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역사의 변화
전염병과 역사의 변화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0.03.04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민성욱 박사

퇴근길 전철 칸에서 누군가 재채기를 연거푸 했다. 처음 한 번 재채기를 하니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재채기를 하는 쪽을 바라보며 못마땅한 듯 인상을 썼다. 신경은 쓰였지만 어쩌다 재채기 했겠지 하며 애써 무심한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두 번 재채기를 하니까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이 재채기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세 번 재채기에는 맞은편에 앉았던 모든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재채기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군중심리 탓인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인지 나도 쳐다보았으나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재채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때부터 조용하던 전철 안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다음 역까지가 엄청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다음 역에 도착해서 전철 문이 열리고 환기가 되자 다들 안심하는 듯 했고 옆자리에 곱게 앉아있던 학생 한 명이 도망가듯 내렸다. 그 뒤로는 재채기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다음 역에서 내렸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빚어지는 일종의 사회현상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전염병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역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오랜 역사를 통한 축적된 경험이 현재 우리가 느끼는 전염병에 관한 인식을 낳았을 것이다.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문명을 일으키고 문화를 탄생시켰지만, 전염병은 피할 수 없는 인류역사의 일부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전염병이 발생하면 대규모 인구이동이 이루어지게 되고, 이것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위협이 되어 왔던 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염병이었다.

의료체계가 취약했던 고대로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하였다. 흑사병, 천연두, 스페인 독감 등 선사시대부터 대재앙이었던 전염병은 우리 유전자 속에 깊숙이 그 공포를 심어 두었다. 고대에는 한번 전염병이 돌고 나면 마을 전체를 통째로 불태우기도 하였다. 전염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기후 변화와 전쟁이 대표적인 원인이었을 것이고 대체로 전염병은 오랜 기근도 동반해 왔다. 전염병이 돌고 나면 이미 세상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물론 인류애는 피어나곤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서웠던 전염병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천연두였다.

조선시대에는 인구의 50%가 아동기 이전에 사망하였는데, 이러한 아동 사망의 40%가 천연두에 의해서였다. 누구나 걸리는 통과의례였기에 ‘백세창’이라고 해서 백 살을 먹어도 한 번은 걸려야 하는 병으로 인식했고, 어릴 적 천연두와 홍역을 앓지 않은 사람은 커서 사람 취급을 제대로 안 해줄 정도였다. 천연두로 죽게 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고열 때문이다. 고열이 위험한 것은 우리 몸의 뇌는 40도가 넘으면 뇌 조직이 녹거나 파괴된다고 한다. 이때 겨우 목숨을 건졌다 해도 후유증으로 귀머거리가 되거나 눈이 멀거나 지적 장애가 올 수 있다.

천연두가 낫는다 해도 딱지가 곱게 떨어지지 않으면 얼굴에 곰보자국이 생겼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곰보자국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전염병은 왕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조선 숙종의 경우 14살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그때까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아 혹시라도 도성 안에 천연두 환자가 생기면 궁궐 주위에 금표를 설치하여 출입을 막았고 궁궐 문도 폐쇄하는 등 왕도 출궁하지 않았다. 결국 숙종은 23세에 천연두에 걸렸지만 잘 넘어갔고,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는 20세 되던 해에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천연두가 아니었다면 사극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천연두를 마마신이 환자 몸에 의탁해서 강림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마신에 걸린 아이는 단순한 아이가 아닌 신이 깃든 존재로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 모셔졌다. 마마신의 심기가 불편해질까봐 집안에서는 저마다 지켜야 할 금기가 있었고, 만약 지키지 않으면 마마신이 화가 나서 환자를 죽인다고 믿었다. 특히 지켜야 할 것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미 마마신이 강림했기 때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마마신이 화가 나서 환자를 죽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천연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이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잉카문명이 불과 수백 명의 스페인 군인에게 멸망당하는 이유도 천연두 때문이었다. 서양인들이 옮긴 천연두에 원주민이 감염되어 무려 90% 이상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천연두는 소로 인해서 옮은 질병이다. 스페인이 들어오기 전까지 남미에는 소가 없었고, 그래서 원주민들은 천연두에 면역력이 없어 많은 사람이 사망한 것이다. 소의 유두에 궤양이 생기는 우두는 젖을 짜는 손에 상처가 있으면 사람에게 옮게 되는데 그 후 손과 발이 불에 탄 듯한 자국과 두통, 구토 증상이 있다가 며칠 뒤에 멀쩡하게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알게 된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사실에 기인하여 연구에 매진한 끝에 종두법을 발견, 시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1년까지 4만 명의 천연두 환자가 있었지만 1960년이 되면서 3만 명으로 대폭 줄어들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는 1979년 이후 천연두는 발생하지 않았고 그래서 인류가 정복한 유일한 전염병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은 흑사병이다.

유럽지역에서는 1346년 ~ 1353년 사이 그 유행이 절정에 달했으며, 이 유행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소 7,500만, 최대 2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유럽사회에서는 1347년 처음 창궐한 이래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1340년대 흑사병으로 약 2천 5백만 명이 희생되었고, 이때 흑사병은 중앙아시아나 인도에서 발원하여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흑사병의 원인균인 페스트균은 박테리아의 일종으로 보통의 경우 토양 속에서 서식하며 간혹 설치류와 인간의 체내에 들어와 기생하면서 전파되어 흑사병을 일으킨다. 특히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쥐의 피를 빨아먹는 동안 페스트균에 감염되고, 이 벼룩에 사람이 물리면 페스트균에 감염된다. 흑사병이 당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보면 당시에 쥐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세기 당시 유럽에서는 흔한 병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

흑사병의 전염 경로는 비단길과 몽골 제국이 관련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몽골제국은 비단길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점령하였으며, 1347년 몽골의 포위 공격이 있었던 크림 반도의 페오도시야에서의 흑사병이 처음으로 창궐하였기 때문이다.

페오도시야를 포위 공격했던 킵차크 칸국의 자니베크 칸은 흑사병에 걸려 죽은 군인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도시의 성벽 너머로 던져 넣음으로써 흑사병을 생물학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도시에 흑사병이 퍼지게 되었다. 흑사병은 ‘검은 죽음’이라는 뜻으로 검은 반점과 부종이 나타나 살이 검게 썩어들어 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350년대 유럽의 문화는 흑사병의 영향으로 매우 음울하였고 문화의 곳곳에서 염세주의적 영향이 두드러졌으며 당시 사람들은 역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또한 중세 유럽을 지배하던 봉건사회는 농노의 대규모 죽음으로 사회구조 자체가 몰락하였고, 이로 인하여 현대 유럽이 형성되었으며, 자본주의가 발생하는 기초를 만들기도 하였다. 어쩌면 전염병이 현대사회를 낳았다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될 수도 있다.

1928년 플레밍이 우연히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죽이는 데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여 개발한 것이 바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이다. 이렇듯 20세기가 되면서 주목할 만한 일은 페니실린의 개발로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세균성 그리고 박테리아성 전염병은 상당 부분 인간이 정복하였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 상 전염병은 일부 극복되기도 하였지만 계속 진행 중이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제대로 치료가 안 되는 것들이 존재하는 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세계 제1차 대전 중 발생한 스페인 독감이다. 이 독감은 바이러스이기에 세균이나 박테리아와는 차원이 다르게 작고, 또 페니실린이 작용하지 않기에 스페인 독감은 결국 1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 스페인 독감은 원래 미국에서 발병되었는데, 유럽에 파병된 미군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었고 당시 전쟁에 참전을 하지 않았던 스페인이 이 독감에 관심을 가지면서 스페인 언론에 집중 조명하여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바이러스는 어려운 문제이다. 바이러스 중 정복이 가능한 경우도 있었지만 RNA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러스는 DNA와는 달리 유전적 전달구조가 완벽하지 않기에 돌연변이가 많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AIDS와 에볼라 바이러스, 2000년대 이후에 발생한 신종 플루, 사스, 메르스, 최근 유행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까지 모습을 자주 바꿔 등장하여 인류사회를 당황스럽게 한다. 이렇게 신종이 나오는 탓에 치료제 개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 역사 중 가장 극적인 전염병 창궐 사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일어났다.

임진왜란 발발 후 얼마되 지 않은 1593년 남해지역에 전염병이 돌았다. 이로 인해 조선 수군은 전쟁에 참전해서 전사한 인원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인원이 훨씬 더 많았다. 이순신 장군도 감염되었지만 12일 간의 사투 끝에 극복하였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전염병으로 잘못 되셨다면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또한 병자호란은 두 달 남짓한 짧은 전쟁이었는데, 조선은 우리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패배를 하였다. 그럼에도 청나라 군대는 재빨리 철수를 결정한다. 당시 청나라의 경제상황이 안 좋아 최대한 조선을 경제적으로 수탈하고 노예로 팔기 위하여 조선인들을 끌고 가야 했지만 예전의 몽골처럼 다루가치 같은 관리를 남긴 것도 아니고 어떤 영문인지 마치 후퇴하는 군대처럼 빠르게 조선에서 군을 철수하였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나라 군에 천연두가 널리 퍼져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많다.

조선의 인구가 대량으로 줄어든 것은 현종 때 창궐한 전염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조선 현종 때, 임진왜란 전 1,200만 조선 인구는 600~700만으로 줄어들었고, 영조 정조 때 간신히 800만을 유지하다가 세도정치시기에 다시 700만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다가 고종 때에 이르러 1,400만 수준이 되었다. 사실 조선의 인구가 대량으로 줄어든 것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문이 아니고 현종 때 창궐한 전염병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결국 양민의 감소는 조선의 노비제 사회를 붕괴시켜 영조 때부터 공노비를 없애더니 순조 때에 이르러 거의 모든 공노비가 해방이 된다. 이것은 신분제 사회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인간에게 전염병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그러나 역사라는 틀에서 전염병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 가장 큰 요소였다고 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전염병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전염병이 돌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소수자 혐오다.

전염병 확산의 원인을 나와 다른 ‘저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래야 위안이 되고 혹시 모를 책임론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오래된 못된 버릇이다. 19세기 콜레라가 한창일 때 당시 청나라에서는 반체제 성향의 신흥종교인 백련교도들에게 혐의를 돌리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 독감은 최초 발생지인 미국에서 “독일인 때문에 생겼다”, “동유럽 이민자 때문에 생겼다”, “흑인 때문” 이라는 등 소수자에게 원인을 돌리는 각종 소문이 횡행하기도 하였다. 최근 중국 후베이성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자 미국에서는 소수이긴 하지만 중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을 대상으로 묻지마 폭행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보면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사회적 거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도 인류에겐 희망이 있다. 전염병 현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인류애가 그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재난 속 혼란을 틈타 매점매석 등으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대구 경북지역 환자들과 의료진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원봉사를 하거나 구호물품이나 먹거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위해 방호복을 입고 동행 격리를 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두려움과 공포감으로 나와 내 가족만 아니만 된다는 이기심이 작용할 수도 있지만 이번 사태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에서 할 일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 이들을 나누게 하였는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는 ‘홍익의 유전자’들이 있다. 항상 그렇듯이 위기에 처하면 그 위대하고 거룩한 정신이 발현되곤 한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전염병의 특성상 감염 대상에 제한이 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감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전염병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가 있고 하나가 되어야만 이 재난을 조기에 극복할 수 있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책임 추궁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가적 재난이고 총체적 문제이므로 그 누구도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 누구의 책임도 가벼이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한민족의 본성이 깨어나고 ‘홍익의 유전자’가 발현될 때이다. 힘과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이번 재난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7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