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얼마 전, 〈명절을 대비하라! 대선이 불 지른 세대와 진영 간의 갈등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카드뉴스를 보았다.

 

가족관계 전문가인 윌리엄 도허티 미네소타대 교수가 제안한 몇 가지 팁은 흥미롭다.

첫 번째는 과음하지 말라 이고, 두 번째는 비하와 으스댐 금지이다.

세 번째는 어떠한 경우에도 팩트 체크는 참으라는 것이고, 네 번째는 끼리끼리 놀아라. 

마지막 다섯 번째는 발전적 체념, 즉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빨리 포기하고 그 자리를 피하라는 조언이었다.

 

이미지출처 :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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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동안 못 보았던 가족이 만난다고 명절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경찰청 자료를 보면 명절 연휴기간 112에 접수되는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올해는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 한 번 발전적인 토론을 해볼까? 하면서 호기롭게 시작한 정치 이야기가 오고가는 술잔에 세대와 진영 갈등으로 번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외국에서도 파티의 분위기를 망치려면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화제로 꺼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종교적 정체성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토록 기분이 상하는 걸까?

우리는 보통 생각과 역사, 교육, 종교, 공동체 등의 성향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지도자가 곧 나의 정체성이라는 생각에 쉽게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렇게 정의하는 나의 정체성은 정말 '내' 가 맞을까?

 

미국의 영적 스승 중 한 사람인 아디야 샨티는 그의 저서 《가장 중요한 것》에서 20대 시절,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캠핑을 하던 중 만난 80대 노인과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하이킹 중 샨티는 흰회색 턱수염을 기른 노인이 야영 중인 것을 보았다

노령에 배낭을 짊어지고 하이킹을 한다는 것 자체에 깊은 인상을 받은 샨티는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노인은 샨티의 손목에 염주가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이냐고 물었고, 샨티는 "아, 이건 불교의 염주예요."라고 대답했다.

샨티가 말을 잇기도 전에 노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 붓다? 붓다는 바보였어!"

당시 샨티는 성직자를 준비하는 신실한 불교인이었기 때문에 늘 작은 염주를 애지중지하며 몸에 지녔다.

그런 그에게 붓다를 바보라고 하는 노인이라니!

 

만약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했다면 그는 무척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쾌한 노인의 태도 앞에 샨티는 어떠한 분노나 판단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 후로 2년이 지난 어느 날, 자전거를 수리하던 샨티는 손목에 있던 염주를 고정대에 걸려 떨어뜨리고 만다. 

염주 알이 우르르바닥에 쏟아지던 그 순간, 샨티는 정신이 멍해지면서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큰 웃음이 터져 나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 순간을 그의 영적 정체성이 무너진 순간이라고 고백한다.

 

그때 불현듯 산에서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노인이 붓다에 대해 했던 '말'이 아니라, 눈을 반짝이던 노인의 '태도'였다.

그때 샨티의 영적 정체성은 사라졌지만, 그가 불교 수행을 중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하던 것을 지속했고, 변한 것은 없었다.

단 하나, 그의 의식 안의 어떤 것이 좋은 의미로 부서졌다. 그것은 대단히 큰 변화였다.

 

그 일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따라 정체성을 찾는 것을 중단하는 법을 보여준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 일들로 인해 샨티는 자신도 모르게 '불교인'이라는 이름표 위에 '나'라는 의식과 자아감을 쌓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샨티의 경우는 불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의 종교는? 나의 정치적 성향은? 나의 학벌은? 나의 출신 지역은?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소속과 성향, 그리고 관점이 있고, 가족이나 직장에서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자신을 규정한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 쉽게 그것으로 자아감을 만든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소속, 관점, 정치적, 종교적 성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때문에 이것이 도전을 받을 때면 감정적으로 마치 나의 전 존재가 도전받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정치나 종교를 갖고 대화를 하게 되면 감정이 격해지기 쉬운 것이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여 만들어진 정체성을 과하게 보호하려고 하면 우리는 순간이 보여주려는 수많은 지혜를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면 반발하고, 방어하고, 저항하느라 온 힘을 쏟기 때문이다.

 

진짜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그런 사실을 빨리 간파하는 것이다.

그것을 빨리 알아차리면 그것으로 인해 감정이 격해지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저항할 필요가 있을까?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밀어낼 필요가 있을까?

삶에 저항할 때 나는 과연 어떤 자아감이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그렇게 집착하면 정말 나는 자유로워질까?

 

우리는 무엇을 움켜쥘 때마다 인식과 존재의 경험을 제한하게 된다.

내가 속한 집단과 삶에서 역할과 성향에 의해 정체성을 쌓아 올리는 것을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더 큰 자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체성이 규정하는 것이 결코 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이 보여주려는 것에 더 깨어있을 수 있다. 눈을 뜨고 기꺼이, 기꺼이 보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이번 설에는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족의 '마음'에 다가서 보자.

조금만 입장을 바꾸어 바라보면 그들의 모습 속에 내가 떡하니 들어있음을 보게 되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모두들 그저 강건하게 사랑하시라.

이미지출처: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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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정 체인지TV 브레인셀럽 책임PD

SBS, KBS시사교양국에서 10여 년 간 추적 사건과 사람들, 경찰24시, 병원24,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