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윌킨스 라이언 지음 '호구의 심리학'. 이미지 한문화
테스 윌킨스 라이언 지음 '호구의 심리학'. 이미지 한문화

미국의 한 쇼핑몰 푸드 코트에 낯선 표지판이 내걸렸다. 

“1달러를 그냥 드립니다.”

넥타이를 맨 젊은이 몇 명이 테이블을 하나 펼쳐 놓고 ‘공짜로 돈을 준다’고 했다. 이들은 테이블에 다가와 돈을 달라고 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나눠주었다. 몇 사람이나 돈을 받아갔을까? 놀랍게도 90퍼센트 넘는 사람이 테이블을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는 지급 금액을 50달러까지 높였지만, 그때도 테이블에 다가와서 정말 돈을 주는지 묻는 사람은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정말 돈을 주는 게 맞는지 확인만 하면 되는데, 왜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쳤을까? 이는 대학 심리학자들이 한 ‘공짜로 돈을 드립니다’ 실험이었다.

테스 윌킨슨 라이어 지음 《호구의 심리학》(김하린 옮김, 한문화 간)에서는 앞의 실험에서 많은 사람이 그냥 지나친 이유로 ‘두려움’을 들었다. “우리는 위험을 감수했다가 혹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혹시 모를 이익을 포기할 만큼 끔직하다.”

《호구의 심리학》은 이러한 두려움, 호구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주제로 한다. 우리가 속고 속일 때 작용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는 한편, 개인의 자아와 사회 질서의 측면에서 ‘무엇을 가리켜 사기라 하고, 누구를 호구라 부르는가?’하는 문화적 동기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무엇이 속임수인지 그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속임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영향력이 왜 그렇게도 강력한지 심리학적으로 밝힌다. 또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를 통해 ‘속임수에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하여 호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면 개인이 어떻게 반응하고 사회에는 어떤 갈등과 편견이 나타나는지 예측 가능한 행동 패턴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해야 호구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호구의 심리학》은 사기와 사기에 당하는 호구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사회적 권력과 도덕적 주체성을 다룬다. 호구 프레임에는 계층 구조를 위협하는 기능이 있다. 또 사람들이 어떻게든 그런 위협을 잠재움으로써 기존의 계층 구조를 지키려고 반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호구 공포증은 쉽게 촉발되고 나면 무시하기도 어려우므로 사람들의 인지 과정과 사회적 협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단지 손해를 걱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혹여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을 잘못 믿는 호구가 되지 않을까 가장 두려워한다. 저자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인간은 호구가 될지 모르는 위험에 처하면 기존의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공격을 저지하고자 맞받아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겁에 질린 호구가 투쟁이 아닌 도피 혹은 회피로 대응할 때다. 도피나 회피는 맞서 싸우는 것보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나치게 겁에 질리고 회의주의에 빠진 나머지 누군가를 믿지 못하거나 무언가를 섣불리 시도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는 마찬가지다. 호구가 될까 두려워서 어떤 일에 발을 들이지 않고 물러난다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고, 협력하기를 멈출 수도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너그러이 베풀던 친사회적 욕조차 억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호구 잡힐까 불안한 마음에 후퇴하려는 경향은 의료 보험, 복지, 이민 정책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

정치계에서도 호구 공포증을 이용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적 실험을 자행했는데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자기 생각처럼 다른 많은 이들도 호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으리라 판단하고, 이런 두려움을 활용해 상대를 치명적으로 압박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트럼프는 모든 상황에 호구 프레임을 갖다 씌웠다.

호구 공포증에 빠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호구 공포증에 빠지면 사람들은 사회적 차원에서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거나 시민으로서 마땅히 협력해야 할 때도 이를 거부한다. 호구 공포증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나 협력에 대한 우리의 선호를 왜곡한다. 호구 공포증이 협력을 방해하고, 투자를 막는다. 또한 타협과 협상을 방해한다. 호구 공포증이 인종차별, 성차별을 낳는다.

호구 공포증에서 벗어나면 가장 쉬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선택지를 조사하고 계산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이루려는 목표가 무엇이고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엇인지 적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심 대신 목표를 우선시하라는 것이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호구의 심리학》은  "호구 역학을 알아보는 능력을 통해 우리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은 무엇인지, 의미 있는 인간관계는  무엇인지, 내 것과 남과 나눌 때는 언제이고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해야 할 때는 언제인지 판단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를 통해 호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당당하고 진정성 있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