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포스터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 무료 전시부터 옥외전시와 특별전시까지 볼거리와 쉴 거리가 많아 아는 이들은 혼자서도 자주 찾는 아지트와 같은 곳이다. 사계절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전시관 한편에 가만히 앉아있자면 시공간을 넘어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도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상설전시관 2층에 자리하고 있는 반가사유상을 보기 위해서다. 나는 5년 전 이곳에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처음 만났을 때의 거대한 압도감을 잊을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아우라와 360로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오묘한 미소, 흘러내리듯 유려한 곡선의 몸매를 보는 순간 왠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것은 일종의 위안(慰安)과도 같은 것이었다.

거대한 반가사유상 앞에 인간은 그저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도 그 미소가 떠올랐다. 일주일 후에 다시 찾은 박물관에서 나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크기가 처음과는 확연히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만난 반가사유상은 처음의 그것보다 작고 매끈했다.

지난해 11월, 국립중앙박물관 지하수장고에서 아홉 개의 보안장치를 풀고 두 점의 문화재가 나왔다. 보존상의 문제로 두 점이 세상에 함께 선을 보이게 된 것은 1986년, 2004년, 2015년 이후 6년만이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사유의 방’이라는 특별한 전시공간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사유의 방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문구가 관람객을 안내한다. 순간의 고요를 지나면 우리는 우리의 눈높이에 맞춘 1미터의 전시대 위에 나란히 앉은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된다.

[사진 사유의 방 입구 신은정]<br>
[사진 사유의 방 입구 신은정]

탑돌이를 하듯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반가사유상을 살피는 사람들, 휴대폰으로 쉴 새 없이 촬영을 하는 사람들, 스케치북에 다양한 각도의 스케치를 하는 사람, 그저 멀리 앉아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지만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비슷한 듯 다르다. 얼굴만 웃는 게 아니고 몸 전체가 웃고 있는 듯 보이고 상처 없이 매끈한 발바닥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인간적 고민은 이미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반가사유상을 흠모하다보면 이 놀라운 예술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건강검진처럼 학예사들이 매년 주기적으로 현미경 엑스레이와 시티촬영으로 반가사유상의 보존상태를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정을 유추할 수가 있는데 현대에도 반가사유상 복원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다. 제작기간은 전문가들이 투입되어도 두 달 여가 소요되고, 현재의 기술을 총 동원해도 한 번에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예측하건대 국보 78호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최소 20 여 명에서 30여 명의 장인(匠人) 한 팀이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가며 오랜 기간 동안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최고의 완성도로 만든 작품일 것이다.

6세기 중엽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반가사유상은 어떤 염원을 담고 있었기에 이렇게 대대적인 국가 프로젝트가 된 것일까? 그것은 미륵사상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미륵은 석가모니 붓다의 제자이다. 붓다는 미륵에게 “네가 미래의 부처다”라고 말했고, 붓다의 교화가 끝난 후 미륵이 언젠가 또 다른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서른다섯에서 팔십까지 깨달음을 설파한 후 열반에 든 붓다에 이어 중생에게는 새로운 부처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 이전에도 여섯 명의 성불한 부처가 있었듯이 미래의 부처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에 대답하는 존재가 바로 미륵이다.

미래를 위한 구원이자 메시아적인 존재를 기다리는 신앙은 삼국시대에 널리 퍼졌고, 사람들은 고통과 고민이 사라진 낙원을 꿈꿨다.

대지는 평탄하고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다

곡식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인구가 번창하고 갖가지 보배가 수없이 많으며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도 마음 깊이 있을 뿐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 없이 평화롭다

그래서 만나면 즐거워하고 착하고 고운 말만 주고받으니

뜻이 틀리거나 어긋나는 말이 없다.”

<미륵하생경>

 

반가사유상의 깊은 미소는 어쩌면 이런 꿈을 꾸는 중생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미륵은 세 번 설법을 했다고 전해진다.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의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 반가사유상의 미소처럼 해탈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륵은 그때까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중생을 구원할 수 있었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사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의 예언을 받은 미륵은 도솔천에서 수행을 하며 이 땅에 내려올 날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리고 미륵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인물로 여러 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꿈꾼다. 1,500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은 미륵불을 염원하며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조각했다. 그들이 꿈꾸던 깨달음과 세상의 평화는 여전히 유효한 소망이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민중 스스로 만들어 낸 위안이자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그들 자신의 얼굴이었다. 시대를 넘어 그 미소를 바라보며 우리가 위안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