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이다! 윷” “도 나와라! 도”

네 개의 윷가락이 젖혀지고 엎어지는 형태에 따라 남녀노소가 열광하던 전통놀이 ‘윷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주로 놀던 전통놀이 윷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되었다. 윷놀이하는 시민들 모습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사진 문화재청]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주로 놀던 전통놀이 윷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되었다. 윷놀이하는 시민들 모습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지난 26일 ‘윷놀이’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했다. 약 30일간 예고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여부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윷놀이는 주로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가족, 친척, 마을 단위로 즐기던 전통놀이였으나 단오, 추석 등 각종 명절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자리면 어김없이 등장해 지속되어왔다. 양편으로 나뉘어 윷가락을 던져 엎어지고 젖혀진 상태에 따라 윷판의 모든 말을 목적지에 먼저 도달하면 이긴다.

지역마다 윷가락도 다양하다. (위) 강원도 강릉시 윷가락, (아래 왼쪽) 강원도 삼척시 종지윷, (아래 오른쪽) 경남 남해군 삼동면 종지윷. [사진 국림민속박물관, 문화재청]
지역마다 윷가락도 다양하다. (위) 강원도 강릉시 윷가락, (아래 왼쪽) 강원도 삼척시 종지윷, (아래 오른쪽) 경남 남해군 삼동면 종지윷. [사진 국림민속박물관, 문화재청]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마을공동체가 와해되는 사회변화에도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 단절 없이 지속되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담은 대표적인 전통놀이로 자리매김했다.

‘윷’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문헌에서 윷을 직접 나타내는 용어는 발견하지 못했으나,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 그 사위로 승부를 가르는 백제시대 놀이인 ‘저포(樗蒲)’와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 혼용해 지칭하기도 했다.

조선 초에 윷놀이를 가르키는 ‘사희(柶戲)’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조선 중‧후기에는 ‘척사(擲柶)’라는 용어가 나타나 현재까지 널리 사용된다. 지금도 윷놀이 대회를 ‘척사대회’라고 칭한다.

윷놀이는 우리 민족의 우주관과 천문관을 기반으로 음양, 천체의 별자리 28수 등 형식의 완결성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이 윷놀이에 주목해 깊이 있는 연구를 했다. 김문표(1568~1608)는 윷판의 상징과 말의 움직임을 연구해 《중경지》에 ‘사도설(柶圖設)’을 기술했다.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사희변증설(柶戲辨證說)’을 주장했다. 아울러 심익운(1734~?)은 《강천각소하록(江天閣銷夏錄)》 내 ‘사희경(柶戲經)’에서 윷가락․윷판은 물론 놀이법까지 자세히 기술했다. 다양한 역사문헌을 통해 윷놀이의 학술성이 분명하고 연구가치가 무궁무진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 윷판과 윤목.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한글 윷판과 윤목.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또한, 놀이 방식이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변형이 이루어져 다이내믹한 전개가 가능하다. 서양에도 윷놀이와 비슷한 보드게임이 있으나 놀이도구와 놀이판, 진행방식 면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현재도 마을공동체가 중심이 된 척사대회를 개최하는 등 지속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다양한 전승 활성화가 가능하다. 운수에 기대는 운놀이라는 특성과 함께 경우의 수(끗수)를 활용하는 가변성의 특성, 직관적 놀이 구성으로 배우기 쉽고 주변 상황에 맞게 열린 놀이라는 특성을 가져 미래에도 활발하게 전승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제강점기 윷놀이대회 초청장. [사진 영주소수박물관]
일제강점기 윷놀이대회 초청장. [사진 영주소수박물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일한 무라야마 지준(1891~1968)은 “윷은 조선만의 독특한 유희로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되었다. 대중적인데다가 간소하고 명쾌하며 내기가 강렬해서 실로 조선 민족의 성질에 적합한 민중 오락”이라 기록했다.

한편, 윷가락도 가락윷, 종지윷, 밤윷 등 지역적 분포가 다양하고, 윷판 없이 말로만 노는 건궁윷놀이 등 윷판의 다양한 형태와 놀이방법의 변형 등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여지가 높다.

그중에는 시각장애인도 즐긴 ‘맹인윷놀이’도 전승되었다. 동그란 통 안에 10개의 윷가락을 넣는데 젓가락처럼 가는 윷 끝에 각기 다른 모양의 홈을 파서 1~10까지 숫자를 나타냈다. 윷을 노는 사람이 통에서 2번 뽑아 표시된 눈금 수를 더해 끝자리가 1 또는 6이면 ‘도(1칸 이동)’로 간주하고, 2 또는 7일 경우 ‘개(2칸 이동)’... 5일 경우 ‘모(5칸 이동)’삼는 방식이었다. 임채우 윷문화연구소장은 “맹인 윷놀이는 우리의 휴머니즘에 기초한 한민족의 창조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맹인용 윷.[사진 대구점자출판박물관 전시]
맹인용 윷.[사진 대구점자출판박물관 전시]

문화재청은 윷놀이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사유로 첫째, 오래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내에서 전승되는 점, 둘째,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관련 역사적 기록이 풍부하게 확인되는 점, 셋째, 윷판의 형성과 윷가락 사위를 나타내는 ‘도, 개, 걸, 윷, 모’에 대한 상징성 등 학술 연구주제로 활용도가 높은 점, 넷째, 가족 및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단절없이 전승이 지속‧유지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윷놀이는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는 문화라는 점에서 아리랑, 씨름, 해녀, 김치 담그기, 온돌문화, 제염, 떡 만들기, 한복생활 등과 마찬가지로 특정 보유자와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