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만세 항거가 일어난 지 103년이 되었다. 지난 30여 년 간 3.1절과 광복절, 개천절의 3대 국경일 행사를 대국민 축제로 발전시켜온 국학원에서는 올해 3.1절을 맞아 <국민이 주인인 나라, 깨어나라 大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라이브 행사를 주최한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미디어의 역할과 책임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2년 전부터 늘어난 온라인 행사의 9할은 영상미디어의 몫이다. 이번 3.1절 행사의 기획 연출 역시 내게 맡겨졌다.

늘 해오던 일이지만, 올해 3.1절의 무게는 남다르게 다가왔다.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을 먼저 내려놓고 차근차근 3.1절에 대한 자료와 그 안에 숨겨진 의미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103년 전 3월 1일, 마을과 장터에 격문이 붙고 독립선언서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기록에는 당시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 2백2만 여 명이 만세 항거에 동참했다고 한다.

서울과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원산 등 만세 항거는 순식간에 지방도시와 읍면까지 확대되었다. 멀리 중국의 간도와 러시아의 연해주, 미국의 필라델피아, 하와이 호놀룰루의 하늘에도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그 해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3개월 간 국내에서만 무려 1,542회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3.1절은 단 하루의 항거가 아니었다. 전국을 넘어 세계적인 항거였고, 식민지 최초의 독립투쟁이었다.

그때의 기록과 오래된 사진, 그리고 영화들을 살펴보았다. 그중에 유독 나의 마음을 끈 것은 2019년에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였다.

세 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에서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 열사와 여성들의 1년간의 투쟁을 담은 이 영화는 3.1절 행사를 기획하는데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이 영화가 나온 지는 벌써 3년이 지났지만, 고백하자면 영화가 개봉했을 때에도 나는 이 영화를 애써 외면했고, 아직도 이 영화를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다.

 

출처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출처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영화의 일부를 발췌해 영상 편집을 하고, 행사의 오프닝 원고를 쓰던 날이었다. 문장 중에 ‘비폭력 시위로 7천5백 명이 살해당하고, 4만7천 명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구절을 써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이렇게 고쳐 썼다.

‘비폭력 시위로 7천5백 명이 목숨을 잃고, 4만7천 명이 체포되었다’ 어쩐지 이 편이 좀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바라보던 동료 한 명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살해당했다는 게 진실 아닌가요? 목숨을 잃었다고 하면 시위를 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죽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있잖아요. 기록의 진실은 일본군의 총칼에 맞아 살해당한 사람의 숫자가 7천5백 명이라는 거잖아요.”

스치듯 지나가는 한마디였지만 내 가슴에서는 무언가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프닝 영상의 문구는 처음의 문장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해마다 2,600여 명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의 그날까지 10만여 명 가까이가 그곳에 수감되었고 열 명 중 아홉이 사상범으로 불린 독립 운동가였다고 하니 그 시절의 암담함이 느껴진다.

1919년 3개월간의 전국적인 만세 항거는 일제 강점기 내내 치열했던 항일 독립투쟁의 정신적인 토대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수백 수천 명의 독립군이 매일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

대한국민회,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 서로군정서, 대한독립단, 광복군 총영을 구성하여 일제 군경과 피어린 전투를 벌였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열 사람이 일어섰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전국의 독립군 수는 알 수가 없어. 왜인 줄 아냐?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

10대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남쪽의 제주도에서 북쪽의 백두산까지 나이와 지역을 막론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모든 분들이 바로 건국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던 우리 선조들의 독립 투쟁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도, 나 자신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는 무려 35년이라는 긴 세월이었다. 3.1 만세 항거가 일어나고도 26년 후에야 광복을 맞이했으니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진 속 무명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게 된다.

3.1만세 항거의 현장 자료에는 태극기를 들고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허름한 차림의 무리들 한편에 고급 코트를 입고 그 무리를 구경하는 이들도 있다.

103년 전, 일제강점기에 내가 살고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3.1절을 맞아 내 삶의 화두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선조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해방된 조국에 살고 있는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3월 1일 국학원 3.1절 기념행사에는 청년 예술단 천신무예단의 헌정 공연뿐 아니라, <풍류대장>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국악인이자 국학원 홍보대사 오단해 씨도 기념공연을 펼친다.

 

국학원에서 개최하는 3.1절 103주년 기념 행사는 3월 1일 오전 11시 국학원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방송 된다
국학원에서 개최하는 3.1절 103주년 기념 행사는 3월 1일 오전 11시 국학원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방송 된다

오단해씨는 광복군들이 사기를 높이기 위해 부르던 ‘압록강 행진곡’을 부르기로 해서 연습을 하던 중에 순전히 나의 갑작스러운 영감만으로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 형무소 여성 수감자들이 불렀다는 ‘8호 감방의 노래’까지 추가로 요청을 하게 되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오단해 씨는 3.1절의 의미와 기획의도를 듣고는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다. 시원시원하고 감성적인 목소리로 들려줄 감동적인 3.1절 기념공연을 기대해 본다.

전국 17개 시도 국학원에서 보내온 만세삼창 영상과 독립선언문, 공약삼장 낭독도 준비되어 있다. 의미 있는 장소에서 의미 있는 복장과 태극기 등을 들고 찍은 영상을 보니 오늘을 사는 대한국인의 마음이 전해졌다.

3.1운동의 정신은 높고 위대한 뿌리로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이 뿌리가 대한민국에서 평화와 번영, 민주주의로 튼튼하게 자리 잡기를, 그리고 홍익의 정신으로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기를 기대한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한, 바르고 정직한 화두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한, 우리의 삶은, 그리고 역사는 진보한다. 3.1만세 항거의 함성이 그 변하지 않는 분명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