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자유롭길 원한다. 주위 환경이나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때문에 갑갑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틀 안에 자신을 맞추며 사는 게 익숙해서 삶의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다.

전영희(39) 씨는 조용한 성격에 부모님 속 썩이는 일없이 평범하게 자랐다. 또래에 비해 생각이 많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IMF 외환위기를 지나왔기에 경제적 자립을 일찍 하고 싶었다. 뚜렷한 결심보다는 나라의 일을 하면 보람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에 통일부 공무원이 되었다. 7급 공무원이 된 지금까지 그는 일복이 많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전영희 씨는
전영희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저 스스로 만든 익숙한 틀을 깨고 제 자신이 어떤 사람도 될 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진정한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알겠더군요"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제가 통일부에 있으면서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은 2006년 개성공단사업지원단 소속으로 개성공단이 조성되는 초창기 방북승인 지원업무를 할 때였죠. 개성에 자주 방문했는데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고 그곳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같이 근무하는 과정을 보면서 작은 통일이 이루어진 거 같았어요. 통일에 일조한다는 기쁨이 컸죠.”

그러나 2010년경에는 남북관계가 경직되었다. 당시 통일부 업무관련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장소가 충남 천안에 있는 국학원이었다. 교육과정 중 국학원 민족혼교육을 압축한 강의를 듣고 가슴이 뛰었다.

“내가 알고 있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자부심이 생겼죠. 마지막 영상에 우리나라를 지킨 많은 독립군들을 보면서 마음이 뭉클했고, 그들이 지켜낸 우리나라가 어떤 철학과 역사를 기반으로 했는지 새롭게 바라보니 정말 소중하고 자랑스러웠죠.

그때 제 담당업무가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민족혼 강의를 받으면서 ‘이해가 아니라 마음으로 와 닿아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죠. 우리 한민족에게 위대한 홍익철학이 있다는 걸 알면 우리가 하나로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뚜렷하게 공감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교육과정에서 뇌교육명상을 처음 접한 그는 몸과 마음도 편안해진 경험이 좋았다. “평소 명상을 해보고 싶었는데 홍익철학을 담은 선도명상이라니 관심이 생겼죠. 때마침 MBC 다큐에서 명상 한류 방송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집 인근에 단월드 마들센터를 찾아갔죠.”

처음 단월드 정규수련에 참여했을 때는 참 어색했단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항상 경직되었는데, 잘 쓰지 않던 몸을 쓰는 것도 낯설고 웃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요.(하하)” 그는 수련을 하면서 점점 몸과 마음이 변화하는 걸 느꼈다. 예전의 그는 늘 허약하고 자주 아팠다. 스트레스를 잘 느끼고 특히 생리통이 심했다. “밥을 먹지 못하고 장기가 틀어지는 듯 했으니까요. 그런데 수련을 하고 아랫배 단전에 힘이 생기면서 그런 통증이 없어지더군요.”

영희 씨는 명상과정인 심성교육에 참가해 자신이 살아오면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그 속에 숨어서 나의 주장을 명확하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는 걸 발견했죠. 제 안에 사랑이 많은데 표현하지 않고 눌러왔어요. 그리고 항상 남이 만든 틀에 맞춰왔더군요.”

심성교육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었다면 그 틀을 깨는 변화는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메소드)교육에서 시작되었다. “뇌의 회로가 바뀌는 느낌이었죠.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것처럼 제가 알고 있던 상식, 진리라고 알고 있던 것들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제 뇌가 유연하게 사고하게 되고 관념의 틀이 깨졌어요. 부모님은 늘 ‘너는 얌전하고 여성스럽고 배려하는 사람이야’라고 하셨는데, 어느새 저 스스로 만들어진 형상에 저를 가두었더군요. 교육을 받고 나는 어떤 사람도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았죠. 정말 자유롭다는 게 어떤 건지 비로소 체험했죠.”

그는 살아오면서 항상 답답한 게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나 자신만 믿고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죠. 주변에서도 그게 정답이라고 했고. 그런데 왜 태어났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죽으면 끝인지 불쑥 불쑥 의문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뇌교육에서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영희 씨는 통일부 내에 기체조와 기공을 수련하는 동호회를 만들어 중앙부처국학기공대회에 출전했다. (위)중앙부처국학기공대회 출전 모습 (아래) 통일부 빛힐링동호회 회원들. [사진=본인 제공]
전영희 씨는 통일부 내에 기체조와 기공을 수련하는 동호회를 만들어 중앙부처국학기공대회에 출전했다. (위)중앙부처국학기공대회 출전 모습 (아래) 통일부 빛힐링동호회 회원들. [사진=본인 제공]

영희 씨는 뇌교육전문가 과정인 마스터힐러교육을 받았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음이 뇌의 원리로 설명되는 것이어서 매 교육마다 행복했고, 다음 교육을 기다렸어요. 제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니까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인정되고. ‘나와 남이 다르다, 분리되어있다’는 의식이 없어지더군요. 교육 중 명상을 통해 브레인스크린에 모든 사람이 지구를 안고 있는 영상이 떠오르더군요. 서로가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었죠.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또 다른 나의 모습일 수 있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경험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전에는 상대방이 불편하면 참거나 대화를 피하며 ‘왜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하지?’라고 힘들어했죠. 이제는 어떤 환경에서 형성된 모습인지 이해가 되고 그대로 바라보게 되니 관계가 편해졌죠.”

마스터힐러교육을 마친 그의 변화는 주변에서도 금방 눈치 챘다. 우선 그의 목소리가 커졌고 자신감이 넘쳤다.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져 찾아서 일을 했다. 조직생활 속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그 관계가 편안해지니 하는 일도 더욱 즐거웠다.

주변 동료들이 고민상담을 하러 오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자녀 때문에 고민하던 분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받기위해 노력하고 있었어요. 엄마가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아이의 마음이 외로운 게 느껴졌죠. ‘엄마가 변해야 아이가 편안해지고 바뀐다’고 전했죠. 그 후 저와 함께 단월드 마들센터에 다녔는데 뇌교육을 받으며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통일부 내에 뇌교육명상을 하는 ‘빛힐링 동호회’를 만들었다. “회원은 20-30명이고 매일 점심시간에 함께 뇌교육명상을 했죠. 차관께서도 기꺼이 동호회 회장을 맡아주셨고, 중앙부처국학기공대회에 나갔어요. 정부 각 부처에서 수련하는 공무원들이 출전한 대회에서 2014년 장려상, 2015년에는 은상을 받았습니다. 업무를 끝내고 동호회방에서 모이게 하는 게 힘들긴 해도 연습과정에서 합을 맞춰가며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죠. 잘 해보자고 의욕이 넘쳤고요. 제가 강사로 활동하는 동안 뇌교육 전문가로 같은 꿈을 가진 마스터힐러도 5명이 생겼고요. 제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동호회가 조금 약화되었다는데 내년에 복직하면 활성화 시켜야죠.”

뇌교육명상이 그에게 가져온 가장 큰 선물은 두 아이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던 전영희 씨는 10년 전 결혼할 때부터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남편도 시댁에서도 ‘아이가 없으면 어떠냐? 괜찮다’고 했지만 혼자 안달복달 했어요. 거의 포기했는데,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순환이 잘 되고 제 몸이 따뜻해지니 어느 날 축복처럼 제게 아이가 오더군요. 결혼하고 7년 만에 생긴 아이라 정말 기뻤죠. 두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건 뇌교육을 몰랐다면 제 관념대로 아이를 키웠을 텐데 단마스터까지 교육을 받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늦게 와준 게 감사하더라고요. 요즘에도 남편한테 ‘태어나서 제일 잘 한 일이 마스터힐러를 선택한 것 같아’라고 하죠.”

전영희 씨는
전영희 씨는 "뇌교육명상을 통해 소중한 두 아이를 선물받았고, 통일부 공직자로서 이루고 싶은 사명을 찾았다"며 행복한 꿈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에게 마스터힐러교육은 어떤 의미일까? “제 인생의 나침반을 찾은 거죠. 어떤 삶을 살지 인생의 종착점을 알고 가는 기쁨이 크죠. 도착할 곳을 모르고 막연하게 떠나면 방황이잖아요.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가야하는 ‘깨달음의 학교’라고 말하고 싶어요. 배우고 싶으면 대학, 대학원을 가는데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죠. 그렇지 못했으면 저도 행복을 외부에서 찾았을 거예요. 헛헛하고 흐르는 시간 속에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꼈을 겁니다. 제가 직장동료에게 권했는데, 자신 안에서 큰 사랑을 느끼고 삶을 바꿀 용기를 주는 교육이라고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교육을 다녀 온 사람들의 기쁨을 보면서 제가 더 기쁘고 행복합니다.”

내년에 통일부에 복직하는 전영희 씨의 꿈은 크다. “통일은 홍익철학의 바탕위에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하고 한민족의 스피릿이 생기면,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걸 명확하게 공감할 겁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라는 서양사상에 의해 분단이 되었는데, 한민족의 홍익철학으로 단합되면 통일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통일부는 남북통일을 이뤄가는 최전방 부처이니까 통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평화롭게 통일이 된 우리나라에서 자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