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8년 백제 성왕이 백제의 부흥을 위해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시기인 백제 사비기 귀족의 돌방무덤과 봉분이 일부 확인되었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부여군과 (재)백제고도문화재단이 올해 4월부터 충남 부여군 능안골 고분군을 조사한 결과 백제 사비기 무덤의 봉분조성 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부여 능안골 고분군에서 백제 귀족층의 돌방부덤과 봉분 일부가 확인되었다. (위) 부여 능안골 고분군 4차 발굴조사 대상지 전경(아래 왼쪽) 1호묘 현실 전경 (아래오른쪽) 3호묘 현실 내부 [사진=문화재청]
부여 능안골 고분군에서 백제 귀족층의 돌방부덤과 봉분 일부가 확인되었다. (위) 부여 능안골 고분군 4차 발굴조사 대상지 전경(아래 왼쪽) 1호묘 현실 전경 (아래오른쪽) 3호묘 현실 내부 [사진=문화재청]

조사 결과 백제 사비기 무덤 총 5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과 고분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연도(羨道), 무덤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2기, 현실과 묘도로 이루어진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 석실묘) 1기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 1호분과 4호분 현실 내부에서는 금 귀걸이와 철제 관못, 관고리가 나왔다.

봉분 일부가 확인된 1호묘와 3호묘 중 1호묘가 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거칠게 다듬을 돌을 이용해 단면 형태 터널식으로 구축되어 현실로 들어가는 별도의 문인 현문없이 연도와 묘도가 달린 굴식 돌방무덤으로 조성되었다. 현실 천장석 위로 약 80cm 정도 두께의 봉토가 남아있고, 봉토층은 인근 지반을 이루는 풍화암반토와 깬돌을 섞어 단단히 다졌다.

반면 3호묘는 직사각형으로 비교적 잘 다듬은 판석을 이용해 단면 형태 육각형의 현실과 문주(門柱), 문인방석(門引枋石)으로 이루어진 현문시설과 연도가 달린 굴식 돌방무덤이다. 북쪽과 동쪽으로 형성된 자연 곡간부로부터 무덤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석실 조성 전 수평으로 지반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최대 두께 86cm의 봉토층이 조성되었고, 평면은 지름 7.7m~10.1m 규모의 타원형으로 조성되었으며, 봉토층은 모래가 많은 흙을 이용해 중앙 매장시설 위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향하도록 만들어졌다.

(왼쪽) 1호묘에서 출토된 철제 관못과 관고리 (오른쪽) 4호묘에서 출토된 금 귀걸이. [사진=문화재청]
(왼쪽) 1호묘에서 출토된 철제 관못과 관고리 (오른쪽) 4호묘에서 출토된 금 귀걸이. [사진=문화재청]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귀족층의 다양한 무덤 구조와 축조 순서를 파악하게 되었다.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무덤 영역 내 대지와 봉토 조성 방식을 확인하게 되어 앞으로 유적 정비와 복원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여 능안골 고분군은 1995년과 1996년 긴급 발굴조사를 통해 은제관모장식과 금귀걸이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면서 백제 사비기 귀족층 무덤으로 인식되었다. 2017년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일환으로 북동편 지역 시굴 및 발굴조사를 해왔다.

한편, 능산리 고분군 동편부터 능안골 고분군을 포함한 청마산성 남성벽 아래편 사면부 일대를 올해 3월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100여 기의 백제 고분이 확인된 사비도성 밖 매장지 중 하나인 부여 능안골 고분군 주변 백제 고분 분포 양상과 현황을 밝힐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부여군과 함께 부여 능안골 고분군을 비롯한 부여 핵심유적에 대한 실체 규명을 통해 백제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적 보존과 관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