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처의 진리의 모습이라는 비로자나불을 중앙에 배치한 불화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한 포항 대한조계종 보경사 ‘비로자나불도’, 현존하는 평양성도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인천시립박물관 송암미술관의 8폭 ‘평양성도 병풍’ 2점이 각각 보물 제1996호와 제 1997호로 지정되었다.

포항 보경사에 있는 비로자나불도가 보물 제 1996호로 지정되었다.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배치한 불화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사진=문화재청]
포항 보경사에 있는 비로자나불도가 보물 제 1996호로 지정되었다.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배치한 불화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사진=문화재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는 조선 영조 18년(1742) 경상도에서 활동한 세 명의 불화승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작한 그림이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주변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사천왕상이 둥글게 에워싼 원형 구도로, 대형 삼베에 붉은 물감을 칠해 바탕을 만든 뒤 흰색 물감으로 인물과 의복을 표현한 작품으로 높이는 3m에 가깝다.

붉은 바탕과 흰색의 섬세한 필선, 세밀하게 배치된 화려한 장식문양들이 어우러져 오묘하고 조화로운 멋을 선사한다.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명확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불화연구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평양성도 8폭 병풍은 가로 4m에 이르며 제1~2폭에는 영명사와 부벽루 등 명승지, 제2폭~5폭에는 평양시가지, 제3폭~6폭에는 서원이나 첨성대가 자리한 곳이 그려졌으며, 제6폭~8폭에는 사당 등 제례장소가 표현되었다. (위) 제1폭~4폭 (아래) 제5폭~제8폭. [사진=문화재청]
평양성도 8폭 병풍은 가로 4m에 이르며 제1~2폭에는 영명사와 부벽루 등 명승지, 제2폭~5폭에는 평양시가지, 제3폭~6폭에는 서원이나 첨성대가 자리한 곳이 그려졌으며, 제6폭~8폭에는 사당 등 제례장소가 표현되었다. (위) 제1폭~4폭 (아래) 제5폭~제8폭. [사진=문화재청]

송암미술관의 ‘평양성도 병풍’은 조선후기 화려했던 평양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 보듯 펼친 형식으로 그린 전도식(全圖式) 읍성도로, 가로 4m에 이르는 8폭의 작품이다. 도시의 전경을 오른쪽에 비스듬히 배치하고 화면 상단에는 멀리 보이는 북쪽 능선을, 화면 하단에는 평양성을 에워싸듯 흐르는 대동강과 주변 섬인 양각도와 능라도를 묘사했다.

병풍 중앙인 제2폭에서 4폭에는 성벽에 둘러싸인 평양의 모습을 원근법을 가미해 감각적으로 표현했고, 주요관청과 명승지 부근에 반듯한 한자로 명칭을 기재해 사진을 보는 듯한 실재감을 준다.

인천광역시시립박물관 송암미술관에 있는 8폭의 '평양성도 병풍'은 보물 제1997호로 지정되었다. 제작시기가 18세기 후반으로 평양성도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간다. [사진=문화재청]
인천광역시시립박물관 송암미술관에 있는 8폭의 '평양성도 병풍'은 보물 제1997호로 지정되었다. 제작시기가 18세기 후반으로 평양성도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간다. [사진=문화재청]

작품의 제작연대를 18세기 후반까지 올려 볼 수 있는 것은 19세기에 유행한 밝고 짙은 청색을 혼용하지 않고 녹색 위주로 처리한 방식, 명암이 거의 없는 건물 묘사와 인물이 그려지지 않은 예스러운 화법, 그리고 18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1890년 중건된 대동강 주변의 정자 애련당愛蓮堂과 장수가 올라서서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將臺가 묘사되어 있는 점 등이다. 특히 애련당은 중건이후 일본에 밀반출되어 소실되고 현재는 터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평양성도 병풍’ 작품 규모, 제작시기, 예술적 완성도, 조선 시대 한강 이북의 지리적 요충지로 ‘서경’이라 불리던 평양에 대한 역사적 위상을 반영한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될뿐 아니라 조선 후기 회화연구에서도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