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6월 5일 국학원 본원이 천안에 개원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지하 전시관에는 ‘고구려인의 하늘, 땅, 사람들’ 특별전이 열렸습니다. 여러 전시물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고구려 지도였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국사교과서 지도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대륙이 중심이었습니다. 지도를 거꾸로 배치한 것이죠. 지도만으로도 광활한 만주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기상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반도에 갇혀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지도와는 달랐습니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의 동북아 역사지도가 논란입니다. 고조선 지도에서 한사군 위치가 지금의 평양 등 한반도 북부로 표시한 것이죠.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 식민사관과도 일치합니다. 많은 시민단체의 항의와 언론의 비판보도가 잇따르자 재단은 재판정에 들어갑니다. 결국, 연세대·서강대 산학협력단이 제출한 동북아 역사지도 715장에 대해 최하위 등급인 ‘D’ 등급 판정을 내렸습니다. 지난 8년 동안 45억 원의 세금이 들어간 사업이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단순히 역사지도 해프닝으로 봐야 할까요? 아닙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친일파와 함께 식민사학을 청산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일본인에게 역사를 배운 제자들이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한 것이죠. 이후 우리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비주류 학계와의 갈등은 커져만 갔습니다. 특히 동북아 역사지도와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명예훼손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도화선이 됐습니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협의회(상임대표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가 출범한 배경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나라의 운명을 바꿉니다.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왕조가 성립하고 고구려를 계승할 것인가? 신라를 계승할 것인가? 대립과 갈등이 컸다고 합니다. 몽골이 침략하자 고려왕조는 내부의 단결이 필요했죠. 그래서 나온 것이 국조로서의 단군인식입니다. 이즈음 《삼국유사》, 《제왕운기》, 《단군세기》 등이 편찬된 배경입니다.

조선왕조는 어땠을까 요? 명나라가 상국이었죠. 성리학 나라를 세우려고 합니다. 한민족의 주체적인 역사관을 담은 단군사서는 수거됩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가? 지식인들의 고민이 컸다고 합니다. 그중에 조선 숙종 때 인물 북애자(北涯子)는 조선이 몰락한 원인을 국사에서 찾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옛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는 여러 번 병화를 입어 흩어지고 없어졌다. 그러다가 후세에 소견이 좁고 생각이 얕은 자들이 중국 책에 빠져서 주(周) 나라를 높이는 사대주의만이 옳은 것이라고 하고, 먼저 근본을 세울 줄 모르고 내 나라를 빛낼 줄 몰랐다.”

신운용 박사(사학,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는 “그는 성리학으로 인해 망해가는 나라와 백성의 구제방안을 보성(保性)에서 찾았다. 보성이란 ‘본래의 나’를 찾아 지킨다는 의미이다. 결국 조선은 본래의 나를 찾는 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북애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북애의 혜안은 오늘날에 더 심각하게 요청된다”라고 지적합니다. ▶ 바로가기 클릭

일제의 역사왜곡에 맞서 신채호, 정인보 등이 상고사 연구에 나섰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이었죠. 사람은 얼을 가진 존재이고 역사는 민족 얼의 발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광복 71년을 앞두고도 우리역사는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역이나 계파 이기주의처럼 역사학계 또한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자국중심주의로 세계를 분열로 이끈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처럼 말이죠.

지도 한 장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한반도에 갇힌 사관에서 벗어나서 세계를 무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후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요? 백범 김구 선생이 군사대국이나 경제대국도 아닌 문화대국을 원했던 것처럼. 인류평화에 이바지하는 한국인의 정신(Korean Spirit, 홍익정신)에서 올바른 역사관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