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해설사의 쉽고 재미있는 해설을 따라 탐험하며 배우는 한강 역사탐방 프로그램 12개 코스를 5월 1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운영한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겸재정선길을 신청해 탐방했다. 겸재정선길은 ‘겸재의 한강그림’을 주제로 ‘양천향교~소악루~겸재정선미술관’으로 이어진다.

5월 30일 아침 10시. 서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 1번 출구에서 탐방을 함께할 사람들과 합류했다. 탐방을 시작하기에 앞서 해설사가 역사의 뿌리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우리 역사의 뿌리는 단군이라며 꼭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백제, 신라의 역사도 함께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역사에 관한 내용을 머리에 새기고 첫 번째 목적지인 양천현아지를 향해 출발했다.

양천현아지에는 비석뿐

양천현아지는 양천현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원래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비석만이 옛 터임을 알리고 있다. 해설사는 프랑스에 있는 몽마르트 언덕보다도 더 귀하고 아름다운 터인데, 이렇게 방치되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양천현 관아가 있었던 곳에는 비석이 옛 관아 터임을 알리고 있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양천현 관아가 있었던 곳에는 비석이 옛 관아 터임을 알리고 있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우리나라보다도 역사가 더 짧은 미국은 작은 거 하나라도 보존하려고 하는데, 역사가 더 긴 우리나라는 과연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있을까? 안타까운 생각을 하며 발길을 옮기니 양천향교가 나온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

안내 책자에 따르면, 양천향교는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이며 유교의 교리를 덕목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조선시대 지방교육 기관이다. 향교 맨 앞에 있는 홍살문이 우리를 맞이한다. 홍살문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해 임금이 그의 집이나 마을 앞에 세우게 한 붉은 문이다. 홍살문은 위로는 삼지창과 창살이 있는데 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함이다. 홍살문을 지나면 문이 3개인 외삼문이 나온다. 3문 가운데 들어갈 때는 동문을 이용하고 나갈 때는 서문을 이용한다. 가운데 문은 부처나 왕 등 중요한 사람이 지나가는 문이다.

양천향교 앞에 있는 홍살문.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양천향교 앞에 있는 홍살문.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외삼문을 지나 들어가면 양 옆으로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왼편은 서재, 오른편은 동재라고 한다. 해설사는 “이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다. 다만 동재는 신분이 높은 이들이 묵는 곳이었고, 서재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묵 숙소였다”고 설명했다. 향교 내에도 이렇게 신분에 따라 장소가 정해지고, 조선시대에도 학생들이 묵을 숙소가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향교 안에 큰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은 명륜당이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명륜당은 향교 내의 교육공간으로 학생 30~50명이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과거 시험은 성균관에서 직접 관장한 곳이라고 한다. 향교 내에 이렇게 교육기관을 세워 가르쳤다고 하니 색다르게 느껴진다.

양천향교. 왼쪽에 보이는 것이 서재, 오른쪽이 동재로 향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양천향교. 왼쪽에 보이는 것이 서재, 오른쪽이 동재로 향교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명륜당을 뒤로 한 채 옆에 있는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삼문을 거쳐서 대성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날은 내삼문이 개방되지 않아서 대성전을 구경할 수 없었다. 대성전은 대성인을 모신 곳으로 공자 등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대성전을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문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양천향교 뒤로는 든든하게 품어주는 궁산이 있다. 이 궁산은 한강을 바라보고 솟은 낮은 산이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왜적과 맞서 싸웠던 곳이라고 한다. 양천향교에서 나와 옆길로 들어서면 궁산으로 오르는 길로 이어진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그 다음 장소인 소악루라는 곳이 나온다.

양천향교 안에 있는 명륜당은 향교 내에 있는 교육 공간이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양천향교 안에 있는 명륜당은 향교 내에 있는 교육 공간이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길이 가파르고 햇빛이 강해서 잠시 하늘 위를 올려다가 보았다. 예쁘게 나무 사이사이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산에 자기의 소망을 적어서 매달아 놓은 것이 보였다. 아빠가 너무 힘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효심을 담아서 소망을 우산에 적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남한과 북한이 어서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성숙한 소망을 우산에 적은 아이도 보였다. 어린 아이들이 소망을 적은 우산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소악루에 이르렀다.

겸재 정선이 한강 풍경에 반한 곳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 소악루는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이 한강의 풍경을 보고 반했다는 곳이다. 겸재 정선은 이 양천현령으로 있으면서 불멸의 걸작을 남겼다. 소악루는 조선 영조 때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1675~1757)가 경관과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자신의 집 부근 옛 악양루 터에 지었다. ‘소악루’란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의 경치에 못지 않은 곳 하여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가양동 세숫대바위 근처에 있었으나 불이나 없어지고, 1994년 구청에서 지금의 자리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양천향교를 나와 옆길로 들어서면 궁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계속 하면 소악루가 나온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양천향교를 나와 옆길로 들어서면 궁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계속 하면 소악루가 나온다.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이 소악루에 올라오자마자 한강의 멋진 풍경을 바라보는데 그동안 막혀있던 가슴 속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하늘이 정말 맑아서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겸재정선미술관

이 길이 겸재정선길인 만큼, 겸재 정선에 관해 더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안내 책자를 보니 정선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어른관람도 1000원 정도 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그의 생애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겸재정선미술관은 이번 일정에서 빼고 다음에 보기로 하였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5기에 재학 중인 나는 고등학교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요즘 나 자신이 조금 지쳤는데, 오늘 한강역사탐방을 하면서 힐링되는 듯했다. 풀냄새를 맡으며, 탁 트여진 멋진 풍경을 보면서 내가 그 동안 갖고 있는 근심, 걱정이 모두 날아가서 후련했다.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사진=유서영 학생기자]

나는 그동안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신채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나의 뿌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왔었고, 또 당연히 내가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학교에서 단순히 교과서로 배우는 그런 이론적인 공부보다는 내가 스스로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공부를 좋아한다. 이번 탐방은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사는 주변에서 내가 모르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다. 또 부끄러워졌다. 내가 사는 주변 역사도 모르는데 어떻게 안다고 자부하겠는가. 책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특히 역사 교육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이론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나와서 생생하게 보고, 느끼고, 듣는 그런 교육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이 한강역사탐방을 하면서 했다.

역사를 지식으로 배우는 것보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 몰랐던 역사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의 청소년에게 한강역사탐방을 추천한다. 각 코스마다 스탬프를 찍어주고, 12개 코스를 완주하면 수료증도 발급해준다고 한다.

한강역사탐방을 하고 싶다면 서울특별시공공서비스예약(http://yeyak.seoul.go.kr/main.web )사이트에 들어가 한강역사탐방을 검색한 후 자신이 가고 싶은 코스로 선택해서 10일 전에 예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