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보다 자식이 죽었을 때의 슬픔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로 딸 유주를 잃은 김해관(이성민 분)을 그린 영화 <로봇, 소리(ROBOT, SORI, 2015)>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눈물보다 웃음요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인공지능 로봇 덕분이죠.

 
▲ 로봇 소리와 김해관(='로봇, 소리'스틸컷)
 
둘이 딸을 찾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이와 함께 유주의 과거도 새롭게 밝혀집니다. 음악으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반면 유주를 애지중지 키웠던 김해관은 딸이 사춘기를 지나고 2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보호 아래 두려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부모들이 다 큰 자식들의 일상에 간섭하는 것은 비단 김해관만의 일은 아닙니다. 보통 아버지보다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이 대표적입니다. 그 피해는 자식들에게 돌아갑니다. 독립의 기회를 잃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캥거루족’처럼 살게 되니 사회적인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자녀의 꿈조차 빼앗는 것입니다. 김해관은 아내와 딸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살아있었다면 하도록 했을까? 아니면 반대했을까? 영화가 아니더라도 저는 후자의 확률이 높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성공’이라는 경제적인 잣대를 자식에게 들이댑니다. “나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자녀의 목소리는 부모 앞에서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훗날 후회합니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어릴적 꿈은 가수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학년 대표로 출연했다고 하니 막연한 꿈은 아니었죠. 그러나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 교수는 "지금도 내가 그때 음악을 하겠다고 고집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지금 뭐가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생각하라고 자주 말합니다. -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위즈덤경향2012)
 
▲ 딸 유주와 아버지 김해관(='로봇,소리'스틸컷)
 
그렇다면 해관이 찾은 것은 무엇일까요? 딸의 육신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Voice from the Heart)입니다. 자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부모로 성장하는 모습은 영화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입니다. 설날에 가족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부모보다 키도 더 커버린 성인 자녀를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다루려고 하는지요.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꿈을 찾고 부모의 품에서 날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영국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쌓는 갭이어(GAP Year)가 있습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도 프랑스 파리에서 웨이터 일을 하면서 1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1년 동안 꿈을 찾도록 도왔던 벤자민인성영재학교가 올해부터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갭이어’를 도입한 것도 같다고 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부모가 자녀의 길을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옆으로 비켜주어야겠죠. 이는 부모 때문에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는 자녀를 줄이는 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