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다 – 이토록 감각적인 블랙>은 2021년 블루메미술관(경기 파주 헤이리)의 포스트 팬데믹(post-pandemic) 시리즈 중 첫 전시이다. 이 전시는 코로나19로 작동하지 못하는 감각 대신 새롭게 빛을 발하는 감각으로 느끼는 새로운 것에 주목한다.

강은혜, 공간의 형태 No.3, 2021, 면사, 가변크기 .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강은혜, 공간의 형태 No.3, 2021, 면사, 가변크기 .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독립기획자 이상윤이 기획한 첫 전시 《검다》는 코로나19에 의한 팬데믹 상황을 암전(blackout)과 암순응 (dark adaptaion)에 비유한다. 기획자의 상상 속 경험을 7명의 작가- 강은혜, 강현선, 김범중, 김윤하, 김진휘, 안경수, 허산-의 작품으로 풀어냈다. 갑작스러운 정전, 암전처럼 코로나19의 확산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마비시킨 듯 보이지만, 이것이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단지 블랙 속에서 무뎌지는 감각과 극도로 예민해지는 감각을 보여줌으로써, 나와 그 무엇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 또는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제안한다.

강현선, 마지막 아파트, 2017, Single Channel Video, 4’24”.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강현선, 마지막 아파트, 2017, Single Channel Video, 4’24”.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인간의 감각으로 보자면 시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불시에 어둠 속으로 들어가나 정전 상황 속에 놓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익숙한 시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이 작동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느낌을 얻는데,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우리는 팬데믹 이전에 자주 느끼지 못했던 낯섦, 신비, 경이, 거슬림, 리듬, 긴장, 강박 등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어둠은 검은 대상들을 달리 감각할 수 있도록 매료시킨다. 마치 ‘암순응’과도 같다.

김범중, Quad 외, 2020, 장지에 흑연, 각 20x100cm .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김범중, Quad 외, 2020, 장지에 흑연, 각 20x100cm .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암순응 이후의 펼쳐진 세계는 암전 이전과 전혀 다르게 감각된다. 암흑 속에서 우리는 비록 색을 구별할 수는 없지만, 희미한 윤곽을 지각할 수 있다. 또 미세한 소리가 들리고, 옅은 냄새도 맡을 수 있다. 빈 공간에서 긴장을 느낄 만큼 무뎌진 촉각이 초감각화(hyper-sense) 되고, 나를 응시하는 사물들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감각하는 ‘나’를 감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실제로 팬데믹은 격리, 비대면, 거리 두기 등과 같은 낯선 단어를 제안하며 익숙한 존재 방식과의 단절을 강조했지만, 이로 인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나를 지각하게 된다. 그래서 팬데믹의 블랙 속에서 궁극적으로 감각되는 것은 새로운 존재하기(being), 새로운 관계하기라고 할 수 있다.

<검다 – 이토록 감각적인 블랙>은 새로운 존재하기, 새로운 관계하기로 이끈다.

김윤하, 변이된 시 등, 2021, 사운드(1트랙, 모노), 실시간 오디오 반응 프로젝션, 싱글채널비디오,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김윤하, 변이된 시 등, 2021, 사운드(1트랙, 모노), 실시간 오디오 반응 프로젝션, 싱글채널비디오,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7명의 참여작가 강은혜, 강현선, 김범중, 김윤하, 김진휘, 안경수, 허산의 작품에서는 초감각적인 블랙을 찾을 수 있다.

작가 강은혜의 선 설치는 인간이 지각하는 공간 표현보다 마치 공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대변하는 편에 가깝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들을 통해 비로소 관람자는 시각적으로 감각하지 못했지만, 엄연히 고요한 빈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무엇을 감각하게 된다. 그것은 공간의 구조와 비움, 에너지, 운동성과 같은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관계, 기억, 흔적과 같은 메타 요소를 아우르고 있다.

김진휘, Beyond Black, 2021, 시트지, 물, 유리병, 파스타면, 바둑돌, PVC테이프, 블럭, 플로럴폼, 비닐봉지, 리본, 못, 플라스틱컵, õ, 스펀지, 먹물, 가변크기.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김진휘, Beyond Black, 2021, 시트지, 물, 유리병, 파스타면, 바둑돌, PVC테이프, 블럭, 플로럴폼, 비닐봉지, 리본, 못, 플라스틱컵, õ, 스펀지, 먹물, 가변크기.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작가 강현선은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비슷비슷해 보이는 주거 공간을 3D CG로 재현한다. 카메라 움직임은 계속해서 공간의 안과 밖으로 순환하는데, 궁극적으로 이 공간을 맴도는 궤적을 그릴 뿐 최종적 방향은 상실되었다. 한정적인 목적에서 바라본 주거 공간을 새로이 감각하는 시도이다.

작가 김범중의 작품은 소리 감각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가로로 긴 형태의 ‘Oscillo’ 연작은 인체의 스케일이 적용 된 것으로 첼로, 어쿠어스틱 기타, 가야금, 거문고 등의 사 이즈와 유사하다. 각 악기의 음색은 겹겹이 쌓인 흑연으로 재탄생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리는 작가의 의식 속에 반복 재생되며, 힘의 강약과 선의 길이와 굵기 등을 악기 삼아 작품에서 다시 연주된다.

안경수, Hall, 2020, acrylic on canvas, 260x200cm.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안경수, Hall, 2020, acrylic on canvas, 260x200cm.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작가 김윤하는 감각을 수집하는 작품을 지속하면서, 소리에 대한 반응체계를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다룬 ‘masking effect’는 듣고자 하는 소리보다 낮은 주파수의 새로운 소리가 입혀지면 먼저 있던 소리를 감각할 수 없게 되는 음향학의 효과에 대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감각 대상에 대한 인간의 욕 망과 이에 대한 좌절, 또는 무감각했던 대상의 인식 등을 이야기한다.

작가 김진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들을 사용해 상반된 특성 양쪽 모두를 제시한다. 운동과 정지, 정형과 무정형, 충동과 억제를 한 자리에 진행형으로 펼쳐 놓는다. 이로써 그의 일상적 물건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양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감각된다. 작품에서 작가는 권력적 주체가 아닌 수집가, 매개자, 관찰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작가 안경수는 실재하지만 지각하지 못한 대상이 있는 밤 풍경화를 통해, 시각적 확신을 의문시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의 역할은 다만 어둠에 잠겨 있는 점과 선, 희미한 빛과 검은 윤곽을 “최선을 다해 인지”할 뿐이다. 이러한 감각적 태도는 작가의 역할을 최소화하며 감각체로서의 나, 반사체로서 창문, 피사체로서 풍경이 모두 하나로 중첩된 초현실적인 풍경을 생성한다.

허산, 검은 물티슈, 2021, 브론즈에 채색, 18×7x9cm.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허산, 검은 물티슈, 2021, 브론즈에 채색, 18×7x9cm. [사진제공=블루메미술관]

 

작가 허산의 작품은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조각 사이, 연출장면과 현존 사이, 대상과 주체 사이를 점유하는 혼종적 대상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히 의인화된 사물이 아닌, 객체이자 주체인 사물에 초점이 있다. 정어리 통조림의 응시를 통해, 응시당하는 객체로 전락한 ‘나’를 경험하였던 라깡처럼, 허산의 사물들 앞에서 우리는 그 낯선 존재들의 응시를 경험할 수 있다.

블루메미술관 2021 첫 전시 ‘검다-이토록 감각적인 블랙’은 3월 20일부터 4월 18일까지 열린다.

'검다-이토록 감각적인 블랙' 포스터. [포스터제공=블루메미술관]
'검다-이토록 감각적인 블랙' 포스터. [포스터제공=블루메미술관]

 

■전시개요

전시일정 : 2021.3.20 (토) – 4.18 (일)

전시장소 : 블루메미술관 전시장 전관

전시기획 : 이상윤

참여작가 : 강은혜, 강현선, 김범중, 김윤하, 김진휘, 안경수, 허산

전시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