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봄, 선을 넘은 역사
역사의 봄, 선을 넘은 역사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0.04.06 17: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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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어릴 적 땅따먹기 놀이를 한 기억이 많다. 땅따먹기는 요즈음은 잊혀져가는 전통 놀이 중 하나다. 전통 놀이에는 그 시대의 정서와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이 요구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땅과 친숙했던 놀이가 많았던 것은 농경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땅을 딛고 살고 있는 지금도 매한가지이다. 점점 땅과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요즈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땅따먹기 놀이를 보면 땅에 큰 원 또는 사각형을 그려놓고 각자 자기 손 한 뼘을 이용하여 귀퉁이에 반원을 그려 자기 영역을 표시한다. 그런 후 차례를 정하고 말을 손끝으로 튕겨 세 번 만에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된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는 것은 금물이다. 차츰 자기 땅을 넓혀 갈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고 손끝의 감각이 살아 있어야 된다. 땅따먹기 놀이 하나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이동수단이 말이었기 때문에 돌멩이를 말에 비유하였다. 세 번을 튕겨야 되는 것은 우리의 전통 사상과 철학이 맞닿아 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세상을 하나로 인식하는 천지인 사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천지인 사상에서 모든 만물이 하나에서 비롯되었고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는 위대한 철학이 나왔고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 정신의 출발이었다.

과거에도 선 긋기를 좋아했지만 지금도 그 형태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선 긋기를 좋아한다. 다만 마음의 선 긋기만은 아니길 바란다.

우리 민족이 하늘을 숭배했던 것은 하늘에는 선 긋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경계가 없는 하늘, 누구에게나 동일한 하늘, 그 하늘빛조차 제한이 없었다. 하늘 앞에서는 누구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19감염증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때, 다들 답답해하고 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오랜 기간 철저하게 고립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 그런지 다들 바이러스 감염보다 더 무서운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오랜 만에 집 근처 산에 올랐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산을 오르기란 그리 쉽지는 않았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 와중에도 봄의 경치는 지나칠 수 없었다. 김소월 님의 ‘산유화’가 생각났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정말 산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다.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복사꽃 등 화려한 봄꽃의 향연이 한창이었다.

그 동안 분명 봄이 왔는데 그 봄을 느낄 수 없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뒤늦은 봄과의 만남이었다. 어느 덧 귓가에서는 박인희 님의 ‘봄이 오는 길’이 들리는 것 같았다.

“♬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

산에 오르는 길에 누군가 써 놓은 글을 읽는다. “산에 올라가면 힘이 든다. 하지만 내려가면 삶이 더 힘 든다.” 분명 산에 오르는 자들을 위한 격려의 글일 것이다. 힘은 역설적이지만 힘을 쓸 때 힘이 더 생긴다고 한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기 마련이다. ‘연분홍 치마’는 무궁화를 표현한 것이고 한민족을 상징한다. ‘봄바람’은 외세, 즉 일제를 의미한다. 매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었던 대일항쟁 시대를 꽃이 피거나 지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같이 울고 웃던 우리네 삶의 봄날은 지금도 가고 있다. 매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오랜 기간 봄을 느낄 수 없었던 암울한 시대도 있었고, 스스로 봄을 느끼는 것을 자제하는 시기도 있다.

봄은 어김없이 왔지만 그 봄을 느낄 수 없다면 스스로 봄이 되면 어떨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봄을 선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봄이 아닐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는 계절별로 그 어원이 따로 있다.

봄은 ‘보리알이 여물 때’, 여름은 ‘엿가락이 녹을 만큼 더울 때’, 가을은 ‘가랑잎이 떨어져 흩날릴 때’, 겨울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울 때’ 이다.

과거에 봄은 고달팠다. 보릿고개라고 해서 보리알이 여물 때까지는 곡식이 부족하여 굶는 것이 다반사였다. 여기서 보릿고개란 묵은 곡식이 떨어지고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아 농가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음력 4~5월경을 이르던 말이었다. 인류 역사상 하루 세 끼를 먹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 역사를 보면 왕과 일부 귀족을 제외하고 많은 백성은 하루 두 끼를 겨우 먹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조석’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대일항쟁기, 수탈의 시대에는 매년 연례행사처럼 보릿고개가 찾아 왔고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배고픔으로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걸식이나 빚으로 연명하였다. 정말 가혹했던 그 시기에 맞이했던 봄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역사에서 언제부터 농경을 위해 정착생활을 해 왔고 지금과 같은 식생활을 유지하게 되었을까. 역사 기록으로 보면 고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대의 법률이라고 일컫는 ‘팔조법금’ 또는 ‘범금팔조’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8개 조항 중 3개 조항만 전해져 오고 있다. 역사교과서는 위의 ‘범금팔조’ 내용을 토대로 고조선 사회의 모습을 생명 존중 혹은 노동력을 중시하는 농경사회였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였으며,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구분되는 계급사회였고, 화폐경제가 존재하는 사회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조선의 공간적 배경으로는 대표적인 지표 유물로 알려진 비파형동검, 미송리식 토기, 고인돌의 분포 지역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 지역은 중국 민족의 것과는 전혀 다른 유물ㆍ유적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지금으로 보면 만주와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이렇듯 만주지역에서 출발한 고조선은 시대별, 나라별로 이름을 달리 하면서 세력의 변화에 따라 민족의 강역은 달랐다. 그리고 한민족의 정체성이 불완전하지만 삼국을 통일한 신라, 민족의 재통일을 이룩한 고려로 이어지면서 확립되지만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지는 만주지역의 상당부분을 상실한 채 조선으로 이어졌고, 국권을 상실하면서 한반도 내로 갇혀지게 되는데, 그 마저도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역사의 선, 즉 국경선은 여전히 정리되어 있지 않다. 간도 문제도 그렇고, 교과서에 수록된 근거 없는 국경선들, 통일신라의 북쪽 경계와 고려의 서쪽 경계 등 현실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으로는 정립해야 되지 않을까. 근거도 없이 다른 나라에서 그어 놓은 선에 국한되어 우리 역사를 한정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타인에 의해 그어진 선에서 우리가 자유로워 질 때 우리는 진정한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국경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정립할 때 우리 역사의 진정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실마리가 말갈이다. 필자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말갈을 연구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말갈의 위상과 친연성 그리고 한민족의 민족 구성과 관련 있는 여러 종족과 말갈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그런가 하면 중국 동북공정 논리에 맞서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지키고 온전하게 우리 역사로 편입하려면 말갈을 먼저 해결해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고구려 이전에 만주에 정착하고 있었던 말갈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을 넘나들면서 고구려와 발해를 구성하는 주요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달리해 가면서 아직도 만주에 존재하고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고구려 및 발해를 지나 일부는 여진족의 금나라, 만주족의 청나라 등 대제국을 이루었다가 지금은 쇠퇴하여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일부는 통일신라와 고려에 흡수 및 동화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만 보더라고 거의 천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고구려, 백제, 신라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하는 유일한 종족이 말갈이며,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신문왕 때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다른 나라의 유민들을 수용 및 융화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중앙군사조직인 ‘구서당’을 신라계 3개 서당, 고구려계 3개 서당, 백제계 2개 서당, 말갈계 1개 서당으로 조직한다. 이것은 7세기 신라인들의 세계관을 보여 주는 것으로 당시에는 말갈이 상당히 중요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을 넘은 녀석들’은 모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주제로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글로벌 핫 이슈까지 가감 없이 탈탈 털어보고, 말과 발이 앞서는 겁 없는 녀석들과 함께 국경을 인접하고 있는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나라들을 알아보는 탐사 예능 프로그램이다.

유목민으로 구성된 말갈은 만주 및 한반도 북부지역을 넘나들면서 존재감을 보여 주었으며, 고대 역사에 존재했던 ‘선을 넘은 녀석들’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선을 넘나들었던 말갈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그들의 존재가 제대로 인식될 때 우리 역사의 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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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유승 2020-04-07 17:39:16
지구촌 시대에 점점 중국의 영향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이번 코비드19 사태로 그 영향은 더욱더 커질 것 같은데요......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도 잘 대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일 2020-04-06 23:44:57
좋은 내용이네요.....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나름 구독자네요.....오원춘 사건 이후 조선족 하면 부정적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족이 고조선의 후예를 뜻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