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백제 무왕40년(639년)에 건립된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20년 동안의 작업 끝에 대일항쟁기 때 덧씌운 콘크리트를 벗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종덕)는 지난 20일 최근 수리를 마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공개하고 그간의 조사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보수정비 과정을 계속 공개해온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7월 중순까지 현장을 일반에 공개하며, 7월말부터 가설시설물 철거와 주변정비를 위해 현장개방을 잠시 중단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비를 마치는 12월부터는 미륵사지 석탑의 완전한 모습을 공개하며, 향후 2019년 1월 국제학술심포지엄, 3월 석탑 수리 준공식, 5월 석탑 수리보고서 발간 및 사업종료를 할 계획이다.

1910년 촬영한 미륵사지 석탑. 석탑의 동측면을 찍은 위쪽 사진 오른쪽하단에 서 있는 사람을 통해 웅장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훼손이 심한 석탑의 서측면 모습. [문화재청]
1910년 촬영한 미륵사지 석탑. 석탑의 동측면을 찍은 위쪽 사진 오른쪽하단에 서 있는 사람을 통해 웅장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훼손이 심한 석탑의 서측면 모습. [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석탑 중 최대 규모이다. 백제 무왕 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유지된 미륵사의 3개 탑 중 가람의 서쪽에 위치했던 탑이다. 백제 목조건축 기법이 반영된 독특한 이 석탑은 1천 년이 넘도록 유지되면서 절반가까이 허물어져 6층까지만 남은 모습이 1910년 사진자료로 기록되었다. 1915년 대일항쟁기 일본인들은 붕괴된 부분을 콘크리트로 보강하여 다소 흉측한 모습으로 남았다.

1998년 전라북도에서 구조안전진단 결과, 콘크리트가 노후화되고, 구조적으로 불안전하다는 판정에 따라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 및 수리가 결정되었다. 2001년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전라북도와 협약을 맺고, 석탑의 본격적인 해체조사와 함께 학술 및 기술조사연구, 구조보강과 보존처리 등을 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수 및 정비 사업은 1998년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사업기간 21년간 23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자했으며, 한국 문화재수리 역사 상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기간 체계적인 조사연구 및 수리를 진행한 것으로 밝혔다.

특히 해체조사 과정에서 2009년 1월 1층 내부 첫 번째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학계와 불교계는 물론 전 국민적 주목을 받았다. 9천 7백여 점의 유물 중 금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영기를 통해 미륵사의 창건 배경과 발원자가 밝혀졌으며, 이중 최근 보물로 지정예고된 것도 있다.

수리 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 비교적 양호한 석탑 동측면(위)과 달리 서측면(아래)는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콘크리트로 보강된 모습이다. [사진=문화재청]
수리 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 비교적 양호한 석탑 동측면(위)과 달리 서측면(아래)는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콘크리트로 보강된 모습이다. [사진=문화재청]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본래 9층 추정, 과도한 추정 복원은 지양하고 6층까지만 보수

보수 및 정비과정에서 중점을 둔 것은 역사적 가치보존이었다. 과도한 복원을 지양하고 원부재를 최대한 재사용하며,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지난 20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 9층으로 추정되나 진정성을 살려 기록이 확인된 6층까지 보수 했다. [사진=문화재청] [
지난 20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 9층으로 추정되나 진정성을 살려 기록이 확인된 6층까지 보수 했다. [사진=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은 “39권의 기록을 살펴 보고서를 냈는데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본래 몇 층인지 기록이 없다. 다만 석탑은 짝수 층이 없으며 통상 3층과 5층이 많고, 그 다음은 7층, 9층인데 이 석탑의 비례 상 9층일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며 “해체 당시에도 7층 또는 9층으로 하자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문화재 복원에 관한 세계적인 추세는 ‘진정성 있는 보수 정비’로 나아가고 있다. 학계 등 의견을 수렴해 석탑복원에서 무엇을 우순순위로 할지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6층까지만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원부재 중 균열이 심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부재들은 별도로 야외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동안 문화재 발굴이나 복원과 관련하여 수많은 지적이 있었다. 대일항쟁기 일본인에 의해 수많은 문화재가 파헤치듯 졸속으로 발굴되거나 복원되었으며, 1971년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 발굴도 대표적인 졸속 발굴로 손꼽힌다.

그러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국제적 보존 원칙에 부합하여 2014년~2015년 이루어진 세계유산 등재 실사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건축 및 보존과학, 구조, 재로, 수리 기술 관련 학술 및 기술조사 연구가 이루어져, 석탑해체수리 및 보존처리 방법 관련 논문 및 학술발표가 37건, 풍화도에 따른 석조문화재 금속보강방법 등 5건의 기술특허도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