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던 우리 노동자들이 탄광 막장 벽에 쓴 글은 강제노역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인권을 유린당한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대일항쟁기 강제징용자는 600만 명에 이르며 200만 명이 돌아가셨다. 그러나 추정 100만 명, 밝혀진 것만도 40만 명이 넘는 희생자 유해가 일본과 중국, 태평양 군도에 방치되어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광복73주년을 맞아 15일 정오 광화문 북측광장에서는 민족운동단체와 7대 종교 및 민족종교계가 뜻을 모아 ‘8‧15광복절 민족공동행사-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를 열었다.

지난 15일 정오 서울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 35위를 봉환하는 국민추모제와 제 73주년 광복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이 열렸다. (위) 서울 서대문 순국선열사당에 임시 안치한 유해 35위를 국학원 등 주관단체 회원들이 모시는 모습. (아래)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국민추모제 제단에 모시는 모습. [사진=김경아 기자]
지난 15일 정오 서울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 35위를 봉환하는 국민추모제와 제 73주년 광복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이 열렸다. (위) 서울 서대문 순국선열사당에 임시 안치한 유해 35위를 국학원 등 주관단체 회원들이 모시는 모습. (아래)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국민추모제 제단에 모시는 모습. [사진=김경아 기자]

유해봉환행사는 10여 년 간 희생영령 위령제를 지내다 2014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2015년 북측과 실무협의를 거쳐 2016년 일본 국평사에 모셔진 강제징용자 유해 중 무연고 101명의 유골을 남녘땅에 송환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추진되었다. 2017년 8‧15광복절에 유해 33위, 2018년 3‧1절에 유해 33위를 봉환했으며, 이번에 3차로 35위가 봉환되었다.

이날 행사는 한국민족종교협회의와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 8‧15광복절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주최하고,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사단법인 국학원, 국학운동시민연합 등 민족단체가 공동주관했으며, 통일부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서울특별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한국종교인평화회의가 후원했다.

전날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을 통해 고국에 도착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 35위는 환향의식과 추모노제를 한 후 서울 서대문 순국선열사당에 임시 안치되었다. 광복절인 15일 아침 순국선열사당에서 국학원 등 주관단체 회원 등이 한분씩 안고 출발한 유해는 국민추모제가 열리는 광화문 북측 광장 제단에 모셔졌다. 이날 행사는 국민추모제, 제73주년 8‧15광복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 민족화합대축제, 총 3부로 이루어졌다.

1부 국민추모제에서는 ▲개식 타종 ▲국민의례 ▲분향 및 헌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7대 종교계의 헌화 및 추모의식 ▲대회사 및 추모사 ▲헌시와 헌무 등이 펼쳐졌다.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서 대회사를 하는 이정희 천도교 교령. 이날 행사에는 민족단체와 개신교, 불교, 천도교, 천주교, 유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7대 종교계가 함께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서 대회사를 하는 이정희 천도교 교령. 이날 행사에는 민족단체와 개신교, 불교, 천도교, 천주교, 유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 7대 종교계가 함께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대회장인 이정희 천도교 교령은 대회사에서 “다시는 이들처럼 슬프고 외로운 죽음이 없도록 할 것”을 다짐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노력하자. 오늘 유해 봉환은 이 일의 상징이고, 우리의 빚을 더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의”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모셨던 일본 동경 국평사 윤벽암 스님과 박성기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우원식 국회의원의 추모사가 있었다.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모신 일본 국평사의 윤벽암 스님이  유해 봉환의 과정과 의미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를 모신 일본 국평사의 윤벽암 스님이 유해 봉환의 과정과 의미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평사 윤벽암 스님은 “강제 연행당한 조선 사람들은 철도공사, 발전소 건설, 탄광과 광산에서 인권 없는 고역, 영양실조, 사고와 병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 죄악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당국은 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역사를 은폐하려 한다.”며 “더는 외세침략의 희생물이 될 수 없으며 식민지와 분단으로 얼룩진 20세기 과거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족광복인 통일을 이룩하자.”고 했다.

의열단이던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외손자인 우원식 국회의원은 축사에서 “너무 늦게 모셔서 죄송하다. 그동안 전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비협조와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었다.”며 “이제야 101위가 그리운 어머니 품으로 돌아와 넋이라도 위로할 수 있게 되었으나 아직 일본, 중국, 태평양 군도 등에 산재한 유해가 많다. 중단된 강제징용 피해자 실태 조사 및 봉환작업을 진행해 마지막 한 분이 모셔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

15일 열린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서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외손 우원식 국회의원이 축사를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15일 열린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서 독립운동가 김한 선생의 외손 우원식 국회의원이 축사를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우 의원은 “항일운동을 하다 러시아 먼 이국땅에서 돌아가진 외조부의 유해조차 찾지 못해 안타까운 후손으로서 그 절박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강제징용노동자의 유해를 봉환하는 일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라며 “일제 강제징용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선배들의 희생을 가슴깊이 새겨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나라로 만들겠다. 강제징용에 대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국민추모제는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도씻김굿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진혼무 공연으로 1부 행사의 막을 내렸다.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봉환식에서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도씻김굿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진혼무를 공연하는 모습. [사진=김경아 기자]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봉환식에서 장순향 한양대 교수가 진도씻김굿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진혼무를 공연하는 모습. [사진=김경아 기자]

2부 광복 73주년 8‧15광복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은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박우균 외장의 대회사를 비롯해 ▲독립유공자유족회 김삼열 회장의 기념사 ▲각계 축사 ▲태평양전재희생자유족회 선언문 발표 ▲남북공동 결의문 발표 ▲광복절 노래 제창 ▲ 일반인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이루어졌다.

강제징용 희생자 국민추모제에 이어 광복 73주년 8‧15광복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에서 대회사를 발표하는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사진=김경아 기자]
강제징용 희생자 국민추모제에 이어 광복 73주년 8‧15광복절 민족공동행사 기념식에서 대회사를 발표하는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사진=김경아 기자]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대회사에서 “우리는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핵 없는 한반도의 평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평화를 확고히 하는 것이 곧 일제의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일”이라며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자고 다짐했다.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 공동 주관단체인 대한국학기공협회 권기선 회장은 축사를 통해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 공동 주관단체인 대한국학기공협회 권기선 회장은 축사를 통해 "진정한 광복을 위해 역사광복, 민족정신 확립, 헌법적 가치질서 아래 홍익정신을 바탕으로 한 국민인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권기선 사단법인 국학원 부원장은 “대한민국은 순국선열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는 진정한 광복을 위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째 역사광복을 하자. 상고사 정립을 통해 새로운 민족사관을 세우자, 둘째 민족정신을 확립하자.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지켜온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민족정신을 근간으로 세워졌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실천적 행동이 있어야 한다. 목소리만 높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적 가치질서 아래 홍익정신을 바탕으로 국민의 인성을 깨우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키우는 국민인성교육을 해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국학원 김창환 사무총장이 남측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와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가 뜻을 모은 남북공동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학원 김창환 사무총장이 남측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와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가 뜻을 모은 남북공동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또한 국학원 김창환 사무총장은 민족단체 및 시민단체가 참여한 남측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와 북측의 단군민족통일협의회가 함께 결의한 남북공동결의문을 낭독했다. 결의문에서 “70여 년이 지나도록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외면하고 있다. 외세의 침략과 간섭은 오직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써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라며 “단군의 자손들인 우리 겨레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역사적인 (4‧27)판문점 선언이 있었다. 광복 73돌을 계기로 판문점 선언을 남북 삼천리에 현실로 꽃피우자.”고 선언했다.

3부 민족화합대축제는 ‘아 그리운 고국! 통일 광복 물결쳐라’를 주제로 모국의 품에 안긴 영령을 위로하고 대한민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축제로 진행되었다. 난타와 진혼무, 소프라노 조미경 교수의 ‘장부가’ 공연, 양화초교 모자합창단의 ‘홀로아리랑’ ‘우리의 소원’ 공연, 지구시민청년단의 공연 등 다양한 노래와 춤이 펼쳐졌다.

(왼쪽)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를 기념한 성악 공연. (오른쪽)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는 시민들. [사진=김경아 기자]
(왼쪽)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를 기념한 성악 공연. (오른쪽)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는 시민들. [사진=김경아 기자]

국민추모행사 마친 후 유해는 서대문 순국선열사당에 모셔졌으며, 16일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를 주제로 DMZ순례를 마친 후 시립장묘장에 최종 안치된다.

이날 진혼무 공연을 한 장순향 교수(한양대)는 “광복 73주년이 되도록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유해를 모시는 역사의 현장이다. 국가에서도 적극 지원을 해서 모든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해가 되돌아오길 바란다.”며 “각종 사회적인 문제에 춤꾼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연희중학교 심고은 학생(왼쪽)과 윤강희 학생. [사진=김경아 기자]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연희중학교 심고은 학생(왼쪽)과 윤강희 학생. [사진=김경아 기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심고은(연희중 3) 학생은 “학교 역사시간에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영상을 보아서 알고 있었다. 유해로 돌아온 분들을 위한 추모제가 있다는 것을 봉사사이트에서 보고 곧바로 신청했다.”며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고 잊지 말아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희생자들이 일본의 사죄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했고, 윤강희(연희중 3) 학생은 “강제징용된 분들을 추모할 수 있게 되어서 뜻 깊고, 이런 역사를 되새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청소년에게 이렇게 역사를 새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