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사랑! 행복한 변화의 시작이었어요
자신에 대한 사랑! 행복한 변화의 시작이었어요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5.09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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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26편] 이재화 씨 '인생의 반전' 맞이하기

누구도 부모가 될 준비를 마치고 첫 아이를 맞이하진 않는다. 이재화(34) 씨도 첫째 딸을 맞이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힘든 고비가 많았다.

“뇌교육명상을 통해 모든 답이 제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 행동의 뿌리를 찾아가며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가 더 이상 제가 고쳐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어요. 하나의 완전한 생명이고 인격체라는 걸 알게 되었죠.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제게 행복한 변화를 시작하게 해준 정말 대견한 딸이에요.”

뇌교육명상으로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찾은 이재화 씨. [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으로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찾은 이재화 씨. [사진=김경아 기자]

이재화 씨는 살아오면서 자신의 계획대로 이루지 못한 것 없었다고 한다. 공부도 적당히 잘 했고, 인간관계 면에서도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인기 많은 친구로 지냈다. 친절하고 남을 보살피는 따뜻한 모습에 막연하게 동경하던 간호학과에 들어갔고,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서울시 간호직 공무원이 되었다. 평소 꿈꾸던 이상형인 남편을 만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해 재테크도 계획대로 차근차근 이루고 있었다. 행복했고 한계에 부딪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단 하나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장벽이 나타났다. 첫째 딸 나은이였다. 나은이는 너무나 예민해서 언제 울지 몰라 재화 씨는 늘 불안했다. 막무가내로 짜증을 부리곤 했다. 커가면서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가르치는 대로 따르기보다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제 나이 10대, 20대일 때는 화가 나면 화를 다 내고, 하기 싫은 일은 모두 남 탓을 하며 상황을 회피했죠. 하지만 아이는 아니었어요. 잠을 자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남편과의 시간은 물론 제가 좋아하는 많은 것을 아이를 위해 포기해야 했죠.”

재화 씨는 고집불통인 나은이를 기르며 감정조절이 어렵고 화를 참기 힘들었다. “내가 아이를 못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너무나 유난스러운 것이라고 모든 문제를 아이 탓으로 돌리기도 했어요. 심리상담도 받고 교육기관을 옮기기도 했고 각종 교육서적을 읽으면서 아이를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것들이 결코 소용이 없더군요. 아이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처럼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었어요.

때론 ‘엄마반성문’ ‘엄마수업’ ‘유대식 육아’ 등 책을 읽고는 울면서 ‘아이에게 이젠 화내지 않을 거야. 내가 잘못했어.’라고 울었어요. 그런데 머리로만 이해될 뿐 다음날이면 똑같이 행동하더군요.”

그는 여느 강남엄마처럼 성공적인 교육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 나은이가 5살 때 영어유치원을 보냈는데 유치원 학부모들의 대화주제는 아이들의 영어실력, 국어실력이었다. 유치원에서는 매월 테스트를 해서 성적과 순위를 발표했다. 재화 씨는 아이의 점수가 자신의 점수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서 따로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아이는 절대 따라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고 화를 냈다.

한번은 나은이의 심리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은이가 불안하고 산만하고 주의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8세가 되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지만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그는 암담한 마음에 관련 책을 읽고 고쳐보려고 했다.

“영어유치원부터 다양한 예체능 숲체험, 교우관계 체험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도 학습이나, 사회성 면에서 부족해 보일 때 아이의 실패가 제 실패라고 생각했어요. 저와 아이를 동일시하며 아이를 다그치게 되니 아이와 저, 둘 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더군요.”

그는 첫 아이 때부터 육아휴직을 하며 워낙 바쁘고 가끔씩 허리 통증으로 힘든 남편이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3년 후 둘째가 태어났어도 남편은 귀가가 늦고 의사회 활동과 야구와 카레이싱 취미 등 자신의 시간에 더욱 충실했다.

“점점 불만이 쌓이고 아이 때문에 제가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거칠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제가 나은이에게 하는 행동이 보였어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난 해 11월, 그는 주위의 권유로 처음 단월드 반포센터를 찾았다. 평소 명상에 큰 관심이 없던 재화 씨에게는 조금 낯설었지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얼마 후 심성교육을 갔죠.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인상 깊었어요. 제가 그동안 나라고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제가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짧은 경험이었지만 온전하게 제 자신을 사랑하고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자신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었죠.”

이재화 씨는 자신 안에 뿌리깊게 자리했던 관념과 기준들에서 벗어나면서 진정한 자유로움과 잔잔한 평화를 찾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의 변화는 지난해 12월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 메소드)교육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 자신과 정면으로 만나고, 그동안 제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성공의 기준과 관념들을 계속 삭제하고 삭제하면서 정말 새로운 경험을 했죠.”

자신의 관념들을 상상의 용광로에 던져버리면서 망설임도 있었다. 그나마 힘들었던 기억이나 감정을 버리는 것 보다 좋았던 기억을 놓아버리는 게 힘들었다. “남편과 사랑으로 충만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저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예전 남편의 모습이 기준이 되어 지금의 남편에게 ‘그때처럼 나를 대해주지 않느냐’며 다그치고 기대에 못 미치는 남편을 미워했어요. 사랑이 변했다고 매일 투덜거리고 사랑을 구걸했더군요. 가장 행복했던 과거 기억이 나를 현재에 살지 못하게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것들은 ‘살면서 꼭 필요한 게 아닌가, 버리면 안 되는 데’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돈을 충분히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을 가져야 하고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도 그런 조건을 장착해야 성공한다는 생각들의 뿌리도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서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셔야 했어요. 저녁이 되면 깜깜한 집에서 혼자 TV 앞에만 있었어요. 무서워서 다른 방에는 가지도 못했고요. 한번은 감기가 심하게 들어 코는 막히고 목이 부어서 정말 슬펐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게 ‘돈이 없으면 외롭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있을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각인되었더군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놓아주고 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어느 순간 저를 둘러싸고 있던 경계가 사라지는 걸 느꼈고 무한한 자유로움과 잔잔한 평화를 체험했어요.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와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그동안 부모님이 자기관리를 못하고 감정관리를 못했다고 나름대로 재단했던 잣대를 없애고 나니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 싹 걷히고 한없이 주신 사랑이 밀려와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딸 나은이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아이는 이미 완전하고 있는 그대로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늘 곱지 않고 교정의 대상으로 보고 잘 안 되서 손이 많이 가는 부담스러운 아이였는데, 제 말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한 나은이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하) 어렸을 때 ABC를 가르치고 한글을 가르치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뇌간이나 구피질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신피질에 정보를 넣어주려 한 것이잖아요. 나은이가 노래나 춤을 알려주어도 가사를 만들어 부르고 춤도 만들어 내는 게 오히려 멋져 보입니다.”

그도 가끔은 흔들릴 때가 있다. “유치원선생님과 상담하면 ‘내가 너무 방임하는 게 아닌가, 엄마로서 업무태만이 아닌가, 결정적 시기라는 게 있는데 내가 놓친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쏠리게 되죠. 지금은 ‘아! 내가 비교 정보에 쏠렸구나’하는 걸 먼저 인식합니다. 나은이 만의 속도가 있고, 누가 뭐래도 자기 속도에 해낸 아이인데 내가 또 다른 아이의 속도에 맞추려고 했다는 걸 깨닫죠.” 이제 나은이와는 화 내는 일 없이 대화가 잘 통하게 되었다.

그의 남편도 함께 뇌교육명상을 하며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은 인정의 욕구가 많아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했는데 반면 자신 없는 것은 놔버리는 특징이 있더군요. 아빠 역할도 그랬고요. 원망이 이해로 바뀌니 훨씬 대화가 잘 통하죠.”

[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푸시업 한 개도 하지 못하던 이재화 씨는 푸시업 15개는 물론 턱걸이도 다섯개를 거뜬히 한다.[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을 하는 동안 체력도 많이 좋아졌다. 푸시업을 하나도 하지 못하던 그는 이제 푸시업 15개는 거뜬하고, 모두가 힘겨워하는 턱걸이도 다섯 개를 할 정도가 되었다. 체력이 좋아지니 감정조절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재화 씨는 “뇌교육명상이 아니었으면 내 입장에서만 판단하면서 살았을 것”이라며 “반포-대치 코스에 맞춰 선행학습에 매달렸을 거예요. 전에는 여행을 가도 여유 있게 쉬어본 적이 없었죠. ‘이렇게 쉬는 동안 남들에게 뒤쳐질 텐데.’하는 마음이었죠. 이제는 불안이 없어져 한결 편안합니다.”라고 했다.

PBM교육 후 너무나 좋아서 친구들에게 뇌교육명상을 권하는 그는 처음에는 실수도 했다고 한다. “친구가 훨씬 가능성이 많은데 ‘너니까 되지. 난 안 돼’라고 해서 답답해했는데 친구는 잔소리처럼 듣더군요. 제가 그 친구의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걸 마음을 열고 이해하고 친구가 정말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권하니까 그때서야 통하더군요.”

그는 “지금까지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사랑을 주는 사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뇌교육지도자처럼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죠.”라고 했다. 아이들이 크면 남편과 함께 세계로 나가 의료봉사를 하자고 약속했다. 의료봉사와 함께 희망과 사랑의 에너지를 전하는 뇌교육전문가의 꿈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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