도 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교가 구시대 산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

“국학정신에서 비롯된 도전과 창조정신으로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넘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외래종교, 외래사상 및 문화가 들어오면 기존의 고유한 사유체계를 통해 흡수해서 우리 것으로 만든다. 그것이 중국에서 비롯되었지만 한국의 유학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며 이것은 고유한 사유체계에서 비롯된 국학과 구분해서 한국학이라고 한다. 고유한 사유체계라고 하는 것은 하늘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늘은 두루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밝고 환하여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 그것은 이치이며 섭리이다. 단군의 ‘홍익정신’, 고구려의 ‘다물’, 동학의 ‘인내천’, 현대의 ‘국학’으로 이어져 왔다. 국학에서는 누구나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과 같이 고귀하고 완전한 존재로 인식한다. 이것은 ‘신인합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천지인’이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두고 “한 얼 속에 한 울 안에 한 알이다.”라고 표현하였다.

한민족은 혈통주의를 뛰어넘는 보편철학을 갖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반할 수 있었으며, 누구나 반이 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하늘과 같이, 신과 같이 고귀하고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Love myself’ 가 가능하다.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고 살리는 것, 그것에서부터 우리 국학은 출발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정한 도전과 창조정신이 발현될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5개의 키워드는 광명, 인본, 홍익, 신명, 박애이다.”

앞서 살펴보았던 조선 궁궐 정문 이름에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5개의 키워드가 다 들어 있다. 광화문은 광명이고, 돈화문은 인본이며, 홍화문은 홍익이고, 흥화문은 신명이며, 인화문은 박애이다.

2021년 새로운 10년의 시작, 2030년을 향한 첫 출발선에서 조선 5대 궁궐의 정문이 갖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를 교화의 대상으로 삼고, 광명, 인본, 홍익, 신명, 박애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코로나라는 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한 인류의 역사가 창조될 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넘는 새로운 10년의 역사를 기대해 본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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