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신세계갤러리가 5월 12일 개막한 ‘환경의 날’ 기획전 〈우리가 만든, 그리고 사라지는〉展에 선보인 작품들은 하나 같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야생동물이 서식지를 잃고 멸종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 역시 멸종위기종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최근 광범위하고 빠르게 확산되는 이슈인 기후위기와 환경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획전이다. 인간이 만든 기준에 의해 피해받고, 사라지는 야생생물의 이야기를 이번 전시에 담았다. 5월 13일 전시장을 찾았다. 

김혜정, 먹는거야, 종이 위에 연필, 42x29.7cm. 2020.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김혜정, 먹는거야, 종이 위에 연필, 42x29.7cm. 2020.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생태계를 인간이 세운 기준으로 평가하고 재단하고 때로는 일부 보존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그 기준들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에게도 적합한 기준이었을까?

김혜정 작가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먹을 것이 사라지자 비닐을 먹는 백곰을 보여준다. 또한 여러 이유로 버려지는 반려동물부터 도시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거나 학대받는 야생동물까지, 지구상에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일러스트로도 만나 볼 수 있다.

“지구 위의 생명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은 연결을 방해하고 단절시킨다. 도시에서도 개와 고양이 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정작 반려동물과 관련된 산업의 폐해라든지 도시에 살고 있는 야생동식물의 생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일부 관심 있는 이들만의 고민인 것 같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을 겪으며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대했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 알게 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것들은 인간과 보이지 않는 강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의 고리를 보호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무이며 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전시자료)

장용선, Treasure Your Life, 강아지풀, LED디밍조명, SMPS, 아크릴박스, 나무좌대, 120x26x26cm, 2020.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장용선, Treasure Your Life, 강아지풀, LED디밍조명, SMPS, 아크릴박스, 나무좌대, 120x26x26cm, 2020.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장용선 작가는 강아지풀을 전시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강아지풀을 마치 박물관의 보물처럼 전시하였다. 또, 자연에서 수집한 강아지풀을 벽면에 걸고 나무의자에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도 한다. 도시 미관을 위해 뽑아낸 들풀과 뒤섞인 콘크리트 벽돌 위에서 그 강아지풀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자연을 선택, 배제, 훼손하고 있는가?

“도시 미관을 위해 심어진 후 목적에 의해 뽑히고 버려지는 녹지 식물의 사체를 도시를 상징하는 콘크리트와 함께 전시실 안에 병치하여 생(生)과 사(死)가 혼재된 현장, 그러나 어느 누구도 괘념치 않는 사건의 현장을 건조한 어조로 시각화한다. 전시장 안에 높은 들풀들은 도시 속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구조물의 비좁은 틈 사이로 뿌리내리며 생명을 영위하는 거추장스러운 관리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은 좁은 틈을 비집고 나와 생의 흔적을 남기고, 유약하나 질긴 생명력으로 지닌 미시적 존재로서 천천히 점멸을 반복하며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전시자료)

정현목, Still Beautiful, 캔에서 시들다,  Pigment Print, 120x85.7cm, 2019.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정현목, Still Beautiful, 캔에서 시들다, Pigment Print, 120x85.7cm, 2019.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정현목 작가는 꽃을 통해 현대사회 소비 양상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인간이 선택한 대표적인 소비재 중 하나인 꽃은 대량 생산되어 소비되고, 그 목적을 달성한 뒤 쉽게 버려진다. 이렇게 버려진 꽃과 일회용품의 조형적 연출을 찍은 사진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쉽게 상품화되고, 버려지는 현대 사회의 시스템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꽃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심미적 대상으로 다루어진 대표적인 소비재 중 하나이다. 현대 사회에서 꽃은 과거보다 더 대량으로 생산되어 소비되고 있다. 짧은 시간 만개한 꽃이 마침내 시들고 하면, 꽃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Still Beautiful>은 버려지는 시든 꽃과 일회용 공산품을 함께 연출한 사진 연작이다. 꽃과 함께 배치된 일회용품은 현대 사회의 풍족한 재화를 대표하는 새로운 바니타스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꽃과 함께 일회용품을 조형적으로 구성한 연출 사진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지닌 소비 양상의 문제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전시자료)

유지연, 푸들, Pigmentprint on whitevelvet, 42x29.7cm, 2022.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유지연, 푸들, Pigmentprint on whitevelvet, 42x29.7cm, 2022.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유지연 작가는 개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인 개는 같은 종 안에서도 정말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이토록 다양해진 것은 오랜 시간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개의 초상을 마주하면 마치 거울을 보듯 익숙한 눈빛과 표정을 느낄 수 있다.

“개의 생김새는 정말 다양하다. 실제로 같은 종에서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한 생명체는 드물다. 그렇다면 그들의 모습은 왜 이토록 다양해졌을까? 그건 이난이 그들에게서 다양한 모습을 원했기 때문이다. 개의 모습은 오랜 시간 우리의 바람과 욕망이 빚어낸 것들이다. 개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건 인간의 얼굴일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얼굴에 서린 어떤 감정과 욕망도 다 받아들이고서 이렇게나 다양한 얼굴과 표정으로 우리에게 화답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개의 초상을 그리며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어린 우리의 얼굴을. 그 눈빛, 표정 어디선가 본 듯도 하다.”(전시자료)

백은하, 마지막 삵, 2021, 천과 실, 아크릴물감, 50x60cm, 2021.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백은하, 마지막 삵, 2021, 천과 실, 아크릴물감, 50x60cm, 2021.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백은하 작가는 멸종위기종을 소환하여 그들에 좀더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바란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동물들의 희생을 동반하기도 한다. 급격히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은 쉽게 소멸하고, 소모되고, 소외되어 간다. 이 생명체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 더 알아가고 나아지길 바라며,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호소한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은 쉽게 소멸하고, 소모되고, 소외되어 간다. 우리 삶에서의 동물들은 철저히 도구화, 대상화 되어있고, 생명의 가치조차 인간에 의해 매겨진다. 마치 보호해야 하는 생명, 먹어도 되는 생명, 괴롭혀도 되는 생명이 따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비단 차에 치인 길고양이나 갈 곳 없는 북극곰뿐 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다움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는 오늘이다.”

윤기원, 수달, Digital print on Formax, 59.4x42cm, 2021.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윤기원, 수달, Digital print on Formax, 59.4x42cm, 2021. [사진=신세계갤러리 제공]

 

윤기원 작가는 멸종위기종 수달의 초상과 나란히 자신의 초상을 걸었다. 그 또한 ‘수달’과 다를 바 없는 멸종위기종임을 암시한다. 수달은 과거에는 전국에서 볼 수 있었으나 모피수(毛皮獸)로 남획하고 하천이 황폐화하면서 그 수가 줄었다. 1982년 11월 16일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하였고, 2012년 7월 27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하였다.

“‘내가 환경운동가가 될 수는 없지만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포스터를 그려 대중에게 환경보호의 경각심을 불러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여러 가지 자료를 찾다가 ‘멸종위기동물’이라는 카테고리까지 조사하게 되었고, ‘내 그림 스타일로 멸종위기동물을 그려서 그들을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그들 역시 지구에서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존재이면서, 같이 살아야 할 존재이지 않을까. 또한, 나 역시 ‘미술작가’로서 ‘멸종위기종’에 속하는 만큼 ‘멸조위기동물’의 카테고리에 함께하게 되었다.”(전시자료)

저마다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혜정, 백은하, 유지연, 윤기원, 장용선, 정현목 여섯 명의 작가는 인간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아닌 자연 속 모든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광주신세계갤러리의 〈우리가 만든 그리고 사라지는〉 전은 6월 20일까지 관람 할 수 있다.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