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네 명의 여성 작가—이승희, 장예빈, 전다화, 최유정—는 날카롭고 밀도 있는 시각 언어를 통해 동시대 회화와 조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층위를 제시한다.
FIM이 8월 22일 개막한 전시 《Velvet Hammers》에서다. 전시 제목인 ‘Velvet Hammers’는 이러한 태도를 포착한 상징적 표현으로, 유연함과 강인함이 교차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네 명의 작가는 감정과 정체성, 신체와 공간, 여성으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경험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탐색한다. 회화, 조각, 설치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소하지만 집요한 관찰과 예측할 수 없는 흐름에 주목한다. 익숙한 장면에 스며든 낯선 틈을 포착하고, 단단한 발화의 태도로 감각의 표면을 흔들며 존재를 선언한다.

이승희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조각,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다. 특히 개와 인간 사이의 감정적 유대를 출발점으로,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상호성을 탐색하며 공존의 장면을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외딴섬에 머무는 마녀로 묘사되는 여신 ‘키르케’ 신화를 참조하여, 비주류적 존재들과의 연대와 독립적인 삶의 서사를 감각적으로 펼쳐 보인다.
전다화 작가는 인터넷 공간 속 떠도는 이미지, 부적절한 농담, 소외된 밈과 같은 디지털 파편들을 수집하고 이를 회화로 재구성한다. 화면 위에 겹쳐진 레이어들은 단일한 서사로 환원되지 않으며, 하이퍼링크처럼 연결되고 증식되며 고유한 회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디지털 세계의 과포화된 이미지 환경 속에서 작가는 그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작은 틈을 회화의 언어로 실험한다.

장예빈 작가는 영상 속 찰나의 움직임을 포착해 회화로 옮긴다. 눈을 감거나 균형을 잃는 순간처럼 통제되지 않은 몸짓을 화면에 정지하여, 시간의 일부를 고정하는 동시에 그 흐름을 상상하게 만든다. 회화 속 신체는 익숙한 장면에서 벗어나 낯선 긴장감과 감정을 유발하고, 디지털 감성과 아날로그 질감이 교차하는 표면 위에 유머와 아이러니를 얇게 덧입힌다. 그의 회화는 도달하지 못한 시간 속에서 여전히 흔들리는 장면을 머무르게 한다.
최유정 작가는 흐릿한 인물, 비껴간 시선, 어긋난 구도를 통해 익숙한 공간을 불확실하게 만든다. 작가의 화면에는 해석되지 않은 감정의 조각들이 유예된 채 떠다니고, 반복되는 모티브는 심리적 균열과 긴장을 증폭하며 공간을 낯설게 전환한다. 장면 사이의 단절을 포착하고 시각화하는 그는 차분하지만 응집력 있는 밀도로 내면의 풍경을 구성한다.

FIM갤러리 장민지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특히 1990년대라는 공통된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되, 각자의 궤도에서 쌓아온 감각과 서사를 통해 서로 다른 밀도의 장면을 펼쳐낸다. 단순한 세대적 우연이나 정체성의 표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와 태도가 충돌하고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접점에 주목한다.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더라도, 밀도 높은 서사와 고유한 리듬으로 세계를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Velvet Hammers》라는 제목은 바로 이 이중적인 힘—겉으로는 감각적이고 유연하지만, 그 안에 흔들림 없는 의지와 저항의 태도가 깃든—에서 출발한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작업들이 함께 머무르고 충돌하고 어긋나며 만들어내는 장면은, 어린 시절의 종이접기 놀이 ‘동서남북’을 떠올리게 한다. 네 방향의 종잇장이 하나의 중심을 기준으로 접히고 펼쳐지며 매번 다른 문장을 드러내듯, 이 전시 또한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주된다. 때로는 충돌하거나 어긋나는 순간조차 중요한 리듬이 되어주며, 의도하지 않은 조화를 이끌어낸다”라고 설명했다.

장민지 큐레이터는 “네 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단지 동시대 회화의 다양한 결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기존의 세계를 재현하기보다 재구성하며, 각기 다른 언어로 복잡한 현실을 조형하고, 고유한 작업 세계를 구축하며 회화라는 장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감정은 선명하지 않고, 정체성은 단일하지 않으며, 화면과 오브제는 피부처럼 얇거나 벽처럼 단단한 밀도로 쌓인다.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고 다른 감각의 방향을 품은 채, 오늘과 미래 사이의 균열을 만든다.”라며 “《Velvet Hammers》는 서로 다른 언어와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동시대 미술이 감정과 정체성, 연대를 새롭게 구성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라고 소개했다.

1994년 태어난 이승희는 영국런던예술대학교, 첼시컬리지오브아트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하고,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상히읗(2025, 서울), 디스위켄드룸(2023, 서울), 문래예술공장(2021,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CALM & PUNK GALLERY(2024, 도쿄), 전북도립미술관(2023, 완주), 성남큐브미술관(2023, 성남), LUPO Gallery(2023, 밀라노)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7년생 장예빈은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2025, 서울), 교보아트스페이스(2025, 서울), 유머감각(2024, 서울), 온수공간(2023, 서울), 디스위켄드룸(2022, 서울)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1990년생 전다화는 경희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2022년 스페이스 카다로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일민미술관(2024, 서울), 서울대 미술관(2023, 서울)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올해 11월 갤러리 소소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최유정은 1994년에 태어나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평면조형 전문사를 졸업했다. 페레스프로젝트(2025, 베를린), 드로잉룸(2024, 서울), 175갤러리(2021,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고, 성북예술창작터(2023, 서울), 합정지구(2022, 서울)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승희, 장예빈, 전다화, 최유정 작가 4인전 《Velvet Hammers》는 9월 27일까지 FIM(서울특별시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11 2층)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