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이렇게 살기 싫은데 다르게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안고 살았죠.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매일 1일 3교대를 하며 환자를 돌보는 간호조무사 장은성(33) 씨는 지금까지 인생 중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더욱 바빠진 일상에서 환자들의 많은 요구를 받아도 짜증이 나지 않고 절로 나오는 환한 웃음을 대하는 환자들은 그를 ‘산소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뇌교육명상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 하는 기쁨을 찾은 장은성 씨. [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으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 하는 기쁨을 찾은 장은성 씨. [사진=김경아 기자]

은성 씨는 어릴 적 쾌활하고 친구도 많고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소녀였다. 그러나 1997년 아버지가 추락 사고를 당해 회복하는 중 IMF(외환위기)가 터졌고, 회사가 어려워진 가운데 동업을 하던 동료가 재산을 정리해 외국으로 도주하는 일까지 생겨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이듬해 막내 동생을 태어나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뻔했고 그 이후로 몸이 좋지 않아 늘 아프셨다. 아버지가 직접 땅을 사서 지었던 4층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외할머니가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단칸방에서 사는 것도 조금 힘들었지만 학교에 가면 서울말을 쓴다고 반 친구들이 ‘재수 없다’고 대놓고 싫은 티를 내며 막말을 했다. “제가 아이들을 무시한다는 없는 말도 생기더군요. 어느 청소시간에 제가 화분담당이어서 물을 주며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다 문득 싱싱한 모습이 예뻐서 혼잣말로 ‘잘 자라라’라고 했는데, 그걸 들은 아이가 ‘화초하고도 대화하는 이상한 애’라고 소문을 냈어요. 서울에서 태어나 13년간 써온 말투를 갑자기 바꿀 수도 없는데 그것만으로 따돌림 당하는 게 억울했어요.”

그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같은 중학교에서 진학한 친구들로 인해 계속 오해를 받았다. 친구 세 명을 제외하고 학교에서는 너무나 괴로워서 ‘자살하면 저 아이들 이름을 유서에 남길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심각했다. 은성 씨에게는 그것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정신적 상처로 남았다. 그 시절이 지나고 나서도 불쑥불쑥 그때 생각이 떠오르면 억울함과 분노가 차올랐다.

“학교에서는 괴로워도 집에 오면 어린 막내 동생을 돌보며 위로를 받았어요. 저를 잘 따르는 동생이 정말 소중했거든요. 워낙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본인이 사고를 당한 후에 ‘막내는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엄마가 늘 몸이 약해 아프시니 수학여행도 포기하고 동생을 돌봐야 했지만 당시에는 제가 마땅히 해야 하는 몫이었죠. 지금도 동생은 ‘엄마가 날 40%를 키웠다면 누나가 60%를 키워주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바로 간호학원을 다녀 스물한 살 때부터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근무가 힘들고 때로 보호자들이 불안한 마음에 의심도 하고 욕설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의지하는 환자들을 돕고 쾌유하는 모습에 보람도 커서 긍지를 갖고 일했다. 그러나 병원 밖에서는 별것 아닌 일처럼 취급받을 때가 많아 최선을 다해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막내 동생이 ‘우리 누나가 간호조무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무시당했다고 울 때는 속상하더군요.”

장은성와 함께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은 동기들. 장은성 씨는
장은성 씨와 함께 한 단마스터 동기들. 장은성 씨는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고 내 뇌의 주인이 돼서 내 삶을 다스려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방송통신대학을 다니고, 필요한 자격을 따고 엄마 병간호와 동생 교육을 맡아 정말 벅차게 살던 23살 때, 우울증세와 불면증으로 시달렸다. 6개월이 넘도록 약을 복용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간호사가 ‘더 이상 두면 안 되겠다’며 단월드 센터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뇌교육명상을 하고 일주일이 되자 잠도 잘 오고 활력이 생기더군요. 하루는 우울증 약을 깜박 잊고 안 먹었는데도 괜찮아서 약도 줄였죠.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엄마가 많이 아프니 4~5개월 다니고 못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은성 씨는 결혼을 했다. 야간 근무를 하고 와서도 남편의 도시락을 싸주고 휴일이면 시댁에 가서 집안일을 했다. 남편의 일을 도우며 힘이 들고 쉬는 날이 없으니 천식이 생겼다.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으니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시집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피로가 쌓이고 쌓인 상태에서 우울증 초기 증상을 겪고 있을 때, 시댁식구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하는 마음에 멀리 시댁이 보이는 13층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잡고 통곡을 했다.

“그때 문득 10년 전 단월드에서 명상을 했던 행복한 기억이 떠올랐죠. 집 주변에서 센터를 찾아보니 양산에 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센터를 간 첫 날 체조를 하고 명상을 하니 잡념이 사라졌어요.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잊고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한 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심성교육을 가려고 준비하면서 미뤄두었던 고막이식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치료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대학병원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 입원했다. “우울증세로 내 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몇 번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순간 죽음이 다가오자 정말 무서웠어요. 중환자실에서 군입대를 하는 막내 동생을 평생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울었죠. 그리고 10년 만에 겨우 단월드에 돌아왔는데 하고 싶은 명상교육은 꼭 다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살고자 의지를 냈어요.”

한 가지 변화도 있었다. 입원 후 그동안 원망하고 미워했던 남편이 매일 저녁 풍선처럼 부푼 얼굴과 목 등을 주물러 주면서 ‘괜찮다. 예쁘다’며 위로했다. 엄격하기만 하던 아버지도 수시로 들러 종류별로 죽을 사오며 속 깊은 사랑을 나타냈다. 단월드 양산센터에서도 지도자와 회원들이 안부를 묻고 챙겼다. “처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꼈죠. 내가 아버지나 남편에 대해 오해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명상교육을 꼭 가고 싶었어요.”

은성 씨는 두 달의 병원생활과 요양을 마치고 단월드 센터를 나가 건강을 회복하고 소원하던 심성교육을 갔다. “제 삶을 성찰하면서 그동안 내가 피해자라는 의식 속에 나를 가두었다는 걸 알았어요. 교육 전에 센터 원장님께서 ‘착한 사람이 좋은 사람일 것 같죠? 내가 착한 사람이 되려면 주변사람들을 악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라고 던졌던 질문이 비로소 이해가 되면서 제 머릿속에서 확 깨어나는 걸 느꼈어요. 늘 희생했다고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려고 태어난 가해자인양 억울해했죠.

말투부터 다른 친구에게 괜히 자존심이 상해 심술을 부린 친구들, 1남 6녀의 장남으로 나서 힘들게 살아오신 아버지가 자신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해 저를 채찍질하셨던 마음, 표현하지 못했던 남편의 성격 등이 이해가 되었죠. 무엇보다 전혀 소중하지 않게 여겼던 제 자신이 사랑스러운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건 행운이었어요.”

지구시민운동 거리캠페인에 참가한 장은성 씨. [사진=김경아 기자]
지구시민운동 거리캠페인에 참가한 장은성 씨.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심성교육을 통해 발견했던 감정들을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메소드)교육에서 실제 하나하나 풀어내고 자신 안에 있는 강한 힘과 용기를 발견했다. “저를 사랑하는 게 잘 와 닿지 않던 습관이 사라졌어요. 제 자신을 인정할 수 있었죠. 교육에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라고 한계 지었던 벽을 뚫고 나니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더군요. 제 자신이 자랑스럽고 좋았어요.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게 아니더군요. 그냥 존재 자체로 인정이 되고 제가 세상에 태어난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겠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요. 제게는 정말 파워를 키워주는 교육이었죠.”

PBM교육 이후 장은성 씨의 삶에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뇌교육의 원리를 생활 속에 실현했다. “전에는 미리 걱정하고 불가능할 것 같으면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았는데 하나씩 도전하고 이뤄내면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쌓여갔죠. 아버지도 단월드센터에서 골드회원(평생회원)으로 수련을 받게 되셨고,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지 않았어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니 조바심이 없어지고 관계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더군요. 결혼 후 28kg이나 늘어나 수많은 노력에도 빠지지 않던 체중도 예전처럼 먹어도 교육 후 2개월 만에 6kg이 빠지더니 족저근막염도 호전되고 쉽게 잠 못 들던 습관도 사라졌죠. 지금은 19kg까지 빠졌어요. 무겁던 감정이 빠지니 살도 빠진 것 같아요. 게다가 마스터힐러 교육 과정을 밟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고 힐링하는 데서 진짜 기쁨을 찾았어요. 내 뇌의 주인이 돼서 내 삶을 다스려봐야겠다는 결심도 섰고요.”

그는 점심시간이면 환자와 동료들을 모아 손을 주물러 자극하는 손 활공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잠을 못자는 환자에게는 명상을 가르쳤다. 주간근무를 마치고 단월드 양산센터에서 수련을 한 후에는 막차버스가 오기까지 1시간 동안 주변사람들에게 BHP(Brain Education Healing Point)명상법도 전하고, 야간 근무일 때는 인근 시청이나 상가, 거리에서 시민들의 어깨를 풀어주고 건강법을 전했다. 국학기공대회에도 출전하고 지구시민운동에 참여해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솔선수범 실천하고 알렸다.

장은성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건강과 행복을 전하는 국제뇌교육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장은성 씨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건강과 행복을 전하는 국제뇌교육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마스터힐러 전 교육과정을 마친 졸업식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 야간근무를 마치고 2시간 만에 출발해 천안에 모인 동기들과 연습을 하고, 열정적인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마스터힐러 교육은 이전까지 33년의 삶보다 훨씬 희망차게 앞으로 살아갈 새 길을 찾아준 교육이었어요. 보람차고 행복해서 매 순간 행복 마일리지가 쌓이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사는 삶이 의미 없고 화만 나거나 내가 사는 이유를 찾고 싶다면 꼭 받으라고 해요. 분명 매일 보고 살던 가족, 내 직장이 달라 보일 거예요.”

장은성 씨는 지금 새로운 꿈에 가슴이 벅차다. “병원 안에서 홍익을 실천하고 환자들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사랑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더 많은 분들을 만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어요. 국제뇌교육지도자(IBEL, International Brain Education Leader)로 활약하고 싶어서 교육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지금 공부하는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시험도 그 중 하나죠.”

뇌교육명상을 통해 활력과 삶의 기쁨을 찾은 장은성 씨는 주변을 환하게 하는 에너지로 더욱 활기찬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