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안동이 고향인 김욱현(48) 씨는 고등학교 때 집과 학교, 화실 세 곳을 오갔을 뿐 여행을 가거나 하루 1박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안동사람인데 안동역이 어딘지도 몰랐죠. 학교 언니들이 ‘바른 소녀’라고 불렀는데, 그게 답답하고 고지식하다는 의미인 줄도 몰랐어요. 집에서는 관공서 가는 일이나 은행업무 등 뭐든지 동생들이 다 해주었고 ‘누나는 그런 거 못한다. 공주다’라고 했어요. 그만큼 세상물정을 몰랐죠. 그리고 제 장래 희망도 현모양처였어요.(하하)”

그런 그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꾸릴 줄 알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넬 줄 알게 된 데는 뇌교육명상의 힘이 컸다. 욱현 씨는 “요즘 학교동창들이 저를 보면 놀라요. ‘네가 농담도 할 줄 알다니, 훨씬 여유 있고 자유로워 보인다.’고 하죠.”

단월드 안동센터에서 만난 김욱현 씨는
김욱현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삶의 중심을 찾았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 후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까불고 산만했는데, 담임선생님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는 “절에 가서 스님께 우리 아이보고 정신과를 가라 했다며 서럽게 울었어요. 그러다 청소년 뇌교육 두뇌코칭을 하는 BR뇌교육(비알뇌교육) 홍보물을 보고 아이에게 뇌교육을 시켰어요. 한두 달 지나니 아이가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더군요. 말도 조리 있고 어른스럽게 하구요. 주변에서 아이가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라고 했다. 그는 ‘뇌교육이 좋아도 엄마가 안 바뀌면 아이가 변화할 수 없다’는 조언에 공감하고 뇌교육 선생님 연수교육을 받고 활동하기도 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졸업식 때 “정말 화가 나서 때리고 싶은 아이가 있었는데 참았어. 그 아이가 맞고 집에 가면 그애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그러고 나니까 친구를 얻었어.”라고 했고, 졸업기념 사진을 함께 찍은 친구가 바로 그 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허리가 좋지 않아 허리수술을 받았는데, 돌아누워 자려면 마비가 와서 제대로 잘 수가 없고, 담이 잘 들었다. 고통스럽다보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곤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뇌교육명상수련을 본격적으로 해보라는 권유를 받아 뇌교육명상을 하러 김천센터에 갔다. 센터에서 기체조와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경직된 근육을 풀고 몸이 따뜻해지고 유연성을 되찾으니 돌아누워 자는 것도 문제없고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표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심성교육을 받았다. 그때 자기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면서 마주보고 통찰하게 되었다.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는 걸 항상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할 수 있다’며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열심히 참여했죠. 그리고 알게 된 게 있어요. 지금까지 요추에 핀을 박아서 허리가 아픈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힘든 걸 억지로 참고 살았기 때문이란 걸 알았죠. 완벽한 가정을 꿈꾸고, 맏며느리로서 늘 착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면서 ‘나’는 없고 삶의 중심축이 제가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이더군요.

그리고 제가 만든 틀이 엄청 크고 강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안동사람이다 보니 예의, 그리고 기본도리에 대한 잔소리를 아이들에게 많이 했어요. 내가 가진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아이들을 가두었죠. 간식도 꼬박꼬박 제가 만들어 주면서 아이들에게 잘한다고 노력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제가 낳았다고 해서 제 생각을 강요한 것 때문에 아이들은 힘들고 숨을 못 쉬고 있었다는 걸 느꼈죠.”

그가 심성교육을 받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신기하게도 손톱을 물어뜯던 아들의 습관이 사라졌다. 최근 그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안 바뀌었으면 어땠을까?”라고 농담 삼아 아이들에게 물었다. 훌륭하게 잘 커준 세 아이가 동시에 “집 나갔지~”라고 답하며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심성교육을 “철장 안에 있었는데 알아차리고 나와서 정말 좋았던 기회”라고 표현했다.

그가 몇 년 전 다시 안동으로 왔을 때, 가정의 경제적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하는 상황이었다. 주부로만 생활했었기에 쉽지는 않았다. “지인의 도움으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늘 마음속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간절했죠.” 그랬더니 그에게 기회가 왔다. 20년 간 메이크업 출장을 종종 나갔었는데, 그걸 인정받아서 대학교 뷰티과 교수의 추천을 받아 산학연계 수업기회가 생겨 네일아트 전문교육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취업은 쉽지 않았다.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했지만, 네일숍에서는 젊은이를 원했고 나이 있는 주부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환영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좌절했겠지만, 안동에 와서도 안동센터를 다니며 뇌교육명상을 해서 제 안에 힘이 생겼고, 아이들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간절함이 커서 무조건 도전했죠. 구경을 하러 가겠다고 하니까 선뜻 승낙해서 갔어요. 가는 길에 그 네일숍 원장님을 안다는 지인을 만나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함께 갔죠. 저를 잘 아는 지인이 꼼꼼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거들어주니 원장님이 한두 달만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어렵게 취업한 네일숍 직원 중 나이는 많지만 제일 막내직원이었다. 그는 내 가게처럼 쓸고 닦고 가꿨다. “한번은 발 관리를 하게 되었는데,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얼른 우리 엄마 발이라고 생각을 전환하고 기분 좋게 관리해드렸더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시더군요.” 서울출장과 강연을 자주 가던 원장은 성실한 그를 실장으로 승격시켰고 그에게 숍을 맡겼다.

주부로만 살았던 김욱현 씨는 네일숍을 운영하며 스트레스와 장애를 이겨내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을 격려하고 돕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주부로만 살았던 김욱현 씨는 네일숍을 운영하며 스트레스와 장애를 이겨내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을 격려하고 돕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얼마 후 원장은 서울로 가며 네일숍을 그에게 이전해 주었다. 처음 경영해보니 세금이나 행정적인 일, 직원관리 등 너무나 많은 일이 쏟아졌다. “책임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아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죠. 그때 PBM(Power Brain Method)교육을 갈 생각이 났어요. 3년 전부터 언젠가는 가야지 생각만하고 있었는데, 이제 날 위해 한번 가보자고 선택했어요. 그 교육이 다시 제게 삶을 힘차게 살아갈 추진력을 주었습니다.”

그는 항상 차를 타는 걸 싫어했다. 23살에 운전면허를 획득하고도 운전을 하지 않았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불안해했다. PBM교육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맏며느리로 자녀들뿐 아니라 아버지 형제인 삼촌, 고모도 키워야 했다. 몸이 약한 어머니가 걱정된 외할머니는 외손녀 맏이인 그가 세 살이 되자 자주 맡아 키워주셨다. “어리니까 옛날버스 앞 운전석 옆에 불쑥 올라온 곳에 타서 외가댁으로 갔어요. 한번 가면 한 달 또는 몇 달씩 지내다 왔죠. 버스에서 내려 엄마 손을 놓고 외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그게 어린 마음에 그렇게 싫었어요. 외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아도 맏이라고 엄마 품을 떠나야 하는 게 서러웠던 겁니다. 그게 차를 못타는 트라우마로 남고요.”

자신 안의 장애를 정면으로 마주한 그는 극복할 용기도 생겼다. PBM교육 이후 사업을 하면서 걱정, 근심이던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힘든 것은 하늘이 주는 선물이다. 네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주는 것이니 힘들다면 네가 그만큼 힘이 생긴 거야.’라는 조언이 그대로 와 닿았다. 그때부터 그는 제대로 웃기 시작했다. 환해진 그의 얼굴을 보며 주변에서는 “얼굴이 바뀌었다. 항상 근심, 걱정이 많고 피곤해보였는데, 이제는 돈이 굴러들어오는 환한 얼굴이 되었다.”고 말했고, 단골손님은 “어디 좋은 데 갔다 오셨어요?”라며 궁금해 했다.

그는 사람들과 유대관계도 좋아지면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살아온 경험과 뇌교육명상을 하며 통찰하게 된 것을 공감가는 예화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네일을 하려면 손을 마주잡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면 속마음도 털어놓게 되는데, 넋두리나 자기자랑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녀교육, 극복하고 싶은 고민 등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니까 손님들도 더 좋아하더군요.

엄마들이 많이 오는데, 가슴이 막혀 너무나 답답하다고 파스를 붙이고 다닌 분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고유한 질병이라는 화병때문에 어떻게 하면 화를 다스릴지 고민하는 분도 많은데 그 감정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시더군요. 그래서 뇌교육명상을 하며 마음의 힘을 키울 것을 많이 권합니다. 사돈어른도 뇌교육명상을 하더니 가슴이 시원해서 제일 좋다고 하시더군요.”

그는 자신의 조언을 듣고 뇌교육명상수련을 한 분들의 감사를 많이 받았다. “제 권유로 뇌교육명상을 한 분이 명상전문과정인 마스터힐러 교육을 가면서 ‘제 생명의 끈을 잡아주어 고맙습니다’라는 문자를 주셨어요. 지인 중 우울증으로 병원을 다니고 약을 들면서 주변 가족들도 힘들게 하는 걸 봤는데, 본인이 오랫동안 우울하게 지내니 충격이 컸던 분이죠. 저보다 먼저 교육과정을 거쳐 당당해진 모습이 정말 멋졌습니다.”

그도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을 밟았다. “간절하게 원하고 선택하면 되더군요. 열심히 일하는 게 교육가고 싶어서였죠.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교육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지금 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마음으로 통하는 내면의 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배운 힐링법도 활용해서 손님들의 건강을 돕고 있다. 그는 “숨을 편안하게 쉴 수 있게 3분 정도만 힐링해 주어도 눈이 밝아지고, 머리에 쏠렸던 열이 내려간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제가 교육으로 귀하게 받은 것이니 귀하게 전합니다.”라며 “제 이야기로 힐링을 받고 상대방이 행복해진 것 같은데, 사실 그걸 보는 제가 더 행복하더군요.”라고 하며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최근 뇌교육명상의 하나인 BHP(Brain Education Healing Point)명상이라는 자가힐링법을 200명에게 전했다.

김욱현 씨는
김욱현 씨는 "‘누구라도 뇌교육명상을 해보면 삶이 달라지고, 풍족해질 텐데’라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부자인 것이 중요하죠."라며 앞으로 사람들의 심력과 뇌력을 키워주는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지금 자신이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서 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가족에게 맞추려고만 했는데, 중심축을 자신을 두고 제 자신을 바라볼 줄 알게 되니까 상대가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더군요. 제가 다니는 절의 스님도 ‘보시나 공들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게 잘 안 되기 때문에 수행을 하는 거다’라고 했는데 공감이 갑니다. 제가 편하게 살림만 살다가 40세가 되서야 바뀐 게 아깝다고 하면, 같이 수련하는 어르신들이 ‘난 70세에 바뀌었는데 뭘 그래. 지금부터 신나게 살면 되지’라고 하세요. (하하)”

그는 앞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심력과 뇌력을 키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바쁜 일상에 쫓겨 미루었던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도 갖추기 위해 도전할 계획이다. “주변에 아프거나 힘든 사람을 보면 저절로 손이 갑니다. 저는 ‘누구라도 (뇌교육명상을) 해보면 삶이 달라질 텐데, 풍족해질 텐데’하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부자인 게 중요하죠. 물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긴다는 걸 제가 체험했으니까요.”

현대인이 겪는 병의 대부분이 심인성 질환이고, 스트레스 탓이라고 한다. 스트레스와 장애를 이겨내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을 격려하고 돕는 김욱현 씨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