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Beauvoir, 1908-1986)가 출간하여 대성공을 거둔 《초대받은 여자 L'Invitée》는 작가의 첫 장편 소설로 갑자기 등장한 젊은 여자로 인해 평생 동지이며 연인이던 관계가 미묘하게 파괴되어 가며 겪는 실존의 문제를 다룬다. 이 소설 《초대받은 여자》(강초롱 옮김, 2024)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시몬 드 보부와르 '초대받은 여자'1, 2 입체 세트. 이미지 민음사
시몬 드 보부와르 '초대받은 여자'1, 2 입체 세트. 이미지 민음사

이 작품은 실험적인 계약 결혼, 작가 자신과 장 폴 사르트르, 제자 올가 코사키에비치를 둘러싸고 빚어진 삼각관계를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그려 낸, 일종의 실화 소설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주인공 프랑수아즈가 오랜 연인인 피에르와 그가 애정을 품게 된 그자비에르 라는 젊은 여인과의 삼각관계 속에서 극단적인 심리적 갈등과 존재적 위기감을 경험한 끝에 크자비에르를 살해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오직 실화(삼각연애의 진상)에 입각해서 《초대받은 여자》를 독해한다면 이 작품이 지닌 깊이를 자칫 놓칠 수 있다. 보부아르 스스로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은 다양한 개별적 사례를 구현하는 등장인물의 힘을 빌려 실존에 대한 추상적 사유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빚어낸 ‘형이상학적 소설(roman métaphysique)’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초대받은 여자》의 세 주인공(프랑수아즈-보부아르, 피에르-사르트르, 그자비에르-올가 코사키에비치)과 그들을 관찰하는 주변 인물들(피에르의 동생 엘리자베트, 프랑수아즈의 제자 제르베르)은 보편적 실존 상황을 대변하는 구체적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전쟁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프랑스 파리, 희곡 작가 프랑수아즈는 명망 높은 연극배우 피에르와 동료보다 친밀하고 연인보다 자유로운 관계를 맺고 있다. 스스로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프랑수아즈는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피에르와 함께 생활하며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할 뿐 아니라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사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런 목적의식도, 의욕도 없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불투명한 신비를 간직한 소녀, 그자비에르가 나타난다. 프랑수아즈는 무슨 일이든 자기 뜻대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무기력한 그자비에르에게 더 넓은 세상과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애쓴다. 그러나 프랑수아즈가 초대한 그자비에르는 그의 의도와 예상을 한참 뛰어넘으며, 차츰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결국 ‘고집스러운 의지’인 그자비에르가 프랑수아즈와 피에르의 사이를 더욱 깊게 파고들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뜻밖의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초대받은 여자'1. 표지. 이미지 민음사
'초대받은 여자'1. 표지. 이미지 민음사

이 작품은 1943년, 실존주의의 경전이자 20세기 최대의 철학적 성취로 평가받는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와 같은 해에 발표되었다. 두 작가가 삶과 사상을 공유하며 서로의 초고를 읽어주는 사이였던 만큼 《초대받은 여자》에서, “타자는 지옥이다”로 집약되는 초기 사르트르의 타자(他者) 이론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보부아르는 《초대받은 여자》를 시작하기에 앞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인용한 “모든 의식은 저마다 다른 의식의 죽음을 좇는다.”라는 제사(題詞)를 굵게 새겨두었다. 헤겔과 사르트르의 철학 속의 타자는, ‘대자존재(對自存在)’이며 ‘대타존재(對他存在)’인 나의 실존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보부아르가 다종다양한 실존 상황 중 프랑수아즈의 사례를 통해 특히나 들려주고자 한 바는, 바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충돌과 갈등이다. 예컨대 프랑수아즈와 그자비에르 그리고 피에르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은 통속적인 치정 사건을 넘어, 별개의 자유로운 의식들이 주체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는 숨 막히는 존재론적 투쟁을 형상화한다. 

《초대받은 여자》의 기본 축을 이루는 두 인물, 여류작가 프랑수아즈와 연극배우 겸 무대 감독 피에르는 서로에 대한 완벽한 자유를 보장하고 구속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신뢰와 동지애로 뭉친 연인이다. 기본적으로 (보부아르 자신을 반영한) 프랑수아즈는 유아론(唯我論)적 환상에 한껏 취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프랑수아즈는 피에르를 우월적 존재로 인식하며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와의 사랑은 그녀의 삶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기재가 되어,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녀의 삶과 사고가 분명해지고, 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녀는 자기 삶의 “모든 순간을 명료하고 세련되고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서 되돌려 주는”, 완전한 진실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존재로서 피에르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녀는 세상에 자신과 피에르 외에도 수많은 주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데, 이는 곧 자기가 주인으로 군림할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랑수아즈는 타인의 주체성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타인을 자기 세계에 속한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소유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프랑수아즈는 그자비에르를 처음 ‘초대했을’ 때,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초대받은’ 그자비에르는 단지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상태에 머물지 않고 프랑수아즈의 세계에 봉합할 수 없는 치명적인 균열을 일으킨다. 프랑수아즈는 고집스레 자신의 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자비에르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낯선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시몬 드 보부와르 '초대받은 여자'2. 표지. 이미지 민음사
시몬 드 보부와르 '초대받은 여자'2. 표지. 이미지 민음사

 

프랑수아즈를 뒤덮은 불안은 결국 ‘세계-내-존재(l’être-au-le monde)’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 존재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대상화’ 경험이 야기하는 감정이다. 이는 곧 기만적 환상에 빠져 있던 한 인간이 애매성이라는 실존의 진실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실존적 불안이다. 프랑수아즈가 마주하는 그자비에르의 공포스러운 시선, 그 굳건한 현존은, 일방적으로 타인을 소유하고 지배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초대받은 여자》는 삼각관계라는 자극적인 외피를 뒤집어쓴 채 의식인 동시에 육체이고, 의식의 주체이며, 타인의 의식이 지향하는 대상이기도 한,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향해 치닫는 인간 존재의 특성을 적나라하게 규명해 낸다.

보부아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같은 인간 존재의 ‘비결정성’을 ‘애매성(l’ambiguïté)’이라 칭했다. 또 주체로 존재하는 ‘나’를 객체로 탈바꿈시켜 주체와 객체, 둘 중 그 무엇에도 온전히 일치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하는 타인의 존재야말로 실존의 애매성을 야기하는 결정적 요인이자, 나의 자유에 제한을 가하는 주된 방해물이라 보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이러한 실존 조건은 필연적으로 나와 타인의 자유가 서로 충돌하도록 하므로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끔 우리를 이끈다. 바야흐로 보부아르는 (스스로 체험한)《초대받은 여자》속 프랑수아즈와 그자비에르 그리고 피에르가 맞닥뜨리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실존의 애매성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독려하는 사상의 독창적 청사진을 명확히 제시한다. 보부아르의 실존주의적 윤리, 즉 “애매성의 윤리(une morale de l’ambiguïté)”는 바로 《초대받은 여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초대받은 여자》는 이후의 보부아르의 철학, 즉 나-타자의 상호의존적 관계, 개별적 상황이라는 존재 인식과 확립의 필수 조건, 나와 타자의 상충적 자유의 도덕적 의미를 근간으로 한 ‘상호성’, ‘상호주체성’, 절대적 자유가 아닌 ‘상황 속에서의 자유’ 등의 전개와 발전의 시작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