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윷문화연구소 임채우 소장은 우리 윷놀이가 세계인이 공감할만한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윷놀이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본 서양인이 있죠. 1895년 《한국의 놀이(Korean games with notes on the corresponding games of China and Japan, 1895)》라는 책을 펴낸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은 ‘윷놀이는 심오한 우주관과 철학을 가진 놀이이자, 전 세계 보드게임의 원형’이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라고 사례를 들었다. 임채우 소장은 윷놀이에 관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현대의 맹인용 윷 셋트.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현대의 맹인용 윷 셋트.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맹인용 윷. [사진 대구점자출판박물관]
맹인용 윷. [사진 대구점자출판박물관]

우리 윷놀이 중 맹인윷놀이도 연구하셨는데.
- 윷놀이의 종류와 역사를 추적하다가 맹인윷놀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맹인윷의 존재 자체는 민속박물관 자료를 검색하면서 알게 되었고, 나중에 전국을 다니면서 자료조사를 하다가 조선 시대 사용된 실물을 확인하게 되었죠. 윷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시각장애인까지도 함께 윷놀이를 놀 수 있도록 이런 윷도구를 개발해냈을까요?

맹인윷놀이의 존재는 우리가 얼마나 휴머니즘이 넘치며 지혜로운 민족이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시대 이래로 현대에도 시각장애인 단체 등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데, 저는 현대에 만든 맹인윷뿐 아니라 조선 시대에 백동과 대나무로 만든 맹인윷도 수집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시각장애인도 즐기도록 맹인윷 만들어, 한국인의 휴머니즘과 창의성

윷놀이의 가장 큰 묘미는 무엇일지.
- 무엇보다도 ‘단순성’입니다. 현대의 놀이도구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놀이이기 때문에 놀이방법이 단순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세계의 4대 놀이라고 할 수 있는 바둑이나 장기 혹은 체스나 트럼프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외래놀이들은 진입장벽이 매우 높아서 놀이를 익히려면 몇 달씩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윷놀이는 일단 누구나 한 판만 옆에서 구경하면 바로 다음 판부터 선수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또, 도구를 마련하는 것도 매우 간단하죠.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만 꺾어서 절반씩 가르면 윷 한 짝이 마련되고, 마당에다 숯검댕이로 쓱쓱 판을 그린 다음, 사금파리 몇 개 주우면 윷말 한 벌이 마련됩니다. 반면, 바둑이나 장기, 체스, 트럼프 한 벌 만들려면 아마도 며칠 혹은 몇 달이 걸려야 하겠죠?

그런데 윷놓이는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어떤 놀이보다 뛰어난 재미를 가지고 있지요. 바로 ‘강렬한 흥미성’입니다. 윷놀이처럼 재미있는 놀이는 없죠. 설날, 그 한겨울에 집안 식구끼리 제대로 한판 붙고 나면 더워서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쐬어야 할 정도입니다. 제가 전국대회 심판을 여러 번 보았는데, 결승전에 가면 그 열기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열기 속에서 기적 같은 플레이가 나오고 연달아 큰 사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신명’을 실감하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한다면 ‘건강성’입니다. 이는 요즘 젊은이들의 게임중독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죠. 어린 학생들이 게임중독에 빠져서 어두컴컴한 골방에 혼자 쭈그려 앉아 며칠씩 밤을 새우며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는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고질병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윷은 건강하죠. 윷놀이는 온 식구가 모여서 앉았다 일어섰다 몸을 움직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면서 한판 제대로 놀면 몸과 마음이 정화됩니다. 가족 친지 간의 정도 깊어지지요.

바둑·장기·체스를 두는 모습이 점잖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육체는 고목나무처럼 굳어있죠. 시집갔다가 친정에 다니러 온 딸이 오랜만에 윷 노는 모습을 보며 ‘방방 뛰며 노는 네 모습이 선녀같구나’라고 노래한 안동지역의 가사가 있는데, 딸은 아마 시집살이 십년 묵은 체증이 윷놀이 한 판에 다 풀어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것이 우리의 윷놀이입니다.

윷놀이는 설과 정월대보름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단오, 추석 등 각종 명절에 마을을 들썩이게 하던 장쾌한 놀이였다.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윷놀이 모습. [사진 문화재청]
윷놀이는 설과 정월대보름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단오, 추석 등 각종 명절에 마을을 들썩이게 하던 장쾌한 놀이였다.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윷놀이 모습. [사진 문화재청]

윷놀이의 묘미는 단순성, 강렬한 흥미성, 건강성

글로벌 놀이문화로서 윷놀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지.
- 사실 윷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민속놀이입니다. 특히, 아메리카대륙에는 서부해안을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윷놀이가 전파되어서 행해지고 있었죠.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우리와 똑같지는 않지만, 윷가락을 던져서 끗수를 정하고, 말판에 말을 움직여서 승부를 내는 놀이라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동일합니다.

100여 년 전 스튜어트 컬린이란 미국의 유명한 민속학자도 조선의 윷과 인디언의 민속놀이의 동일성을 언급한 바 있죠.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원주민들은 이 놀이를 ‘윷’이라고 부르며, ‘모나와라’라고 외치며 윷가락을 던진다고 하니, 우리의 윷놀이가 미주대륙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해 ‘오징어게임’을 통해 전 세계에서 우리의 놀이 문화가 알려지고 즐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작될 ‘오징어게임’ 시즌 2나 3에 윷놀이가 소개된다면.
-‘오징어게임’과 같은 창의적인 영화의 콘텐츠로 윷놀이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윷놀이가 글로벌 놀이문화로 가능성과 경쟁력이 크다고 봅니다.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가 앞서 언급한 바둑, 장기, 체스 등의 세계 4대 놀이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놀이로 자리매김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윷놀이에 더불어 역사의식을 잘 융합한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인에게 어필하는 가장 세계적인 대중예술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국에 윷판 암각화 방치, 전수조사와 보호조치 시급해,
윷판 암각화 연구·윷문화 총서 발간·윷문화박물관 건립 추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도움이 되길”

윷놀이에 관해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무엇인지.
- 윷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지는 30여 년이 지났고, 윷에 관한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지는 20년, 한국윷문화연구소를 시작한 지는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 있는 많은 자료도 보았고, 관련 자료도 상당수 수집을 했죠.

우선, 앞으로 우리 윷놀이의 근원인 윷판 암각화에 대한 연구를 더 하려고 합니다. 특히, 현재 윷판 암각화는 일부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심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전국의 체육공원과 위락시설 주차장 부지 등으로 파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빨리 전국의 윷판암각화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보호조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스튜어트 컬린이 우리의 윷에 관해 큰 애정을 갖고 많은 연구를 남겼습니다만,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윷판 암각화입니다. 만일 그가 이것을 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는 인디언 놀이를 중심으로 한국의 윷놀이를 이해한 민속학자였었지만, 윷판 암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윷놀이에 대한 또 다른 인류학의 대작을 남겼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윷판 암각화들. (위 왼쪽) 충남 서산 부석면 달천 윷판(73X73cm, 지름 70cm) (위 오른쪽) 충주관아 윷판. (아래) 황룡사지 출토 윷판.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윷판 암각화들. (위 왼쪽) 충남 서산 부석면 달천 윷판(73X73cm, 지름 70cm) (위 오른쪽) 충주관아 윷판. (아래) 황룡사지 출토 윷판. [사진 한국윷문화연구소]

둘째는 윷문화총서를 발간하고자 합니다. 저희 연구소가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만 가지고도 10권 정도의 윷문화총서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웇문화는 윷놀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순신 장군께서 왜적을 물리치시는데 활용하셨던 윷점이란 것도 있죠. 지금은 윷점이 잊혀진 놀이가 되어버렸지만,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의 민속문화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제가 지금까지 연구한 내용과 수집해온 자료들을 정리해서 후대에 남기려고 합니다.

셋째는 윷문화박물관 건립입니다. 20년 가까이 윷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이제는 상당한 분량이 되었죠. 윷과 관련한 우리의 민속문화 유물은 소박하면서도 참으로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후대에 남기는 작업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이는 설립과 운영 등 개인이 혼자 부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당국에서 발 벗고 나서면 좋겠지만, 아직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식있는 분들이 같이 참여해주신다면 우리의 민간문화를 세계 역사에 남기는 쾌거가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윷문화연구자로서 바람은 무엇인지.
- 우리 윷은 놀이의 원형일 뿐아니라 1만 년 전 하늘의 달의 주기적 변화를 관찰해서 풍요로운 어로(漁撈)를 얻고, 평온한 삶을 지키기 위한 캘린더로서.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명의 상징입니다. 이 윷판 암각화에서 윷놀이가 파생되었고, 주로 아메리카대륙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저는 놀이 뿐 아니라, 우리의 고대 문화·문명까지 확장해서 조사와 연구를 해나가고자 합니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윷은 영국의 스톤헨지를 능가하는 우리 고대문명의 상징으로서 앞으로 후손에게도 전해지고, 전 세계에 정당하게 평가되고 알려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