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찾았어요”
“고국에서 내면의 자유와 평화를 찾았어요”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4.19 10: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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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23편] 파란만장 원순자 씨의 꿈 찾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환갑이 넘을 때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뭘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중년을 넘어 찾아온다는 또 다른 사춘기. 올해 63세인 원순자 씨는 “자식들이 다 잘 자라 제 각기 살고 있으니 엄마 역할, 아내 역할도 다 했다. 뭔가 비어있고 공허했다. 돈을 벌어도 채워지지 않았고 먹어도 배가 고픈 것 같고 가슴이 허했다. 살아갈 희망이 없었다.”고 한다.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그는 만성적인 목 디스크와 허리통증 등을 달고 살았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만 조금 낫고 통증은 여전했다.

40대 중반까지 중국에서 살았던 원순자 씨. 그는 뇌교육명상 강사의 꿈으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사진=강나리 기자]
40대 중반까지 중국에서 살았던 원순자 씨. 그는 뇌교육명상 강사의 꿈으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사진=강나리 기자]

대책이 필요했다고 고민할 때 쯤 거리에서 시민들의 어깨를 풀어주고 건강법을 전하는 단월드 구의센터 ‘러브핸드 봉사단’과 만났다. “어깨와 목을 풀어주는데 정말 편안했고, 내 몸을 나보다 더 잘 알아주더라. 센터에 가서 전체적으로 점검과 힐링을 받아보니 운동을 해서 이렇게 순환이 잘 된다면 살 것 같았다.”

지난 2월 회원등록을 하고 그는 정말 죽기 살기로 체조와 호흡, 기공 등 뇌교육명상을 했다. “날마다 좋아지더라. 한번은 머리 왼쪽이 크게 아프다 깨끗이 사라지고, 굴렁쇠 체조를 하는데 목에서 피고름이 나오더니 경추에서 울퉁불퉁 튀어나온 것이 없어져 지금 보면 이렇게 깨끗하다.”며 보여주었다. 안 좋았던 몸이 머리에서 차례로 내려가며 명현현상(치유과정에서 몸이 회복하기 전 한번 안 좋은 쪽으로 이상 반응이 나타남)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지금은 늘 서서 일하면서 생겼던 허벅지 실핏줄이 없어지고 있다. 여름에도 냉랭하던 손발이 이렇게 따뜻해졌다”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그는 “이제는 어디가 또 좋아지려나 설렌다.”고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전에는 얼굴이 샛노래서 간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3개월 만에 뱃살이 쏙 들어가고 팔과 다리 근육이 탄탄해졌다. “피부가 뽀얗게 살아나니 주변에서 ‘뭐하는 데 예뻐지느냐?’라고 한다. 함께 명상하는 회원 자매가 나이를 40~50대까지 보길래 놀리지 말라고 했다.(하하) 나처럼 되고 싶다고 하더라.”

40대 중반까지 중국에서 살았던 원순자 씨는
40대 중반까지 중국에서 살았던 원순자 씨는 "뇌교육명상 전문가 과정을 밟아 2년 후 쯤 연변으로 가서 동포들에게 뇌교육명상을 전하고 홍익을 실천하고 싶다."며 더욱 부지런히 자기관리에 힘쓰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그가 심성교육과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메소드)교육을 받으며, 그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돌덩이를 치우고 나니 체력회복은 물론 전에 가져본 적 없던 꿈도 품게 되었다.

그는 살면서 ‘부모님은 왜 날 낳아서 이렇게 고생시켰냐?’는 푸념을 많이 했단다. 누구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 하나쯤 갖고 살지만 원순자 씨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연변에서 자랐다.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던 아버지는 지금의 시장에 해당하는 고위공직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아버지는 한국출신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썼고, 그의 가족은 척박한 시골로 쫓겨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0년대에 잘잘못이 밝혀져 국가배상을 받았지만, 학교를 다닐 때는 죄인 가족이라고 친구들은 물론 담임선생님도 멀리했다. 시골이 정말 낯설고 힘들었고,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소수민족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이 심해서 조국에 살지 못한다는 게 정말 서러웠다.”

그는 21살에 시골서 탈출하듯 시집을 갔고, 2002년에는 남편과 함께 귀국해서 국적을 회복했다. 그때부터 큰 식당에서 서빙을 시작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 안 해 본 일이라 서툴다보니 동료들도 쑥덕쑥덕 뒷말을 했다. “그래도 내 나라 땅에 왔다는 것 때문에 분하지 않았다. 연변에서는 재중동포들의 집 방향이 대부분 한반도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나라가 아닌 땅에서 사는 설움을 아무도 모른다.”며 어느새 눈물을 글썽였다. 병원 청소, 식자재마트 일 등 한번에 2~3가지를 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아봤지만 삶이 만족스럽진 않았단다.

그는 심성교육에서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왜 태어나게 했냐고 부모님을 원망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부모님이 의도한 게 아닌 줄 알면서도 담아두었던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게 깊이 와 닿았다. 잘 났던 못 났던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사람들과 진심을 전하고 나누는 게 좋았다. 홍익하면서 사는 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란 것도 찾았다.”

원순자 씨는 뇌교육명상 PBM교육에서 자신 안에 존재하는 큰 사랑과 평화, 자유를 체험하고 후회없는 인생을 위한 꿈을 품었다고 한다. PBM교육을 함께 받은 사람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 [사진=본인 제공]
원순자 씨는 뇌교육명상 PBM교육에서 자신 안에 존재하는 큰 사랑과 평화, 자유를 체험하고 후회없는 인생을 위한 꿈을 품었다고 한다. PBM교육을 함께 받은 사람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 [사진=본인 제공]

심성교육을 받은 후에는 매일 오후 2시 출근하던 마트에 1시간 앞당겨 나가 오전 근무조가 식사를 마칠 때쯤 희망하는 동료직원들을 모아 자신이 배운 뇌교육명상을 가르쳤다. 한번은 심하게 체해 식사를 하지 못하는 동료의 힐링포인트를 찾아 자극하는 BHP명상 건강법으로 풀어주었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했는데 그분이 좋아진 게 그렇게 기쁠 수 없더라. 때마침 직속상사인 관리자가 나처럼 목 디스크가 심해 수술을 해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손 편지를 썼다. ‘뇌교육명상을 해서 나처럼 자연스럽게 나았으면 좋겠다. 뭘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써서 전했다. 그랬더니 며칠간 지나며 주머니에 슬쩍 간식을 넣어주더라. 남자들은 말로 잘 표현 못하지 않나.(하하)”

이어 순자 씨는 PBM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과 습관, 감정의 원인을 바라보고, 그것을 스스로 다루는 뇌교육 5단계를 체험했다. 그 과정에서 많이 울었단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겠더라. 돈에 대한 집착, 다른 사람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끝없는 욕심 속에 살아온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부자가 되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내 몸을 내가 함부로 쓰고 돌보지 않고 살았는지.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아서였다. 실컷 울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고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더 깊은 명상 속에서 내 본질이 사랑이고 내 안에 사랑할 수 있는 큰 힘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겠더라. 정말 평화롭고 자유로웠다.”

현재 그는 뇌교육 전문가의 길을 가기위해 마스터힐러 교육을 앞두고 있다. “열심히 배워서 2년 정도 후에는 내가 살던 연변에 가서 뇌교육명상을 전하고 홍익을 실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에 도전할 계획이다. 백발이 되어도 많은 사람을 깨울 수 있는 홍익강사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헛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주고 싶다. 중국에 사는 자식들도 그렇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갔으면 한다. 건강도, 행복도 스스로 만들면서 가슴에 꿈을 품을 수 있었으면 한다.”

원순자 씨가 심성교육을 받은 후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고 사랑을 나누고자 홍익활동을 시작하며 썼던 손편지 초안을 보여주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원순자 씨가 심성교육을 받은 후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고 사랑을 나누고자 홍익활동을 시작하며 썼던 손편지 초안을 보여주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원순자 씨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뇌교육명상을 한다.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려면 내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내 자신이 먼저 건강하고 활기 있게 만들어져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따라오지 않겠나. 나를 따라올 사람이 누구든 제일 먼저 내 겉모습을 보고 신뢰해야 내면의 성장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이젠 나 혼자의 몸이 아니구나 하며 부지런해진다. 불규칙하게 식사하던 것도 제대로 먹고 자기관리를 한다. 여기까지 이끌어준 분들이 고맙다. 눈 감을 때 후회 없이 편안히 갈 수 있겠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의 무상함을 말한다. 하지만 원순자 씨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건데, 후회 없이 열정을 다해 자신의 에너지를 쏟으며 살겠다고 한다. 원순자씨 요즘 토요일마다 거리에서 시민들의 지친 어깨를 풀어주는 러브핸즈와 BHP명상 건강법을 전하는 봉사단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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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2019-04-19 11:33:28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합니다
한편의 자서전 같아요^^
너무너무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