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마오리어로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 길고 하얀 구름의 땅)라는 이름이 있는데 그 유래가 꽤 흥미롭습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Maori) 족의 조상인 쿠페 선장과 아내가 낚시를 나가서 이 땅을 발견하였습니다. 멀리서 쿠페가 정박하려고 다가갈 때, 아내는 뉴질랜드 특유의 만년설을 보고 "저기는 섬이 아니라 길고 흰구름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렇게 전설처럼 내려오는 정착 시기는 1000년 전 경이라고 합니다. 제가 만났던 마오리 친구들은 자신의 선조가 신비로운 섬 하와이키(Hawaiki)에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자연권을 인정한 나라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마지막에 정착한 땅 중 하나인데요, 개발의 역사가 짧은 만큼 순수한 자연을 보존해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2.5배 정도 면적이지만 대한민국 면적만큼이 국립공원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그 규모부터 웅장하죠. 마오리 족은 자연과 통하고자 하는 문화와 정신이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자연에 인격을 부여한 것도 뉴질랜드입니다. 마오리 족은 160년 간의 긴 소송 끝에 의회로부터 2017년 북섬의 황가누이 강에 자연권을 인정받았습니다. 강을 인격체로 인식하며 강의 건강과 사람들의 건강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며 정체성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만큼 자연과의 연결성을 중요하게 인식합니다.

뉴질랜드가 영국령이긴 하지만, 마오리족은 용맹한 기개로 비교적 그들의 말과 문화를 잘 지켜왔습니다. 지금도 뉴질랜드 공식행사를 할 때는 항상 마오리 언어와 영국의 영어를 공식 언어로 함께 사용합니다. 명상센터가 있던 북섬 케리케리(Kerikeri)는 특히 마오리 족의 흔적이 잘 살아 있어요. 그들의 눈빛에서부터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오리 조상 쿠페가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던 곳이 서쪽 해안인 호키앙아(Hokianga) 항이었는데요. 그곳에는 숲의 아버지와 숲의 신이 있는 곳입니다(수령이 2천 년인 카우리나무 타네마후타와 3천5백 년인 테마투아나헤리의 이름입니다). 이곳을 안내하는 마오리 족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세대를 위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

긴 머리를 묶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로 유쾌한 농담을 자주 던지던 숲 해설사 빌리와 처음 숲길을 갈 때였습니다. 손가락으로 나뭇잎을 스치며 걸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나무들이 잘 있었는지 인사하는 거야’라며 웃었습니다. 나무 앞에 서면 카우리나무에 관한 스토리를 들려주고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숲과 공명하여 BGM(배경음악)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숲의 신’ 타네마후타 앞에 들어설 때면 포우라는 소리로 신에게 존경을 표하고 입장을 허락받는 의식을 하였습니다.

“큰 나무든, 작은 나무든 나무가 없이는 우리 인간도 없습니다. 당신이 뉴질랜드가 아니라 지구 어디에서 왔던 이 자연을 함께 지켜야 합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과 후대가 이 자연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늘 숲에서 전하던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를 안내하던 또 다른 여성 가이드 미리파야는 종종 열 살 남짓한 손녀를 데려왔습니다. 숲을 걸으면서 손녀에게 배 아플 때 먹는 열매, 두통이 있을 때 먹는 열매 등을 알려주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와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이 보였습니다. 그곳이 고향인 이들은 젊을 때는 돈을 벌러 도시나 호주로 나가는데요. 우리를 안내하던 빌리와 파파빌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들의 정신과 문화를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내 이름은 ‘하늘과 땅’입니다”

시내에서도 마오리족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인사를 하며 이름을 물어보면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동물관리인으로 일하던 한 청년의 이름은 ‘파파랑이(PapaRangi)’였는데, 대지의 어머니를 칭하는 파파투아누쿠(Papatuanuku)와 하늘의 아버지인 랑이(Rangi)에서 딴 이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름 뜻이 ‘하늘땅’인 거지요. 또 어떤 여자아이의 미소가 예뻐서 인사하고 어머니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아름다운 달빛’이라고 하더군요. 마오리어로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름을 듣고 심쿵(심장이 쿵)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마오리 족 전통 공연 후 마오리족 공연단이 명상단과 함께 용맹함을 드러내는 포즈를 짓고있다. [사진=조해리]
마오리 족 전통 공연 후 마오리족 공연단이 명상단과 함께 용맹함을 드러내는 포즈를 짓고있다. [사진=조해리]

뉴질랜드에서는 팔, 어깨, 다리뿐 아니라 얼굴에까지도 문신을 한 마오리족이 많습니다. 마오리족 친구에게 문신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자신의 삶의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 혹은 어머니 가문의 역사, 전투에 나갔을 때 혹은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일들을 새기는 거야.” 역사 그림책과도 같기에 문신을 보고 부족을 알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초록빛, 하늘빛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자연을 닮아 가는가 봅니다. 성격이야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뉴질랜드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이 여유롭고 배려심이 많았습니다. 운전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구와 눈이 마주치든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나중에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특히 도시를 벗어나면 신호등이 거의 없었지만, 교차로에서 서로 눈과 손으로 인사하며 양보를 하거든요. 도로가 오래되어 공사하는 곳도 있었는데요. 도로를 통제하던 작업자와도 마주치면 눈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자신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는 순수한 에너지가 있는 땅

명상여행단과 함께하던 버스회사 중 유난히 기사들이 친절하여 뉴질랜드의 감동을 배가하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사장을 만나 인사를 하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영국에서 태어났던 그는 뉴질랜드에서 성장했습니다. 20살 때 스쿨버스를 하는 권한과 버스를 한 대 구입한 그는 성실하게 버스 운행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마오리 족인 아내에게 “나와 함께 운전을 하지 않겠소?”라고 하여 버스 한 대를 더 구입하였습니다. 다음해에 친구를 찾아가 “함께 버스 운전을 하자.”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우리 동네만 말고 멀리 오클랜드(Auckland, 교육과 경제 중심지)가는 여행도 만들면 어때?”라고 제안하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약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70여 대의 버스를 운행하고, 북섬의 큰 도시뿐 아니라 남섬까지 운행하며 약 200명의 직원이 있는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성실하고 신중한 그는 기사와 직원을 뽑을 때 믿을 수 있는 사람, 가족 같은 사람을 뽑는다고 했습니다. 인성을 중요시하던 그는 성공의 비결을 묻자 “내가 할 일을 하면서 한 걸음씩 성장해온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과 명상단. 현지인들은 얼스빌리지에 관한 내용이 담긴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 (I’ve decided to live 120 years)' 책을 보며 반가워했다.[사진=조해리]
뉴질랜드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과 명상단. 현지인들은 얼스빌리지에 관한 내용이 담긴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 (I’ve decided to live 120 years)' 책을 보며 반가워했다.[사진=조해리]

 

정리하다보니 뉴질랜드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경치 좋고 트인 곳에 가면 마음이 열린다고 하잖아요. 자연 그대로인 뉴질랜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더욱 자연을 닮아 있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다섯 중 네 명은 “가족”이라고 답했었습니다. 그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뿌리를 생각하더군요.

자신과,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순수한 에너지가 있는 곳, 뉴질랜드.

길고 흰 구름의 땅에 서서 꼭 그 사랑을 직접 느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