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박성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영정(사진=사단법인 대한사랑)

3일 18시 영결식을 앞둔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박성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이하 UBE) 전 총장(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영정은 밝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 러시아에서 학술대회를 열고 지병이 악화돼 별세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하고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총장은 한국 상고사와 독립운동사 연구에 이바지한 민족사학계의 거목입니다. 그러나 국학의 뿌리인 선도문화(仙道文化)를 학술적으로 연구한 점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3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취임하고 근대 국학의 선각자인 홍암 나철을 연구해서 책으로 펴냅니다.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북캠프)>입니다. 이듬해부터 한국 선도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합니다. 선도문화(仙道文化)는 불교나 유교 그리고 도교문화가 이 땅에 들어오기 이전에 형성된 한민족 고유의 문화입니다. 4명의 학자들과 2년이 넘는 연구를 통해 <한국선도의 역사와 문화(UBE 출판부)>를 펴냈습니다. 선도의 시원인 환국부터 신시배달국, 고조선을 시작으로 현대까지 1만 년의 역사가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학계도 우리나라 역사를 선도문화라는 관점에서 통사적으로 엮은 점을 주목했습니다. 

기자는 2014년 신년기획으로 <5천 년의 얼이 서린 단군문화답사>의 자문을 얻기 위해 총장 자택을 찾았습니다. 박 총장은 1987년 1월부터 9월까지 경향신문에 <단군문화기행>을 연재했기 때문입니다. 단군이 신화가 아니라 실체임을 밝혀낸 것이죠. 국내 학계에서 처음으로 남한은 물론 일본에서 거의 없어진 단군의 자취를 발굴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습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연재하려고 했지만 9월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털어놨습니다. 일부 종교단체에서 신문사로 연재를 중단하라는 압력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의 단군동상 건립계획이 기독교의 반대로 철회된 것과 비슷합니다. 당시 이병도 서울대 교수는 "단군이 실재인물인가 또는 그가 과연 개국시조인가 하는 점은 알 수 없다"라며 "설화시대의 우상적 인물의 동상을 세운다고 해서 민족의 주체의식이 앙양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학계와 종교계의 인식이 이러하니, 국조(國祖)를 알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합니다. 

박 총장은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있을 때 교수들이 이병도 사학만 추종하니, 당신은 민족사학을 해야겠다면서 단군을 연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국학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러기에 고령임에도 환국이 땅(바이칼 호수)이 있는 러시아에서 한국과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펼친 것입니다. 지난달 20일 모스크바 코로스톤 호텔에서 열린 학술대회는 '한반도와 유라시아 문명의 대화'를 주제로 개최됐습니다. 

이날 개회사에서 박 총장(세계환단학회장)은 “역사 속에는 민족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 혼이 죽은 역사, 고금(古今)이 절단된 역사는 민족사가 아니다. 사대주의와 일제식민사관으로 끊긴 민족사의 맥을 다시 잇고 민족사학을 재야에서 강단으로 끌어올려 우리의 위대한 상고사를 재건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이는 역사가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정신을 가리킨 것입니다. <한국인의 역사정신(석필)>에서 “몸에 70%가 물로 가득 차 있다면 역사 속에 정신이 70%가 담겨있다. 그 정신은 역사가의 가슴 속에 있다”라고 밝힌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독도와 ‘위안부’ 망언, 중국의 동북공정 등 주변국의 역사침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박 총장의 유지(遺志)라고 생각합니다. 한 평생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학처럼 살다가 선화(仙化)하신 총장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