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과 정월 대보름을 비롯해 단오, 추석 등 우리 명절에 삼삼오오 가족과 친지끼리, 마을과 마을 간 윷놀이 한 판이 벌어지면 참가자는 물론 구경꾼까지도 어느새 경기에 몰입해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한국윷문화연구소 임채우 소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한국윷문화연구소 임채우 소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장쾌한 전통놀이인 윷놀이가 지난 9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예고 되었다. 한국윷놀이연구소 임채우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는 “1만 년 역사를 지닌 윷놀이의 묘미는 단순성과 강렬한 흥미성, 그리고 건강성”이라고 밝혔다.

지난 35년간 선사시대 암각화 윷판 연구부터 한국적인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맹인 윷놀이 발굴까지 우리 윷놀이 연구에 매진해 온 임채우 소장을 만나 윷놀이에 담긴 숨은 역사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 우리 윷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연구자로서 소감은?
- 늦었지만 매우 잘된 일입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2014년 1월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어요. 우리의 세계적인 문화유산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중국보다도 10년 가까이 뒤처진 것이 안타까울 뿐이죠. 자칫하면 우리의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유산으로 알려질 수도 있었으니까요.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발판으로 앞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전 세계에 우리의 건강한 윷문화를 널리 알려 나가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마다 다양한 윷 종류가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강원도 강릉시 윷가락, 윷놀이 세트, 강원도 삼척시 종지윷과 윷말, 경남 남해군 삼동면 종지윷.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지역마다 다양한 윷 종류가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강원도 강릉시 윷가락, 윷놀이 세트, 강원도 삼척시 종지윷과 윷말, 경남 남해군 삼동면 종지윷.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윷놀이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 제 전공은 주역철학입니다. 한국 주역철학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다가 윷판의 수리철학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죠. 근현대 주역학의 대가이신 야산 이달(也山 李達, 1889-1958) 선생께서도 윷에 관해 여러 언급을 남기셨어요. 제가 야산 역학을 공부하면서 중국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윷놀이 연구를 우리 고유사상의 근원 문제로까지 확장하여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 윷점을 쳐 왜군을 물리치는 데 활용했다

조선에도 윷놀이를 연구한 학자들이 많았다고.
- 많다 적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이라서, 비교의 대상이 없이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조선 시대는 우리 고유문화나 사상보다는 중국을 더 높이 평가한 시대라 같은 놀이도구인 바둑이나 장기에 비하면 많았다고 하기는 어렵죠. 오히려 사대부 집안에서는 윷놀이는 부녀자와 상민들의 천한 놀이라고 해서 금기시되는 분위기였으니, 이를 연구한 학자가 많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의 윷놀이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연구한 학자들이 계셨죠. 우선 윷판에 천문역법을 결합한 역학적 연구성과를 남긴 김문표(1568∼1608), 그 뒤에는 사희경(柶戱經, 윷놀이를 찬양한 시)을 쓴 심익운(1734∼?), 그리고 윷점에 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유득공(1749-?) 등이 조선시대 윷놀이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들입니다.

특히, 나라의 명운이 달린 전장에서 윷점을 쳐서 왜군을 물리치시는 데 활용하신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가장 윷을 사랑하고 윷을 가장 잘 활용하신 선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한말에는 외세의 침탈을 받으면서 윷놀이를 넘어서 윷판의 수리철학을 기반으로 전통시대의 쇠퇴와 새 시대의 도래 문제로 관심을 전환하기도 했죠. 윷판에 담긴 역학적 이치를 연구한 하상역(1852?-1916), 그리고 근현대 우리 민족의 격동기를 윷판에 담긴 역학적 원리로 해석한 야산 이달(1889-1958) 선생 등이 조선 시대에 우리 윷놀이를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라고 할 수 있죠.

조선시대 사용된 윷점 도구들.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조선시대 사용된 윷점 도구들.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이순신 장군께서 윷점을 치셨다는 내용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척자점(擲字占·윷 점)을 친 예가 14차례가 등장하죠. 그중에는 아래와 같이 왜적과 전쟁하면서 작전을 구상하면서 친 점례가 2회 보입니다.

“1594년 9월 28일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적을 치는 일로 길흉을 점쳤더니 처음에는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如弓得箭 여궁득전)가 나오고, 다시 점을 쳤더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괘(如山不動 여산부동)가 나왔다. 바람이 불순해서 진을 흉도 안쪽 바다로 옮겨서 머물렀다.

1596년 1월 10일
이른 아침에 왜적이 다시 나타날지를 점치자, 수레의 양쪽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는 점괘(如車無輪 여거무론)가 나왔다. 다시 점치니 군왕을 뵙는 것과 같다는 점괘(如見君王 여견군왕)가 나왔다. 모두 기쁘고 길한 괘였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마도 위급한 전쟁통에 윷점을 애용해서 왜적을 물리치시는데 활용하셨을 텐데, 경황이 없는 전쟁통 속에서 일기에 누락된 부분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죠.

1만 년 전 암각화에도 나타난 윷판, 어로시대 삶의 기준이 되는 천문관측 기구, 중국 중세시대 하도낙서와 직접적인 관련 없어

충북 영동 영국사 인근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 윷판.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충북 영동 영국사 인근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 윷판.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윷판에 우리 민족의 우주관, 천문관이 담겨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 윷판은 1만 년 전 신석기 후기에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는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과 천문관을 요약한 선사시대 캘린더이자, 한반도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적 도판이라고 할 수 있죠. 29개의 점은 달의 주기적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 윷판에는 한 달의 날짜를 알려주는 달력의 역할뿐 아니라, 매일 저녁 달이 뜨는 방위와 시간들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어 이 윷판을 달과 비교해보면 그날의 음력 날짜와 더불어 시간까지 알 수 있는 천문의기(天文儀器)였습니다.

또한, 윷판 암각화는 바닷가나 강가의 바위 언덕 위에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달의 주기에 따른 밀물과 썰물, 특히 풍어기(豐漁期)인 사리와 조금을 알아내는 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로시대에 삶의 기준이 되는 천문관측 도구인 셈이죠.

여기에 나중에 윷가락이 더해져서, 놀이판으로 변화한 것이지요. 말을 네 개 쓰는 것은 시간적으로 한 해가 네 계절로 이뤄진 것을 의미하며, 공간적으로는 동서남북의 네 방위와 관련이 됩니다.

*사리-만조와 간조의 수위 차가 높고 조류 흐름이 가장 빠른 때
*조금-만조와 간조 수위 차이가 가장 작아서 물의 흐름이 약할 때

달 윷판. 임채우 소장은
달 윷판. 임채우 소장은 "윷판은 한민족의 우주관과 천문관을 요약한 선사시대 캘린더이자 달의 주기에 따른 밀물과 썰물을 예측하기 위한 어로시대의 천문관측 도구"라고 했다.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혹자는 윷판과 관련해 하도낙서(河圖洛書)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합니다.
- 윷판은 하도(河圖) 낙서(洛書)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본다고 해도 윷판은 암각화 형태에서부터 그 초기형태가 발견되는 1만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죠. 반면에 하도낙서는 그 명칭은 오래되었으나, 도판 자체는 주희(朱熹, 1130∼1200)의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역사가 1천 년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고시대 윷판을 중국의 중세시대 하도낙서와 연결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한말 하상역이란 분은 하도(河圖) 낙서(洛書)를 이은 새로운 시대의 원리가 윷판에 있다고 해서 이를 후천시대의 역학을 상징하는 유판도(儒板圖)라고 부르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