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겸 전문사주임교수인 채수정 명창이 민속원에서 《채수정의 적벽가 톺아보기: 박송희제적벽가창본집》(2024, 520쪽)을 발간했다.

판소리 <적벽가>는 작사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여타의 판소리와는 다르게 원말 명초 나관중(1330년? ~ 1400년)이 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내용 중 ‘적벽대전’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소리이다. 그러나 판소리 ‘적벽가’는 나관중의 원전 내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판소리라는 예술로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 애환과 해학을 담은 대목들을 추가함으로써 원전의 예술적 가치를 높인 사례로 꼽힌다.

채수정 지음 '채수정의적벽가톺아보기' 앞뒤 표지. 이미지 민속원
채수정 지음 '채수정의적벽가톺아보기' 앞뒤 표지. 이미지 민속원

오늘날 전승되어 연행되는 판소리〈적벽가〉에는 박동실제, 정응민제, 유성준제, 송만갑제, 김연수제, 조학진제 등의 유파가 있다. 이 가운데 채수정 명창은 <박봉술제 적벽가>를 이었다. 이는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을 거쳐 박봉술-박송희에 이른 유파로 힘 있고 꿋꿋한 동편소리이다. 박송희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였던 박봉술 명창에게 이 동편제 계열의 소리를 전수받았다.

채수정 명창은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였던 박송희 명창(1927-2017)을 30여 년간 스승으로 모시며 <흥보가>와 <적벽가> <춘향가> <숙영낭자가> 등을 익혔다. 이후 미국·일본·영국·프랑스·브라질 등 국내외에서 <흥보가>와 <적벽가>를 여러 차례 완창하였다.

하지만 다른 판소리와 비교해 <적벽가>는 자주 연행되지 않는다. 소리의 해석과 성음 등 그 표현이 어렵고 한문투의 가사가 많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채수정 명창은 《채수정의 적벽가 톺아보기: 박송희제적벽가창본집》에서 여전히 연행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적벽가>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입니다. 여러 장면들이 종횡무진하다 보니 긴박감이 넘치는데, 이런 점이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과도 잘 맞는다고 봅니다. 우리는 외국에서 들어온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일에 서툰 부분이 있습니다. 적벽가가 잘 불리지 않는 이유 중 음악이나 사설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중국 이야기인데 뭘 우리가 해!’ 하는 창자들의 좁은 안목도 한몫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전쟁터에서 만나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전략과 전술,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선택들이 어디 중국뿐만의 이야기겠습니까. 비록 이 이야기가 중국을 배경으로 중국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을지라도, 몇 시간 동안 《삼국지》의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채수정의 적벽가 톺아보기: 박송희제적벽가창본집》은 도원결의에서부터 삼고초려, 장판교 대전, 조조 호기, 군사 설움대목, 주유 동남풍 기원, 조자룡 활쏘기, 적벽화전, 새타령, 조조 패주, 군사 점고, 관운장 조조 살려주는 대목 총 35개로 구성하였다. 각 대목마다 악보와 가사에 설명을 붙이고, 이에 더해 책 앞 부분에 ‘적벽가 톺아보기 Q & A’를 두어 판소리 <적벽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채수정의 적벽가 톺아보기》는 <적벽가>를 연구하려는 이나 본격적으로 배우려는 이에게 꼭 필요한 학습의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또한 책 뒷부분에는 ‘<적벽가>와 박송희 선생의 소리 인생’를 두어 스승인 박송희 명창의 업적을 소개하였다. 이를 통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빛낸 예인이 남긴 예술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