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11일.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미국의 반격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때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역사 속 ‘神風(가미가제)’이었다.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의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시 태풍이 불어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을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고 하여 일본인은 ‘신풍(神風)’이라고 부른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500㎏ 정도의 탄약을 실은 전투기에 몸을 싣고 그대로 출격, 주어진 연료는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까지, 즉 돌아오기 위한 연료는 없었다. 神風(가미가제)은 자살특공대를 말한다. 일본 왕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했던 그들.

그런데 출격자 중에는 조선청년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조국은 광복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탁경현(일본 이름 미스야마 후미히로), 그의 영혼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일본의 군신이 되어 있다. 탁경현 외에도 여기에 투입된 조선청년은 많았다.

우리는 원치도 않은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하여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야스쿠니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그들을 기억하고 광복시켜야 한다.

광복의 기쁨과 주인의식의 회복

매년 8월이 되면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생각한다. 그런데 진정한 광복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피해의식에 갇혀 있음을 깨닫고 주인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의식은 주인으로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다. 책임 관리는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되며 그 사랑은 관심과 정성이 수반된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갖고 관심과 정성으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것이다.

대일항쟁기,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다른 나라 사람이 좌지우지하였다. 우리 선조들의 생사여탈권이 일본인들에게 있었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고 많은 조선인은 일본인처럼 살았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한다는 것은 당시에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보루였던 문학가나 예술가도 저항하다 지쳐 친일로 돌아선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저항하면서 숙명과도 같았던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는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의 지배를 받은 기간이 한 세대 정도되는 35년이 아니라 두 세대 또는 100년이 넘게 갔으면 그 폐해는 엄청났을 것이고 지금도 일본인처럼 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과 일본인들이 탐탁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과거를 뉘우치지도 않고 반성하지도 않은 그들의 행태를 보면 분노마저 일어난다. 하지만 일본인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또 그렇게 매도해서도 안 될 것이고 그런다고 해서 우리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반일 프레임 극복과 홍익가치의 실현

1910년, 1945년, 그리고 2020년.
경술국치 이후 110년, 광복 이후 7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일제에 지배를 받았던 기간보다 두 배가 넘는 기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일 프레임에 갇혀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얼마 전 모 TV 예능프로그램에서 그 배경이 되었던 촬영 공간이 왜색풍의 집이라는 문제 제기에 제작진은 사과를 하고 촬영 공간을 고쳐 다시 촬영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봐야 된다. 무조건 일본문화는 안 된다는 식보다는 그것이 시청자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된다.

분명 오류가 있는 것은 고쳐야 되고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잘못된 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과감하게 없애야 된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글로벌 시대, 지구라는 하나의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시각으로 반일을 극복하고 극일로, 나아가 협일로 그들과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상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던 홍익의 가치일 것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계속 반대만 한다면 그들도 우리를 반대만 하려고 덤벼들 것이다. 그러면 서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 식물에 드리워진 슬픈 역사를 극복하는 것도 광복이다

독도에 사는 꽃 이름에 '다케시마'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우리 꽃 이름에 남은 일제 침략의 흔적이다. 우리나라 울릉도와 독도에만 분포하는 섬초롱꽃의 학명에는 일본이 독도를 부를 때 사용하는 '다케시마'가 들어가 있다.

하나의 식물은 3개의 이름을 가지는데, 학명, 영명, 국명이 그것이다. 학명은 국제적 약속에 따라 붙여진 세계 공통의 명칭이고, 영명은 학계 등에서 가장 많이 부르는 영어 이름이며, 국명은 해당 국가에서 부르는 이름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식물 분류체계는 일본인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이 최초로 마련했고 식물 이름 상당수가 대일항쟁기에 붙여졌다. 그렇다보니 식물 이름에 일본식 표현이 많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벚나무의 학명이 'Prunus takesimensis Nakai'인 것도 이런 이유이다.식물 학명에는 발견자 이름이 들어가기 때문에 각종 식물의 이름 끝에 '나카이'가 들어갔던 것이다.

학명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고친 영명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한국의 꽃을 바로 알리는 영문 엽서를 제작, 배포하고, 국립수목원도 영명을 보완한 목록을 각국 주재 대사관과 외국 식물원 등에 보내고 있다. 우리 식물의 이름에 남은 슬픈 역사를 기억하고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주려고 하는 것 또한 광복을 위한 노력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식물 이름조차 창씨 개명한 것에 대해 분노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식물에 대한 조사까지도 일본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식물에 대한 발전된 인식, 우리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스스로에게 드리워진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 아닐까.
 

같은 뜻이지만 서로 다르게 적용한 ‘神風’과 ‘신바람’

일본은 그들을 구해준 태풍을 신이 일으킨 바람, 즉 神風 이라고 하여 ‘신의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침략전쟁을 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여기고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인류역사에서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는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류에게 되돌아갔다. 우리에게는 신바람 문화가 있다. 신바람은 신이 나서 어깨가 우쭐거릴 정도의 즐거운 기분을 말한다.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쁘고 신이 난다고 한다. 이렇게 기뻐서 어깨가 으쓱해지며 신이 나는 기운을 '신바람'이라 하고 '신바람 나다'라고 표현한다. 우리 역사는 홍익의 기쁨에서 비롯되는 신바람의 역사였다.

한민족의 고유한 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에는 ‘강재이뇌(降在爾腦)’라는 말이 있다. 우리 선조는 모두의 뇌에 내려와 있는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이다. 모든 인류가 내 안에 하늘이 내려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전쟁, 기아, 환경파괴와 같은 인류가 직면한 많은 문제는 해결될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광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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