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도 고향을 내려가지 않은 청년이 많았다고 합니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명절은 ‘귀향’이 아니라 ‘귀양’이라고 하더군요. 어릴 적만 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세뱃돈도 받으니 이보다 좋은 날도 없을 거라고 기다리던 때와 다릅니다. 이유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친척들의 잔소리입니다. 청년들은 “아직도 취업 못 했니?”, “졸업하면 뭐할 거니?”, “결혼은 언제 하려고” 등을 대표적인 금기어로 꼽습니다. 이들은 고향에서 싫은 말만 듣게 되니, 어디론가 피신하고 싶다고 합니다. 대학생 10명 중에 7명이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설문조사가 이를 방증하지요. 청년들의 기(氣)를 살려주는 가족과 친척은 없는 것일까요?

▲ 팬더 '포'의 가족과 쿵푸 동지들(='쿵푸팬더3'스틸컷)
 
영화 ‘쿵푸팬더3(Kung Fu Panda 3, 2016)’를 보니, 가족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상 최대의 악당인 ‘카이’가 영계에서 현상계로 돌아옵니다. ‘X맨’이나 ‘트랜스포머’ 등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그러하듯이, 적들은 잘 죽지 않습니다. 팬더 ‘포’는 잃어버린 아버지를 만나고 덕분에 가족과 고향도 찾습니다. ‘카이’와 맞서기 위해 전쟁준비도 하지요. 하지만 힘에 부칩니다. ‘포’를 돕기 위해 가족과 동료들이 나섭니다. 이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포’에게 기(氣)를 보내줍니다. 
 
이러한 기의 세계는 중국의 철학사에서 나옵니다. 기란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며 원래의 의미는 운기(雲氣)입니다. 고대인들은 밥을 지을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수증기나 산봉우리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에서 기라는 글자를 이끌어냈습니다. 이후 자연계의 기가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이해된 것은 전국시대입니다. 특히 <장자(莊子)>를 보면 “사람이 살고 죽는 것과 사물이 만들어지고 부서지는 것 모두가 기가 모이고 흩어진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생사가 기로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 <장입문외, 기의 철학, 예문서원2004>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유교와 불교, 도교가 들어오기 이전에 선도(仙道)가 있었다는 것은 최치원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밝혔습니다. 이 선도의 가르침을 담은 <삼일신고(三一神誥)>에 기(氣)라는 글자가 등장합니다. 우주의 생성과정을 담은 <세계훈(世界訓)>에서 “신이 기운을 불어 넣어 땅속 깊이까지 감싸고 햇볕과 열로 따뜻하게 하여 걷고 날고 탈바꿈하고 헤엄치고 흙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이 번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명력을 뜻한 기는 <진리훈(眞理訓)>에서 인간의 수명을 결정해서 흥미롭습니다. “기는 목숨에 의지하는 것으로 청탁을 이루니, 맑으면 오래 살고 흐리면 쉬이 죽는다”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철학과는 인간관에서 다릅니다.
 
이승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는 “<진리훈>에서 인간은 기(氣)와 심(心)과 신(身)이 함께 존재한다. 그 전에 성•명•정(性•命•精)이 존재한다”라며 “인간의 몸이 단지 기의 취산(聚散, 모임과 흩어짐)으로 이루어졌다는 <장자>와는 구조적으로 그 시각을 달리한다”라고 말합니다. - <이승호, 한국선도와 현대단학, 국학자료원2015>
 
이처럼 기라는 것은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철학입니다. 오늘날에는 국민생활체육 국학기공을 통해 누구나 기를 수양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은 기수련을 통해 건강이 좋아지고 마음도 살아난다고 합니다.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니 그럴 것입니다. 더구나 상대방의 상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에모토 마사루 박사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무를심는사람2002)>라는 책을 읽지 않더라도 내가 던진 말이 꽃인지 칼인지 알게 되지요. 왜냐하면 기가 충만하면 상대방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니깐 요. 
 
수십 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은 서로에게 좋은 말만 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물며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기운 빠지는 말만 듣는다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칠포세대’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기(氣)를 살려야하는 이유입니다.