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웅진도읍기의 왕실묘역인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에서 새로운 고분의 유존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3월,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를 시행하였고, 4월에 시행한 고고학 지표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했다. 신라, 가야와는 달리 백제는 지하에 매장시설을 두고 봉분을 크지 않게 조성했기 때문에, 지표면에서 고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봉분이나 석재 등 고분의 흔적과 입지특성, 지형분석 등을 통해 위치를 측정할 수 있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3월,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를 시행하였고, 4월에 시행한 고고학 지표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했다. [사진=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2~3월, 문헌조사와 사진조사를 동반한 실내조사를 시행하였고, 4월에 시행한 고고학 지표조사에서 고분 41기의 유존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했다. [사진=문화재청]

6월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의 지하 물리탐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대일항쟁기 이후 위치를 알 수 없었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도 파악할 수 있었다. 대일항쟁기 당시 고분의 위치를 표시한 사진자료와 현재 촬영한 사진자료를 비교‧검토하여 확보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이들 고분의 현재 위치를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지역에 백제의 왕릉이 있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이미 알려져 있었다. 발굴조사는 지난 1927년부터 1933년까지 가루베 지온(輕部慈恩)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처음 시행하였는데, 당시에는 총 29기를 보고하였다.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진 벽돌무덤(塼築墓, 6호분)과 돌방무덤(石室墓, 1~5호, 7~8호, 29호) 8기의 발굴기록만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부였다.

이번에 추가로 발견한 41기의 고분이 대일항쟁기에 보고된 29기와 얼마나 중복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고분의 위치를 대거 파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020년부터 추정 고분들의 본격적인 조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무령왕릉은 1971년 6호분의 뒤쪽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벽돌무덤으로 삼국 시대 무덤 중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으로도 유명하다. 1988년과 2018년, 제단으로 추정된 주변의 석축시설을 두 차례 조사한 것을 외에는 그동안 백제 왕릉과 왕실묘역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가 미진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무령왕릉을 중심으로 총 7개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다.

송산리 고분군은 그동안 주로 일본인이 조사하였고, 이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시행한 조사는 우리 손으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에서 나온 인골을 연구하여 백제 무왕과의 개연성을 확인했다.

현재는 백제 능묘제도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백제왕도핵심유적보존관리사업추진단과 공주시의 ‘항공라이다측량과 지하물리탐사를 이용한 공주 송산리고분군 유적 정보 고도화사업(가칭)’을 지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