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2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잖아요. 저는 40대인 지금과 절대 바꾸고 싶지 않아요. 뇌교육명상이 제 40년 인생을 바꾸어 놓아서 행복하니까요.”

현재 NGO단체인 지구시민운동연합 인천지부 관리국장으로 활동하는 김정화(42) 씨는 타오국학기공동호회 회장을 맡고 노인정에서 국학기공강사로 활약하며, 어릴 적 꿈꾸던 대로 학생들과 친근하게 교류하는 선생님의 꿈을 이루었다.

뇌교육명상을 통해 소심하고 무기력했던 삶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인생으로 전환한 지구시민운동연합 인천지부 김정화 관리국장. [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을 통해 소심하고 무기력했던 삶에서 건강하고 활기찬 인생으로 전환한 지구시민운동연합 인천지부 김정화 관리국장. [사진=김경아 기자]

그러나 그녀는 늘 소심하고 체력이 약했다. 대인관계가 어려워 대학졸업 후 직장을 두세 달밖에 다니지 못하고 몇 번 옮기다 그만두어 사회생활 경험이 적었다. “어릴 적부터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죠. 대학은 유아교육과를 가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전통복식과를 갔는데, 그때도 힘들었어요. 팀을 이뤄서 한복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웠어요. 나중에는 탈출구 마냥 결혼을 했죠.”

결혼 후 학습지교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라 편할 줄 알았는데 막상 교육문제에 예민한 엄마들을 상대해야 했다. “주변 분들이 ‘한 달 버틸 거다. 그 전에 그만 둔다.’며 쑥덕쑥덕 하는 모습을 봤죠. 반발심이 생겨서 1년은 버티자고 결심하고 2년 반 정도 한 게 제일 긴 직장생활이었어요.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게 제게는 힘들었어요.”

그런 그가 뇌교육명상을 하게 된 것은 둘째아들 때문이었다. “태어났을 때 정수리부터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더니 한 달 만에 귀도 찢어지고 점점 아래로 넓게 퍼져갔어요. 다리오금과 발등, 발바닥까지 진물이 났죠.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 때는 아이가 발을 딛고 걷지 못해서 결석한 때도 있었고, 뛰어놀고 싶어도 운동을 할 수가 없었죠. 병원과 한의원을 다니고 건강식품까지 찾으며 치료를 해도 그때뿐이고, 약을 끊으면 2~3배 더 심해지더군요. 더 이상 방법도 없을 것 같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면 좋지 않을까 하며 문득 명상을 하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장을 가던 길에 우연히 주안센터에 들러 상담을 받았죠.”

타오국학기공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수련하는 모습. [사진=본인제공]
타오국학기공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수련하는 모습. [사진=본인제공]

정화 씨는 센터에 들어섰을 때 밝고 따뜻한 분위기에 끌렸다. 상담 후 원장님은 아이가 적응할 때까지 엄마가 함께 다니라고 조언했다. “아이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돈을 써도 저를 위해서 돈 쓰는 게 아까워서 망설였는데, 한 달만 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때 원장님은 제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가 변화하지 못할 것 아셨던 거예요. 센터에 다닌 지 이틀 만에 아랫배 단전에 힘이 생기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쌍둥이를 낳고 난 후 버스 한 정거장 거리를 채 못 걷고 숨이 차고 발뒤꿈치가 아팠는데, 뭔가 힘이 생겼죠. ‘아! 살겠다.’라는 마음이 들어 다음날 센터 갈 생각만 했죠.”

그는 한 달 후 심성교육을 가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친 적도 없고요. 심성교육에서 제 자신을 바라보고 늘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소리 내어 울었어요. 사실 제 엄마도 우는 걸 못해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못해 힘들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가슴에 쌓아두었던 것을 풀어내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니까 가슴이 정말 시원하더라고요. 교육을 마치고 나왔을 때 고개를 들어서 눈길이 닿는 끝까지 바라보았어요. 늘 제 발밑만 보고 다니다가 멀리까지 보니까 눈앞이 다 환했어요. 세상이 넓고 밝고 선명해보이더군요. 매일 보는 세상이 달라보였죠.”

심성교육을 다녀온 후 정화 씨는 힘이 생기고 목소리가 탁 트였다. 평소에 목소리가 작고 우물우물 거려서 사람들이 항상 ‘뭐라고?’라며 되물으며 답답해했는데, 그런 것이 사라졌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는 제 꿈에 대해 원장님께서 강사가 되어서 그 꿈을 이루어보라고 했을 때 처음에 믿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점차 제 꿈에 다가갈 수 있었죠.”

정화 씨는 센터 내 국학기공 동아리인 타오기공동호회에 가입해 2017년 여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수련을 했고, 국학기공 강사자격을 취득했다. 처음 5~6명으로 시작한 동호회는 15~16명씩 출석하는 동호회가 되었고, 늘 빠지지 않는 정화 씨가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팀을 이뤄 전국 대회에 출전했다.

노인정 국학기공수련지도와 행복나눔교실 아이들을 위한 수련 보조강사, 시각장애인대상 건강교실 보조강사를 했고, 친환경 세계시민 강사자격과 나라사랑 강사자격을 갖췄다.

“사람들 앞에서 강의한 경험도 없고, 예전에 마이크를 잡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창피했던 경험 때문에 강의를 나간다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USB를 작동하는 것도 서툴 정도였죠. 하지만 강사전문 교육도 받았고, 원장님이 강의용 PPT를 만드는 법부터 강의하는 법, 강사 소개서를 쓰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셨어요.

한 중학교에 세계시민교육 첫 강의를 나갔을 때 담임선생님도 합석해서 많이 떨렸어요. 티 내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하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죠. 서로의 관심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강의를 마쳤어요. 나 자신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더라고요. 뇌교육명상을 하며 단전에 힘이 생기니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뭍어나오더군요.”

김정화 국장은 지구시민운동 활동과 학생들에게 인성교육, 힐링캠프, 나라사랑 교육 강의를 하는 강사로 활기찬 나날을 보낸다. [사진=본인 제공]
김정화 국장은 지구시민운동 활동과 학생들에게 인성교육, 힐링캠프, 나라사랑 교육 강의를 하는 강사로 활기찬 나날을 보낸다. [사진=본인 제공]

그는 여러 초등학교, 중학교 자유학기제 수업으로 세계시민교육을 강의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흥미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강의안 준비를 하면서 뇌교육명상의 다양한 신체활동을 응용하죠. 사춘기 중학생 수업을 갈 때는 먼저 명상을 하고 마음을 다잡고 갑니다. 수업 초반에는 호응을 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저도 지구를 사랑할 거예요. 이 수업은 꼭 다시 하고 싶어요.’라고 설문지에 답한 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이들이 찾는 선생님이 되는 걸 상상만 했는데 실제 그 꿈을 이룬 거죠. 매일 매일 감사해요.”

정화 씨가 사는 세상이 한번 더 넓어진 계기가 있었다. 뇌교육 전문가 과정인 마스터힐러 교육 첫 단계로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메소드)교육을 갔을 때였다. “제 자신을 깊이 통찰하면서 알게 된 건 그동안 좋은 정보를 스스로 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넌 못해,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라며 부정적인 정보를 끊임없이 주고 있더군요. 제 자신이라고 여겼던 감정과 생각을 분리해서 지울 수 있다는 걸 안 것이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봄 햇살에 뽀송뽀송하게 빨래를 한 기분이었죠. 심성교육을 받고 나서 저 멀리까지 보게 되었다면, 이제는 넓은 하늘과 땅을 입체적으로 자유롭게 다 보게 되었죠. 시야가 탁 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정화 씨가 마스터힐러교육을 선택한 것은 4명의 자녀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 교육관련 서적을 정말 많이 있었죠. 내용이 좋은데 막상 제 삶에 적용할 게 많지 않더군요. 짜증이 나면 약한 아이들에게 쏟아내니 감정조절이 필요했고요. 아이를 어떻게 제대로 키울지 제게는 갈급했어요. 엄마의 의식이 성장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그 상태에 머물러 대물림한다는 게 제게는 끔찍했거든요.

교육에서 제 자신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바로 체인지할 수 있어요. 전에는 제가 내는 화가 나라고 생각했는데, 분리해서 보게 되었죠. 화를 아예 안 낼 수는 없어도 대처 방법이 달라졌죠. 화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고집을 부리고 잘못되었다고 느껴도 사과를 미루는데, 지금은 즉시 사과할 줄 알게 되었죠. 감정표현이 솔직해지니 소통도 더 잘 되고요.”

그는 마스터힐러교육을 받고 중학생인 딸아이에게 예전 일을 정식으로 사과했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부모 참관수업을 간 적이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발표를 잘 하는 것 같은데, 우리 딸만 버벅거리더군요. 그래서 30분이나 화를 냈어요. 딸에게 기억하느냐고 했더니, 딸이 끄덕였어요. 그때 화를 냈던 것은 딸에게서 싫어하던 옛날 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며 늦었지만 이 사과는 꼭 하고 싶었다고 했죠. 그 후로 딸아이와 소통이 잘 되는 사이가 되었죠. 소심했던 딸이 자기표현도 잘하게 되고요.”

정화 씨는 “제가 변화하니까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아이들 건강까지 달라졌어요. 제가 허약할 때는 아이들도 병원을 자주 갔는데, 제가 건강해지니 아이들도 병원 가는 일이 드물게 되었어요. 제 표정이 밝아지고 자주 웃으니 아이들도 절로 웃고요.

전에는 제가 안 웃어도 아이들이 웃기를 바랐고, 내가 행복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랐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제가 먼저 행복해지고 저 자신을 존중할 줄 알게 되어야 하는 것이더군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자신을 와칭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해요. 내가 나를 막 대하니, 아이들이 소중하다 생각하면서도 막 대하게 되거든요.”라고 했다.

김정화 씨는
김정화 씨는 "내가 웃지 않아도 아이들은 웃기를 바라고, 내가 행복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하지만 그건 아니예요. 제가 먼저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되는 것이더군요."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의 쌍둥이들이 장이 약해 설사를 자주해서 해열제부터 먹였지만, 지금은 정화 씨가 배를 잘 문질러주고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는 것으로도 증상이 멎는다고 한다. 아토피가 있던 중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은 이제 아토피에서 많이 벗어났다. “증상이 조금 남았는데, 그게 햄버거처럼 인스턴트음식을 먹어서라는 걸 그 아이도 알고서 조절하고 있죠.”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강의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세계시민교육이나 친환경, 나라사랑교육, 인성교육, 힐링 캠프 등 강의가 들어오는 건 무조건 했어요. 강의의 종류도 많고 배우는 게 힘들 때마다 마스터힐러 교육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김정화 씨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뇌교육명상을 하는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공동육아’이다. “원장님과 논의 중인 꿈입니다. 뇌교육과 관련해서 체조, 명상, 국학기공, 세계시민교육, 인성교육, 지구시민 친환경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으니까 유기적으로 연대해서 바람직한 유아교육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 꿈을 마을공동체로 확산하여 어린 시절부터 자기 자신을 알고 존중하는 자존감이 높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행복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잖아요”

3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같은 사람일까 할 정도로 자신을 변화시킨 김정화 씨는 가정의 변화를 만들어냈고, 이제 사회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