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활동에 전념하여 세계적인 화가가 되라고 멘토 겸 매니저 역할로 외조를 해온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안남숙(54) 화백은 절망에 빠졌다. 작품 활동을 하겠지만, 화실, 갤러리를 운영할 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절망에만 빠져 있을 수 없어, 마음을 다잡고 작품 활동과 화실, 갤러리 운영에 모든 것을 다 쏟았다. 그러는 동안 안개가 걷히고 길이 밝게 보였다. 여유를 찾게 되자 안남숙 화백은 ‘내가 무엇을 하면 남편이 가장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안남숙 화백은 예술을 통해 홍익을 실천하는 '홍익화가'이다. [사진=김경아 기자]
안남숙 화백은 예술을 통해 홍익을 실천하는 '홍익화가'이다. [사진=김경아 기자]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에 남편이 좋아할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참 생각해보니 집과 화실 사이에 있는 명상호흡을 하는 곳이 떠오르더군요. 그날로 그곳에 가서 명상호흡을 하는데, 향기가 나고 맑은 기운이 느껴졌어요. 그곳이 대구 단월드 범어동센터였어요. 그때부터 뇌교육명상을 시작했는데, 벌써 5년 8개월이 됐네요.”

그는 뇌교육명상이 좋아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명상을 했다. 1년간 매일 103배 절 수련을 하니 몸이 건강해졌다.

“뇌교육명상을 하니 몸이 좋아지고, 생각이 정리되니까, 집착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지금, 여기, 나에게 집중하는 힘이 생겼어요. 그러니 작품 활동도 더 잘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는 작품활동을 하며 화실을 운영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고 갤러리 운영도 15년이 되었다. 개인전을 27회 열었고 국내외 초대전, 기획단체전에 참가한 건 300회가 넘는다.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브라질, 로마, 도쿄, 상하이 등 수많은 외국 전시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술을 알렸다.

“전시회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참가하고, 개인전은 1~2년에 한 번꼴로, 거의 매년 개최하다시피 했어요. 참 바쁘게, 왕성하게 활동했지요.”

이 불타는 예술혼은 어디서 온 걸까.

“스물일곱 살 때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어요. 그때 살아나면서 인생의 목표가 생겼지요. 세상을 선한 방향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자,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을 하자. 지금 생각하면 홍익의 비전이 그때 생긴 거죠. 그래서 자유로운 예술가를 꿈꿨어요. 5대양 6대주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화가가 되고자 했어요.”

그는 언제부터 화가가 되려고 했을까.

“초등학교 때 교장 딸인 친구가 미술을 했는데,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하고 싶어 집에서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리면, 아버지가 못하게 했어요.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그때 성주 면장을 했어요. 또 형제가 8남매나 되니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안 화백은 부모의 반대로 고등학교 때에야 미술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미술을 시작하자 실력이 부쩍 늘어 그는 경북대 미술학과에 수석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예술학 박사가 됐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경북대 평생교육원에 미술반을 개설하여 그림을 지도하고, 10년 전에는 미국에서 3년간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 수많은 곳에서 소장한 중견화가이다.   

안남숙 화백은 매일 새벽에 뇌교육명상을 하고 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 인터넷에 올린다.  [사진=김경아 기자]
안남숙 화백은 매일 새벽에 뇌교육명상을 하고 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려 인터넷에 올린다. [사진=김경아 기자]

“20년간 인물화를 그렸지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린 그림이 청와대에 갔고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등도 그렸지요.”

그가 지향하는 예술은 생명예술, 생활예술, 그리고 홍익예술이다. 그는 꽃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밝은 모습을 즐겨 화폭에 담는다.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안 화백의 작품세계도 인물화에서 수행하는 그림, 브레인 아트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1시간에서 2시간 뇌교육명상을 합니다. 그러면 뇌에 메시지, 이미지 등이 떠오릅니다. 그런 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우리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읽으며 느낀 것을 그림으로 그려 매일 SNS에 올립니다. 처음 올렸을 때는 의아해하던 사람들도 계속 보면서 친근감을 느끼고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뇌교육명상 등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는 뇌교육명상을 하며 전문가과정까지 다 받았다. 심성교육을 받을 때는 명상을 하는데 머릿속에 단군 모습이 뜨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단군이 47분 계셨다는 것을 몰랐는데, 그 후로 관련 자료를 보고 알고는 우리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뇌교육명상 전문가 과정이 마스터힐러(MH) 교육을 받으면서는 가족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것을 경험하면서 에너지가 바뀌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지요. 이렇게 바뀌면 세상을 살릴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안 화백은 그런 힘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을 ‘홍익화가’라고 이름 짓고 홍익을 실천하고 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다시 입학하기도 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지구경영학과에입학해 올해 수료했다. 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의 멘토로 활동한다. 2015년 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학생 10명을 멘토하여 미술활동을 지도하고 벽화 그리기에 참여하게 하고, 갤러리에서 무료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매년 멘토 활동을 하며 그림을 지도하고, 무료 전시회를 열어 벤자민 학생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도록 무대를 마련해준다. 벤자민 학생들의 멘토는 앞으로 계속할 생각이다.

그는 2017년 앞으로 인생 120세를 어떻게 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뇌교육명상을 창시한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님의 책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를 2017년에 몇 번 완독을 했어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니, 100세 시대라는 게 실감이 되었어요. 홍익하는 화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러려면 기본 건강에 충실하라는 자각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매일 집에서 뇌교육명상을 하지만,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은 센터에 가서 뇌교육명상을 합니다.”

그는 요즘도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책을 읽는데 손 가는 대로 읽는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첫 페이지를 읽는다. 그러면 그날에 맞는 내용을 읽게 된다고 한다. 갤러리에도 이 책을 두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책을 펴보게 한다.

“갤러리가 있는 건물에 병원, 한의원이 있어 아픈 사람이나 그 가족이 갤러리에 많이 옵니다. 그분들에게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 책을 주고 마음 가는 대로 펼쳐보게 하면 그분에게 맞는 내용이 나와요. 그 내용을 보면 그분들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매일 어느 분이 갤러리에 오실지 기대됩니다.”

그는 하루 10명을 목표로 120세 책을 보여주고 요즘 그가 열심히 하고 있는 자가힐링명상법인 BHP명상을 알려준다. 갤러리에 온 모든 사람들이 그림과 책과, 명상법을 통해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밝고 건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해 그는 갤러리에 보관하던 그림 수백 점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는 붓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많은 사람이 그림을 사가고 후원하여 갤러리를 다시 열도록 힘을 주었다.

“수해가 난 후 지인들에게 에너지에 맞는 작품을 다 가져가라 했더니 작품을 그냥 가져갈 수 없다고 많이 사갔어요. 후원도 많이 했고요. 전화위복이 됐어요. 수해가 지나고 나니 축복이었구나 싶었어요. 내 힘으로 살 것처럼 하니까 문제인가 싶어 에고, 집착을 버렸지요.”

지난해 그가 다니던 국제뇌교육대학원에 그림 10점을 기증한 그는 올해 대학원 원우회에 20여점을 기증했다. 지난해까지 제17대 대학원 원우회 회장을 맡았던 그는 대학원 원우회에 애정이 여전했다. 대학원 원우회는 이 그림으로 '안남숙 특별전시회'를 5월 18일부터 31일까지 대학원 지하1층 원우회 카페에서 연다.

안남숙 화백은 그림으로 세상을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하는 홍익화가의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안남숙 화백은 그림으로 세상을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하는 홍익화가의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홍익화가로서 그는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전시회를 개최했다. 역사에 남은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화폭에 재현한 안 화백의 100인 인물전 ‘독립투사와 우리들의 초상’전이다. 2월 20일부터 3월 19일까지 대구시 수성구 안남숙갤러리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시의적절하고 규모가 커 화제가 되어 대구시민이 많이 찾았다. 그는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크고 깊은 뜻을 후손인 우리가 다시 한 번 알리고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기획했다.

안 화백이 운영하는 갤러리가 올해 대구 수성구로부터 ‘작은 문화공간’으로 선정되어 3년간 지원을 받게 됐다. 일반인을 상대로 그림으로 소통하고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림으로 세상을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게 하는 홍익화가의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그는 앞으로 뇌교육명상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그림으로 ‘뇌교육 스토리텔링’을 할 계획이다. 또 천안에 있는 국학원의 역사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고 했다.

그의 갤러리가 있는 대구 수성구에 국학기공, 지구시민운동을 활성화하는 것도 그는 계획에 두고 있다. 그는 (사)대한국학기공협회 대구수성구국학기공협회 회장으로 국학기공을 보급하고, 국학기공대회를 개최하였다. 동마다 국학기공동호회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국학기공을 하여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또한 지구시민운동연합 수성구지회장으로 지구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인간사랑 지구사랑’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그는 그림으로도 활동으로도 홍익을 실천한다. 그의 삶이 예술이 되어 간다. 많은 계획을 다 이루기 위해서도 그는 뇌교육명상을 꾸준히 한다.

“느슨하면 불편함이 생겨요. 마음은 계속 닦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