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2일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무수단’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합니다. 하필 25일 한국전쟁 발발 66년을 앞두고 말입니다. 전쟁을 겪은 어르신 세대는 그 트라우마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릴 적에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깐요. 그러한 이야기를 가끔 들을 때마다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곤 합니다. 

반면 전쟁 이후세대는 “북한이 또 미사일을 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일본 사이 공해상에 떨어진 미사일보다 먹고 사는 일상이 더 중요합니다. 1994년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고 당시 국민들은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던 때와 다릅니다. 해가 갈수록 통일의 꿈은 멀어지고 전쟁에 대한 감각도 무디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가 쓴 <25년간의 수요일(사이행성)>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구나. 있다면 피해자만 있을 뿐입니다. 저자의 인사말이나 목차보다 ‘위안부’ 할머니 사진을 앞에 배치했습니다. 곱디 고운 젊은 시절의 모습과 현재 할머니 사진을 같이 보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전쟁과 식민지 시기가 없었다면 입술을 굳게 다문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 전쟁 이후 많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영화 '귀향 '스틸컷)
 
이들은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정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한지도 어느덧 25년이 됐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조선의 딸로 태어나 곱게 자란 죄밖에 없는데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너무 서러웠다”라며 “두 번 다시 우리 후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결사적으로 싸울 것이다. 저는 아직 나이 젊다. 나이 88세,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가 있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다녀오고 장례식도 취재하면서 ‘무지가 죄’임을 느낍니다. 전쟁과 식민에 대해 모를수록 피해자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할머니들은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해 분쟁지역 아동을 지원하고 평화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장학금으로 전 재산 5,000만 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하셨지요. 또 베트남에서는 한국 군인에게 성폭력을 입은 여성들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레티 히 에우 할머니는 “애를 셋을 안고 있었다. 서너 명의 한국군이 들어와서 나를 잡고 머리에다 총을 댔어. 뒷집으로 끌고 가서 강간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피해자들은 한국인을 보면 “무섭다, 혼이 달아나게 무섭다. 그때 그 일을 돌이켜 생각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사죄 메시지를 전하고 추모비 앞에서 묵념했습니다. 이것은 독일이 나치정권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책임에 대해 사죄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했고 현 메르켈 총리도 사죄하고 있습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 정부를 향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은 테러와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인은 훈장을 받겠지만 수많은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여성들의 피해는 명예가 있을까요? ‘위안부’ 할머니가 세계인을 돕는 것은 남보다 더 봉사활동을 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겪어봤으니까 알 수 있다. 그 여성들이 얼마나 아플지, 사는 게 얼마나 힘들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안다 안다 해도 속속들이 알 수 없지.”
 
▲ 한국전쟁은 이산가족의 비극을 낳았다(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6월은 전쟁의 달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됐지요. 그러나 이제는 전쟁의 승리만 기념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알려야 할 때입니다. 그 시작은 공감(共感)입니다. 장 지글러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이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특히 일본이나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 앞장서야 합니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은 <한국인에게 고함(한문화)>에서 “정말로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나라가 어느 나라이겠는가? 평화의 결핍으로 뼛속까지 고통을 받아본 나라, 바로 이 한반도”라며 “배고파 본 사람이 밥의 소중함을 절실히 알 듯 평화에 굶주렸던 우리 민족은 철저한 평화주의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전쟁 이후가 아니라 평화세대가 필요합니다. 국내외로 건립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소녀는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요. 누이요. 딸입니다. 이산가족이 얼싸안고 눈물부터 쏟아내는 그런 혈육입니다. 손에 손을 맞잡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지요. 그러한 마음이 평화의 씨앗이 되고 하나둘 모인다면 거대한 숲이 될 것입니다. 민족통일과 인류평화의 꿈이 자라는 숲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