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은 나의 선택으로 창조합니다!”
“나의 행복은 나의 선택으로 창조합니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5.20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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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30편] 고경미 씨 번아웃 탈출기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개척하며 위기도 넘어왔는데, 한순간 무기력에 빠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주변의 위로나 격려도 도움이 되지 않고 아무리 의욕을 불러일으키려 해도 무력감이 찾아오는 주기가 더욱 빨라지는 때.

올해로 금융기관 근무 29년 차를 맞는 고경미(48) 씨는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꾸준히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업무능력도 뛰어났다. 끊임없이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며 자기계발에 게으르지 않았다.

뇌교육명상을 통해 무기력의 터널을 탈출하고 새로운 희망에 부푼 고경미 씨. [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을 통해 인생에서 갑자기 닥친 무기력의 터널을 탈출하고 새로운 희망에 부푼 고경미 씨. [사진=김경아 기자]

그의 아버지가 상업고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오빠 한 명을 제외하고 막내인 그를 포함해서 딸 4명은 모두 상업고등학교를 다녔고 은행에 입사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를 좋아한 편은 아니지만, 친구들이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 때 왜 나는 삶에 눌려 사는지 속상하기도 했고 대학을 나와야 당당할 것 같았죠.”

그는 대학입시를 준비해 은행근무 4년차에 영남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사회초년생으로 바쁜 일과때문에 자주 수업을 빠지다보니 반 이상 듣지 못해 전공조차 F학점을 받았다. 계속 하기 어려워 휴학을 했고 결혼을 하면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나서 다시 공부를 해서 재입학을 했다. 야간대학에는 영문과가 없어 학교 측에 학업계획을 제출하고 승인을 받아 어렵게 다녔다.

“졸업시험을 앞두고 반드시 들어야 할 과목이 있는데 그때가 은행이 한창 바쁜 2월말이라 불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방학 중인 중3 큰아이를 보내 강의를 녹취해 공부를 해서 졸업을 했죠. 대학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부동산학을 전공했죠. 주말마다 수업을 들었어요. 제게는 늘 배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유시간 노는 것보다 날 채울 경력을 쌓고 싶었죠. 동등하게 대우 받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살면서 가장 큰 위기는 남편이 시아버지와 함께 경영하던 회사의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였다. 채무자들은 그가 일하는 은행까지 찾아왔다. “금융기관에서 일하다보면 그런 상황에서 금융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때로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을까 주변의 눈치가 보였어요. 부끄럽고 힘들었죠. 너무나 속상해서 남편과 상처 주는 말을 많이 주고받았죠.”

남편은 친척이 있는 미국에서 재기하기 위해 떠났다. 두 딸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느라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어도 견뎠다. “아이들 방학이면 만났지만 필요할 때 없다는 게 속상했어요. 힘들 때 전화하면 남편도 힘들다고 했죠.” 그때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막내를 안쓰러워하는 친정 부모님을 모시게 되었다. 하지만 아파트를 마련하고 모신지 1년 만에 아버지가 풍으로 쓰러져 어머니가 병수발을 했다. 그 어려운 시기도 넘겼다.

3년 전 경미 씨가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렸다. 동료들과 1년 간 정성을 쏟았던 일도 물거품이 되었고, 순조롭게 이루어지던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진급도 불발이 되었고 미국이민을 염두하고 비자신청을 했던 것도 잘 되지 않았다.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10년 간 모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곧이어 어머니까지 돌아가셨다.

위축되었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조차 편하지 않았다. 워낙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터라 필라테스, 수영, 골프 등 운동으로 뛰어넘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무력감에 빠지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왔다. 버티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까지 갔다. 작년 7월 당시 경미 씨는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주변의 위로조차 상처가 되었다.

고경미 씨는 뇌교육명상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건강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건강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고경미 씨는 뇌교육명상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건강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건강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였죠. 그러다 제주도에 계신 큰집 오빠와 벌초를 논의하는데 ‘명상이 그렇게 좋더라. 유튜브에도 나오니 한번 찾아보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래서 찾아본 게 체인지TV라고 뇌교육명상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이었어요. 체험을 하고 나서 직접 뇌교육명상을 체험하려고 찾아간 곳이 단월드 광장센터예요.”

그가 급히 휴가를 내어 뛰어갔을 때 원장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활공으로 그의 에너지 순환상태를 점검하고 긴장된 몸을 이완하도록 해 주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잔잔한 음악 속에서 뜨겁던 머리가 맑아지고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했어요. 깊은 호흡을 하니까 너무나 편안해졌죠. 매일 수련해서 이렇게 살고 싶더군요.” 때마침 휴가기간이라 8월 초 수련을 간절히 기다렸다.

경미 씨는 매일 쓰는 다이어리에 ‘내가 승진을 하지 못했지만 인생에서 큰 걸 얻자’라고 썼고, 자신의 인생에 휴가를 주겠다고 결심했다. 뇌교육명상수련을 열심히 하면서 마음은 차분해졌고, 체인지TV에서 이승헌 글로벌사이버총장의 강연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모든 인생의 해답이 있었어요. 세 번은 반복해서 보았죠. 그러니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조금은 편안하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성교육을 받았을 때 자신을 비로소 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제 자신에게 가장 원하는 걸 계속 물었는데,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유라고 했어요. 그때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고 학대하며 살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 제가 뭘 원하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죠. 나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오직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평가될지가 중요했던 거죠. 늘 자유롭고 싶은데 혼자는 공허하고 지친다고 두려워했는데 진정한 자유는 내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내가 나를 사랑하니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심성교육이 그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올라오는 감정의 상처, 생각의 꼬리가 자신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가 선택한 것이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 메소드)교육이었다. 그 교육을 통해 그는 생각과 감정이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관리해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뇌의 정보에 의해 생각과 감정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감정과 정보를 지우고 통합하고 유연화 시키는 원리를 배웠죠. 뇌의 정보를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체험했죠.”

고경미 씨는
고경미 씨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선택으로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게 바로 파워브레인 아닌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PBM과정에서 경미 씨는 감정을 벗어버리니 입장을 바꿔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편안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진심으로 화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어요. 술을 드시면 늘 우리들을 깨워 훈계하셨죠. 제 생각을 말하려다 혼나기도 해서 주눅이 들고 위축되었죠. 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을 아버지만 탓했어요. 그건 제가 찾아야 하는 것인데 말이죠. 아버지가 방법을 몰랐을 뿐이지 날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동안 원망했던 남편도 이해가 되었다. “직원뿐 아니라 그 가족의 생계가 달린 사업이고, 아버지 이름으로 하는 사업인데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알겠더군요. 이해하지 못해주어서 미안했죠. 그리고 모든 사람이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게 느껴졌어요. 경쟁이 심한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게 느껴졌죠.”

그는 PBM 교육과정 중 자기선언을 했던 때가 기억에 남았다. “온 에너지를 써서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쳤죠. 충분히 에너지를 썼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더, 한번 더’하면서 울컥 감동이 밀려오고 그 선언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더군요. 이게 뇌에 각인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고요.”

고경미 씨는 교육이후 자신이 최선을 다한 만큼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잘하는 사람이 기준이 되어 내가 왜 그렇지 못한지 제 자신을 질책했어요. 인생의 가치를 다른 사람 기준으로 살고 있는 데서 내 자신을 중심으로 기준점을 바꾸니 자연스럽게 자존감과 자신감이 올라갔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게 진정한 내 삶의 가치가 되었어요.”

그는 “PBM교육에서 긍정과 행복의 조건을 내가 만들 수 있는 원리를 배웠죠.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선택으로 행복을 창조할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파워브레인 아닌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경미 씨가 행복해지면서 집에도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아빠가 집에 없으니 아이들이 더 잘 자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했어요. 작은 딸이 예술고등학교를 간다기에 말리다가 ‘갈려면 1,2등은 해야 한다’고 다그쳤죠. 지금은 인생에서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니라 꿈을 찾는 것이라고 하죠. 놀고 싶을 때 실컷 놀아야 한다고 하니까 아이들도 엄마가 변했다고 합니다.(하하)”

고경미 씨는 무기력의 긴 터널을 지나 활기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생활한다. 직장에서는 고객에게 금융컨설팅을 하면서 건강을 상담해주고, BHP명상과 활공, 그리고 뇌교육명상을 통해 깨달은 삶의 원리를 전한다. 그리고 매주 시간을 내어 센터에서 회원들에게 뇌교육명상을 지도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내 가족이 먹고 사는 일에 집착했지만 지금은 제 작은 힘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하면서 홍익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경험했듯 사람들을 깨우고 도우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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