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함보다 포용력과 여유를 가진 아이로!
완벽함보다 포용력과 여유를 가진 아이로!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0.06.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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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꿈찾기] 광주광역시 장덕초등학교 6학년 김태희 양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기본인 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사회는 인재의 핵심능력 중 하나로 급격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요구한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온라인 개학’ 등 포스트코로나의 변화 앞에서 아이가 좌절하지 않고 행복하게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광주 장덕초등학교 6학년 김태희 학생은
광주 장덕초등학교 6학년 김태희 학생은 "뇌교육을 하면서 집중력과 도전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이 생겼어요."라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태희(광주 장덕초 6) 학생은 똑똑하고 리더십이 있고 자기주장이 분명하며, 정한 목표는 반드시 이루는 아이다. 한번 규칙을 정하면 누가 점검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키니 어른들의 시선에서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며 강한 도덕관념으로 인해 때로는 부딪힘을 겪었다. 그런 태희가 이제 남들의 다름을 포용할 줄 알며 웃으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다. 그 변화는 뇌교육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냈다. 지난 5월 29일 광주에서 김태희 학생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다.

태희는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첫손자여서 무척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대기업 임직원이어서 주말에만 만나고 초등학교 교사인 엄마와 함께 지냈다. 엄마 노영신 씨(42, 교사)는 “태희는 알아서 엄마 말을 잘 따라주는 기특한 아이였어요. 지금도 일주일에 1시간 주말에만 게임을 허락했는데 한 번도 휴대폰을 점검한 적이 없지만 꼭 지키죠.”라고 했다.

노영신 씨는 육아서를 많이 읽고서 화내지 않고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는 엄마였다. 하지만 태희가 4살 때 둘째가 태어나고 6개월째부터 그렇지 못했다. 출산휴가 3개월 만에 복직한 후 교사생활과 함께 퇴근 후에는 두 아이의 육아를 전담해야 했다. “둘째를 씻기는 동안 태희에게 빨리 밥을 먹거나 양치를 하라고 채근하고 화를 내고 있더군요. 고작 4살 아이인데 14살처럼 행동하기를 원했던 거죠.”

태희도 짜증이 많이 늘었다. 노영신 씨는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라 작은 것에도 상처를 잘 받았어요. 지적인 것은 책을 읽어주고 학원을 보내며 제가 해줄 수 있겠는데 아이의 감정에 관한 걸 어떻게 할지 난감하던 때 지인을 통해 BR뇌교육(비알뇌교육)을 알게 되어 보내기 시작해 벌써 9년이 되었네요.”라고 했다.

어머니 노영신(초등학교 교사) 씨와 김태희 학생. [사진=김경아 기자]
어머니 노영신(초등학교 교사) 씨와 김태희 학생. [사진=김경아 기자]

엄마 노영신 씨도 뇌교육 부모교육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뇌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화내는 일이 줄고 규범과 틀 속에 갇힌 자신이 훨씬 유연해지고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태희가 뇌교육을 하며 가장 많이 변했다고 느꼈던 때는 6살 무렵이었어요. 전에는 제가 야단을 치면 그냥 주눅 들어있고 자신의 기분상태를 말하진 않았는데 어느 날 ‘나는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한 건데 엄마가 화를 내서 속상했다.’고 감정을 분명하게 표현하더군요.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이야기해 주니 무슨 일이 있을 때 대화로 문제를 잘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되었죠.”

태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맡았고 리더십을 발휘했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어 시험에서 한 두 문제만 틀려도 속상해했다. 한번은 영어학원에서 95점을 받고 투덜댔더니 같이 배우는 남자아이가 “그 점수는 정말 괜찮은 점수야.”라고 했다. 태희는 웃으며 “난 완벽주의자야. 하나도 안 괜찮거든.”이라고 대꾸했고, 그 친구는 그 이후로 태희를 “야, 완벽주의자!”라고 부르며 놀렸다.

뭔가를 시작할 때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안하겠다. 못하겠다. 왜 이걸 해야 하느냐’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먼저 하지만 투덜대면서도 열심히 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뇌의 고등감각인지능력을 키우는 HSP수업을 하게 되었다. 태희는 그중 시각을 가리고 숫자와 기호, 색깔 등을 보는 카드보기 훈련을 처음에 하기 싫어했다. “HSP GYM(짐)이나 다른 건 열심히 하면 성과가 나는데 카드보기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태희를 담당한 장규화 HSP트레이너(BR뇌교육 신창지점)는 “카드보기의 경우 긴장하면 더 안 됩니다. 고등감각인지능력은 완전히 이완된 집중상태에서 자신의 뇌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발휘되는 감각이기 때문이죠. 아이들은 카드보기를 통해 자신의 뇌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선택하는 힘을 기릅니다.”라고 했다.

김태희 학생을 지도한 장규화 HSP트레이너(BR뇌교육 신창지점)와 함께. [사진=김경아 기자]
김태희 학생을 지도한 장규화 HSP트레이너(BR뇌교육 신창지점)와 함께. [사진=김경아 기자]

보통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또래사회의 모습이 조금 복잡해진다. 반에서 남자와 여자로 나뉘고 소규모로 뭉치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태희는 여자아이들의 고민도 잘 들어주며 이끌었고 규범을 잘 지키는 남자아이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켜야할 질서를 무시하는 말썽꾸러기들과는 자주 부딪혔다.

엄마 노영신 씨는 “교사 자녀의 특징이라고도 하는데요. 저를 닮아 규범의 틀이 있는 편이라 장난꾸러기 남학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놀리거나 하면 못 견뎌하더군요. 예를 들어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왜 듣지 않고 자신에게 묻고 재촉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죠.”라고 했다.

태희는 4학년 때 청소년 뇌교육 최고과정인 일지영재에 도전했다. “지점에서 윤후 오빠(고3), 서연언니(고1)가 일지영재였는데 정말 멋있었거든요. 물구나무서서 걷는 것도 멋지고 언제나 지구경영자라는 자세로 당당하면서도 나이 차가 나는데도 서로 배려하고 친절하게 감싸주는 모습이 좋았어요.”

일지영재 과정의 예비단계로 제주도에서 열린 HSP캠프에 다녀온 태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한 뼘 더 성장했다. 전 과정에서 목표의 난이도를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었다.

“마고대장정을 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등산을 싫어하는데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낯선 길을 걸으려니 2~3바퀴 때가 가장 어려웠어요. 아침 해가 밝아오니까 할 만했어요. 캠프에 가기 전에는 절명상이 제일 힘들 줄 알았는데 마고대장정을 하고나니 별로 어렵지 않았죠.”

태희는 전 과정을 가장 높은 A난이도를 택했고 절명상도 900배를 선택했다. “500배 쯤이 제일 하기싫고 그만할까 망설였지만 끝까지 하고나니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주HSP캠프는 친한 친구들이랑 가서 좋았고 거기서 처음 사귄 언니들이랑 방에서 베개싸움도 했던 것도 즐거웠어요.”

김태희 학생은 일지영재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며 사랑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태희 학생은 일지영재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며 사랑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진=김경아 기자]

본격적으로 체력과 심력, 뇌력을 기르는 HSP12단에 도전하면서 고비가 있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허공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4단까지가 무척 오래 걸렸다. 그 후 수월하다가 벽대고 물구나무를 서서 팔로 걷는 9단에서 한번 균형을 잃을 뻔 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지켜주고 있었지만 큰 두려움을 느낀 이후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지켜보던 엄마가 내년에 도전해도 되지 않겠냐고 했을 때도 태희는 이번에 하겠다고 선택했다. 그때 최고의 기공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선생님의 손에 의존하지 않고 막대에 몸을 맡기고 허공을 걷는 연습을 하니 훨씬 잘 되었다. 훈련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되돌아보며 꾸준히 훈련했고 기준인 36걸음에는 못 미쳐도 30걸음 내외로 발전했다.

태희에게 도전과정이 힘겨웠지만, 함께 도전하는 친구, 언니, 오빠들과 서로 피드백하며 돕는 일상 속에서 행복했다고 한다. “힘들 게 연습하다 간식을 먹고 모두 벽에 기대 잠깐 쉴 때가 있었는데 그게 왠지 제일 기억에 남고 행복했어요.”

엄마와 아빠, 동생이 가족여행을 떠난 때에도 HSP12단 캠프에 참가하려고 천안 국학원을 간 태희는 그곳에서 42걸음으로 12단을 통과했다. 트레이너 선생님과 도전자들의 축하 속에 통과한 후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가족들이 지르는 기쁨의 환호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노영신 씨는 “태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남편에게도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뇌교육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아이가 목표를 정해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결국 목표를 이루어내는 모습이 좋아서 최근에는 주변 후배에게 뇌교육을 시키라고 홍보까지 했다더군요.”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태희는 일지영재 인가캠프에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한다. “대자연 속에서 명상하고 처음 레저스포츠를 경험하는 것도 좋았는데 무엇보다 뇌교육 창시자이고 최고의 멘토인 이승헌 총장님(글로벌사이버대학교)을 만난 게 좋았어요.”

김태희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때 일지영재 5기에 도전해 목표를 이루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태희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때 일지영재 5기에 도전해 목표를 이루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이후 태희는 학교 운동장에서 물구나무서서 걷는 HSP12단을 선보였고, 친구들은 ‘우와!’라며 감탄했다. 그리고 말썽꾸러기였던 남학생은 가만히 다가와 배우고 싶다고 했다. 노영신 씨는 “태희는 늘 제멋대로라서 싫어했는데 배우려는 진지한 모습이 놀랐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서로 다른 면을 인정하고 보더군요.”

태희의 성격이 금방 변하지는 않았다. 일지영재로서 다음 도전자들을 지원하는 캠프에서 보조트레이너 역할을 하면서 제대로 하지 않고 뒤에서 수군수군하는 오빠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태희는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하지 않는 도전자들이 답답했다. 하지만 한 달간 캠프 지원을 쉬면서 태희는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돕는 것이지 선택과 도전은 상대방의 몫이잖아요. 제가 기대하는 것에 상대를 맞추지 않아야겠다고 여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렇게 1년을 더 지나며 태희는 더욱 성장했다. 지금은 남들의 농담을 농담으로 답할 줄 아는 여유와 포용력을 가졌다. 누구보다 씩씩하고 용감하며 유연하여 품이 넓은 아이로 자라고 있다.

태희의 꿈은 ‘검사’라고 했다. “사회에서 부조리하고 나쁜 범죄를 법의 잣대로 판단하고 바로 잡는 일을 해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잘못 판단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해야겠죠. 친구들도 논리적으로 대화를 잘하니까 잘 할 거라고 응원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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