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무겁던 신본주의 화풍이 르네상스를 맞아 좀 더 인간적으로 환치되기 시작하였다. 절대적인 존재를 향한 복종과 믿음만을 무겁게 강조한 것이 아니라 화가 사람들이 일반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에 네덜란드의 황금기에 활동한 걸출한 화가 렘브란트 반 라인(1606~1669)이 있다. 그는 절대적 존재를 향하는 흔들리는 인간의 고뇌마저 빛으로 바꾸어주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인간 생명의 내면적인 빛을 중후하고도 거룩하게 빚어낸 것이다.

젊은 날 그는 최고의 영광과 성공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점차 영광도 재산도 사라져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교만했고 자신만만했고 누구도 자기 위에 없었다. 말년의 그는 극도의 가난과 좌절, 후회, 회개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작업에 매진한다. 그런 삶의 경험으로부터 사람에 따라 '인류가 낳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지칭하는 '돌아온 탕자'라는 명작이 나온다. 그런 그에게도 인물화와는 달리 풍경화는 주제가 아니라 가끔 그려보는 여기와 같은 장르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두꺼운 장막으로부터 한줄기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약 200년 뒤에 그 장막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군의 화가가 프랑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빛은 흘러나왔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인상파의 주장이다. 그들은 내면의 빛보다도 자연의 빛을 전폭적으로 화면에 투사하기 시작하였다. 그것들이 잔상처럼 화가 각자의 인상에 따라 각인되도록 야외에서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화가들은 드디어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와 태양에서 직사되는 빛의 은총을 마음껏 구가하게 된 것이다. 외광파라고 불리니 유럽판 실경산수화의 대두이다.

쿠루베의 '세상의 기원'을 감상하는 관객. [사진=장영주]
쿠루베의 '세상의 기원'을 감상하는 관객. [사진=장영주]

 

오직 자기의 인상만을 향한 실경산수화, 곧 인상파의 중심에는 클로드 모네가 있다. 모네에게 16세 연상인 스승 외젠 부댕(1824~1898)이 있었다. 부댕의 고향이 바로 오래되고 아름다운 작은 포구 옹폴뢰르이다. 부댕은 거의 독학으로 고향 옹폴뢰르를 비롯하여 해경화를 즐겨 그림으로써 외광파의 시작을 알린다. 부댕은 일찍이 모네의 싹을 알고 파리에 진출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태양의 빛을 색깔'로 한껏 끌어온 모네와 인상파는 이렇게 탄생한다.

옹폴뢰르는 작은 포구이지만 중심가에는 많은 화랑이 성업 중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이전에 파리에서 가장 가깝고 멋진 포구였으므로 부유한 파리지앵들의 휴식처였다. 바캉스로 놀러 온 부자들을 그려서 생활고를 이겨가는 부댕과 모네의 모습이 오늘도 포구에 어른거린다.

두 개의 코끼리 바위

옹폴뢰르를 지나 파리 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다가 바닷가로 굽어 들어가면 녹음 우거진 숲 사이로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전통적이기 하지만 여느 농가보다 화사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바로 사실파 대가 쿠르베, 부댕, 모네 등이 즐겨 찾았던 '에트르타' 해변이다.

굵은 자갈과 급경사로 이어진 해변에는 수영하는 관광객의 웃음소리 높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녹색의 산이 수직으로 바다로 흘러들어 절벽을 이룬 끝에는 우리의 태안이나 울릉도에서 볼 수 있는 코끼리 형상을 한 흰 바위가 파도에 맞서 올연히 서 있다. 활처럼 굽은 해안의 양쪽에 비슷한 모양의 코끼리 바위가 서있다. 화가들은 왼쪽 바위를 더 자주 그렸다. 오른쪽 절벽 위에는 오래된 성당이 있어 사람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다. 몇 해 전 그 성당이 매물로 나왔는데 주민의 성금으로 팔려 나가는 것을 저지했다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니 쿠르베의 폭풍이 지난 뒤의 거친 해변, 모네의 파도가 빛 알갱이처럼 부서지는 그림이 뇌리에 스쳐간다. 스케치북을 꺼내 양쪽 절벽을 다 그리고 해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곳을 먼저 다녀간 화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일행 중 한 분이 머리칼을 날리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사색에 잠겨 있다. 아마도 같이 못 온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듯하다.

"그대여, 그리움이란
형체도 무게도 없답니다.
그대란 함께 있어도
그리운 그대일 뿐.
오직 자신을 깨달아야만 사라지는 신기루랍니다."

마음속으로 그분들의 진정한 행복을 빌어본다.

'세상의 기원'

기차역을 개조하여 미술관으로 만든 오르쉐(Orsay)미술관은 루부르(Louvre)미술관, 퐁피두(Pompidou)센터 미술관과 더불어 파리의 3대 미술관이다. 루브르 미술관은 고대부터 19세기, 퐁피두미술관은 1914년 이후 지금까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면, 오르쉐미술관은 그 중간을 이어 주고 있다. 밀레의 '이삭줍기', 앵그르의 '샘',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조각가 로댕의 '지옥문', 부르델의 '활쏘는 헤라클라스' 등 인류의 주옥같은 명작들이 즐비하다. 엄격한 통제 없이 관객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근접 감상과 연구를 할 수 있다. 루브르 미술관의 보물이 다빈치의 '모나리자'라면, 파리지앵들이 은밀하게 아끼는 오르쉐미술관의 보물은 바로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의 '세상의 기원'이다.

쿠르베는 천사를 그려 달라는 주문에 “천사를 본 적이 없어서 그릴 수 없다."고 거부할 정도로 철저한 사실주의자이다. '세상의 기원'은 건강한 여자의 하체에 풍성한 음모가 주제이다. 그 부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가슴 위와 팔 다리는 생략하여 근접 촬영한 듯 사실감이 더욱 돋아난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놀라거나 피식 웃다가 이내 진지해진다. 이전까지의 누드화는 소위 '비너스 푸디카'라고 하여 손으로 유방과 음부를 가리는 포즈가 대부분이다. 쿠르베는 말한다. "남자들은 감히 여자의 성기를 그리지 못했어. 그들은 자신이 나온 곳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 나는 내 보물을 돌려주고 싶어. 인류에게 주고 싶어." 진정한 화가의 진솔한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