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아닌 화가 ‘신인선’의 그림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아닌 화가 ‘신인선’의 그림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1-11-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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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 서울미술관 ‘화가 신인선- 신사임당 특별전’

“풀이며 벌레여,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그 그림 모사하여 대전 안에 병풍 쳤네. 아깝도다. 빠진 한 폭 모사 한 장 더 하였네.”

조선 19대 왕 숙종이 화가 신인선의 그림을 흠모하여 쓴 글이다. 조선의 화가로 안견,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등은 널리 알려졌으나 신인선(1504~1551)의 이름은 낯설다. 우리에게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훨씬 더 익숙하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는 '화가 신인선-신사임당'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석파정 서울미술관(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는 '화가 신인선-신사임당'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 3층 단편전시회 공간 가장 안쪽에서 ‘화가 신인선-신사임당 특별전’을 하고 있다. 전시는 화가 신인선이 친정인 강릉 오죽헌 뜰에 피어난 맨드라미와 가지, 포도, 오이, 그리고 나비와 방아깨비, 개구리, 쥐 등을 작은 폭 그림 안에 묘사한 작품들이다.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나비의 날개, 꽃잎과 꽃술의 섬세한 표현들이 우리 그림의 또 다른 매력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곁에는 그의 그림을 칭송했던 임금과 조선 사대부들의 글들이 번갈아 배치되어 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어숙권은 《패관잡기》에서 “동양 신씨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공부했는데 그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하여 평하는 이들이 안견의 다음이라고 한다. 어찌 부녀자의 그림이라 하여 경홀히 여길 것이며, 또 어찌 부녀자에게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나무랄 수 있으리오!”라고 했다.

그중에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도 있다. “집에 율곡 선생 어머님이 그린 풀벌레 그림 한 폭이 있는데 여름철이 되어 마당 가운데 내어 볕을 쬐자니 닭이 와서 쪼아 종이가 뚫어졌다.”(송상기의 ‘사임당화첩발(1713)’)

화가 신인선(신사임당)의 그림 속 섬세한 표현. [사진=강나리 기자]
화가 신인선(신사임당)의 그림 속 섬세한 표현. [사진=강나리 기자]

화가로서 신인선의 신묘한 솜씨를 칭찬하고 있지만, 대개의 글에서 조선의 대학자이자 뛰어난 천재 율곡 이이의 어머니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신사임당은 조선 사대부가 정의한 현모양처의 전형이 아니라 인간 신인선으로서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누렸던 예술가였다.

그의 아버지 신명화는 영특한 딸 인선이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한미한 집안에서 데릴사위를 맞았다. 인선은 결혼 후 3년 만에 시어머니를 뵈었고, 주로 친정과 그 인근에 머물며 19년을 고향인 강릉에서 살았다. 그래서 셋째 아들 이이도 오죽헌에서 태어난 것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사임당오형제분재기師任堂五兄弟分財記’를 보면 상당한 재력도 있었던 듯하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했던 그는 다재다능한 재능을 펼쳤다. 임종 전 남편에게 자신이 죽은 후 재가하지 말라고 주장한 일화 등을 살펴보면, 순종적인 아내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학문이 깊고 현명해 남편을 논리로써 제압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율곡 이이의 ‘나의 어머니 일대기’를 보면 자식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현명한 어머니였음을 알 수 있다.

나비의 투명한 듯 섬세한 날개를 표현한 화가 신인선. [사진=강나리 기자]
나비의 투명한 듯 섬세한 날개를 표현한 화가 신인선. [사진=강나리 기자]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무너진 사회질서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이 원리주의적으로 변하여 남녀 차별과 서얼 차별을 강화하며,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경직된 사회로 변모하였다. 여성에 대해 칠거지악七去之惡과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질서를 강권하며, 절개와 순종, 희생을 미덕으로 강조했다. 칠거지악은 아내를 내쫓는 이유가 되는 7가지를 말하고, 삼종지도는 “집에서는 아버지,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는 유교적 규범이다.

그보다 이전에 활동했던 신인선이 부모님의 극진한 사랑 속에 자라 주체적인 삶을 살며, 예술혼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시대적 상황도 작용했다. 조선 중기 이전 여성의 지위는 후기보다 확실히 높았고, 결혼 후에도 시집살이 보다 친정 또는 그 주변에 머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조선 중기 존경받는 문신이자 서예가인 미암 유희춘이 ‘16세기 타임캡슐’로 불리는 《미암일기》를 쓰며 머물던 담양의 연계정은 조선조 4대 여류 문인인 아내 송덕봉의 고향, 妻鄕인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화가 신인선의 그림과 그의 그림을 평하는 어숙권 '패관잡기'의 글. [사진=강나리 기자]
화가 신인선의 그림과 그의 그림을 평하는 어숙권 '패관잡기'의 글. [사진=강나리 기자]

그런 신인선(신사임당)이 후대 사대부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었던 배경은 율곡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남인에게 정신적 스승인 퇴계 이황이 있었다면, 조선 후기를 지배한 정치세력인 서인이 내세운 정신적 스승은 율곡 이이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함께 소개된 많은 사대부의 칭송 글 속에 율곡 이이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가 신인선이 살다간 인생처럼 그의 그림도 그 자체로써 평가하고 재조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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