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폰 레데커가 2020년 발간한 새로운 저항 형식의 철학을 탐구한 《삶을 위한 혁명》(임보라 옮김, 민음사, 2024)이 국내 번역되었다. 생명을 앗아 가는 죽음의 체제에 저항한다는 것, 미투 운동에서 퀴어 퍼레이드, 기후정의 행진까지. 1982년생 독일 철학자 에바 폰 레데커는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으면서도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했던 변화에 이름을 부여한다. ‘내용’이 서로 다른 이 모든 움직임에 공통적인 ‘형식’을 찾은 것이다. 바로 ‘삶을 위한 혁명’이다.

에바 폰 레데커, '삶을 위한 혁명' 표지. 이미지 민음사
에바 폰 레데커, '삶을 위한 혁명' 표지. 이미지 민음사

저자는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와 카를 마르크스를 두 축으로 소유의 문제를 비판하고, 인간 행위의 가치를 되찾는 사유를 펼친다. 근대 시민권 운동에서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았던 소유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는 것이다. 아렌트의 행위 이론과 마르크스의 최신 발굴 문헌, 오드리 로드에서 올가 토카르추크까지 동시대의 레퍼런스를 통해 파편화된 경험과 낡아 가는 사회이론을 종합하고자 시도한다.

에바 폰 레데커에 따르면 ‘삶은 위한 혁명’은 지금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근대의 프랑스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 같은 것이 아니라,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직접 겪은 경험이다. “해양에서의 난민 구조, 살인적인 경찰 폭력에 맞서는 반인종주의적 투쟁, 성폭력과 여성 살해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파업, 종 소멸과 지구온난화에 맞선 환경운동, 전염병 시대 식품건강부의 노동분쟁. 이 모든 순간들이 삶을 위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에바 폰 레데커는 “‘삶을 위한 혁명’은 일상적인 반복에 기초한다. 죽음을 각오하는 영웅, 급작스러운 단절은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해방은 고귀한 요구가 아니라 절박한 과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삶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다양한 곳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기에 단순한 요구가 아니다. 우리는 삶을 위한 혁명을 경험한다.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형식의 투쟁이 출현 중이다. 100여 년 전의 사회적 혁명의 재개도, 5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시민권 운동의 연장도 아니다. 새로운 형식의 저항은 위협받는 절박한 삶을 위한 활동과 연대적으로 조직된 생활에서 시작된 혁명이다. 혁명은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반인종차별주의 활동에 존재하고, 여성 살인에 대항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죽은 지구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를 의식하게 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 속에 존재한다.”

에바 폰 레데커, '삶을 위한 혁명' 입체 표지. 이미지 민음사
에바 폰 레데커, '삶을 위한 혁명' 입체 표지. 이미지 민음사

 

인류 역사상 많은 진보가 있었는데, 아직도 문제가 남아 있다고 에바 폰 레데카는 말한다. 바로 ‘소유’가 문제라는 것이다.

“근대적 정체성은 노예제, 강제 노동, 가부장제 결혼의 섹슈얼리티와 돌봄노동 등 인간에 대한 소유권을 창출하는 제도 속에서 등장했다. 이러한 사물지배에 기반한 정체성은 처분권을 보증하는 제도들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살아남는다. 이전의 지배자들은 그들이 지배하는 사지가 절단된 다음에는 더욱 잔혹하게 행동한다. 그들은 허구의 소유권을 계속해서 옹호한다. ……노예 소유가 금지되고 난 이후에도 흑인의 삶은 가치 없게 여겨지고, 가부장적 결혼제도가 폐지되고 난 이후에도 여성성은 착취 대상으로 여겨진다. 노동법과 사회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착취당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환상 소유이며, 이 모든 천연자원들, 도축을 위한 동물들 위에 자본주의가 세워진다.”

이렇게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여성들의 파업까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포착한다.

그러면서 에바 폰 레데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 하나로 공동체를 강조한다. 공동체만이 고립된 개인들이 느끼는 처절한 불안과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를 현실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 관계는 그 범위와 상관없이 연대에 기반한 분리를 허용해야 한다. 인정받고 싶지 않지만 단순히 충족되고 싶은 욕구, 갖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빚지고 싶지 않은 욕구도 있을 수 있다. 공동의 쇼핑 목록에는 없지만, 혼자 슈퍼마켓에 갈 때 직접 사 들고 오는 양주나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

“우리는 지금의 감시 자본주의가 부여하는 것보다 더 많은 후퇴와 안정, 그리고 무한한 익명성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아름답게 표현한 것처럼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만 고립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새로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더 큰 연결성이 필요하다.”

에바 폰 레데커 우리가 잘못된 세상을 만들었던 것처럼, 다르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이 어떻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우리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계속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손으로, 다르게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